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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기 (葵亭記) / 조위

부흐고비 2008. 2. 27. 12:34

 

규정기(葵亭記)


내가 용만에 귀양살이하던 그 다음해 여름에, 들어 있는 집이 좁아서 덥고 답답함을 이기지 못하여, 곧 동원 중의 높고 상쾌한 곳을 골라서 정자 몇 칸을 세워 띠로 이엉을 하였는데, 5, 6명이 앉을 수 있으나 곁집이 즐비하여 약간의 빈터도 없고, 동원도 겨우 길 남짓 하였다. 다만 해바라기 몇 십 그루가 있어 푸른 줄기와 고운 잎이 훈풍에 움직일 뿐이었으므로 이내 이름을 규정이라 하였는데,

어떤 손이 나에게 묻기를, "대체 해바라기는 식물 중에 미약한 것이 아닌가. 옛사람이 초목과 화훼에 대하여, 그 특별한 풍취를 취하든가 그 향기를 취하든가 하였는데, 대부분 솔, 대, 매화, 난초, 혜(蕙) 등으로 그 집을 이름하였고, 이러한 미약한 물건으로서 이름하였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으니, 그대는 이 해바라기에 대하여 무엇을 취했던가. 혹시 이에 대한 이론이 있는가." 하였다.

그래서 나는, "대체 물건이 같지 않음은 물건의 심정이다. 귀천과 경중이 갖가지로 같지 않으니, 대체 해바라기는 식물 중에서 미약하고도 가장 천한 것으로서, 사람에 비한다면 야비하고 변변하지 못한 최하품이고, 솔과 대와 매화와 국화와 난과 혜에 비한다면 우뚝히 뛰어나 세상에 특립하여 그 성명과 덕망이 울연한 자 아니겠는가, 내 이제 거칠고 멀고 적막한 곳에 쫓겨나서 사람들이 천시하고 물건 역시 성기게 대하는 터이니, 나의 정자를 솔과 대와 매화와 국화와 난과 혜로 이름하고자 한들 어찌 물건에 부끄럽고 사람에게 웃음거리가 되지 않겠는가.

버림받은 사람으로서 천한 물건에 부합하되 멀리 구하지 않고 가까운 데에서 취하는 것이 나의 뜻이요." 또 나는 들으니, "천하에는 버릴 물건이 없고, 버릴 재주도 없으므로, 저 어저귀나 샅바귀나 무나 배추의 미물이라도 옛 사람이 모두 버릴 수 없다 하였거늘, 하물며 해바라기는 두 가지의 덕이 있음에랴.

해바라기는 능히 햇빛을 향하여 빛을 따라 기울곤 하니, 이를 충성이라 일러도 가할 것이요, 해바라기는 능히 발을 보호하니, 이를 슬기라 일러도 가할 것이다. 대체 충성과 슬기란 사람의 신하된 절개이니, 충성으로서 윗사람을 섬기되 자기의 정성을 다하고, 슬기로서 물건을 변별하되 시비에 의혹이 없는 것이니, 이것이 곧 군자의 어려워하는 바요. 나의 일찍부터 연모하던 일이라, 이 두 가지의 아름다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어찌 미약한 푸새라 하여 천하게 여길 수 있겠는가.

이로써 논한다면 다만 솔과 대와 매화와 국화와 난과 혜라야 가히 귀하지 않음이 분명하지 않은가. 이제 내 비록 귀양살이를 한다 하더라도 자는 것이나 먹는 것이 임금의 은혜 아님이 없으니, 낮잠과 밥 먹는 나머지에 심휴문과 사마군실의 시를 읊을 때마다 해를 향하는 마음이 스스로 말지 못하였으니, 해바라기로 내 정자의 이름을 지은 것이 어찌 아무런 이론이 없다 이르겠는가." 하였더니,

손님은 말하기를, "나는 한 가지만 알고 그 두 가지는 몰랐더니, 그대 정자의 뜻을 듣고 보니, 더할 나위가 없구료." 하고는 웃으면서 가버렸다.

기미 6월 상순에.

조위(曺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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