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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우 이청준 영전에
편안히 눈감은
자네 앞에서 통곡하는 대신
시를 읽게 될 줄은 몰랐네
어릴 때 굶주림에 시달리고
전짓불의 공포에 떨며 자란 우리는
그래도 온갖 부끄러움 감추지 않고
한글로 글을 써낸 친구들 아닌가
문리대 앞 허름한 이층 다방
차 한 잔 시켜놓고
온종일 묵새기며
시를 쓰고 소설을 읽었지
겨울날 연탄난로 가에서
자네가 읽어주던 '퇴원'의 초고에
귀 기울였던 청년들이 오늘은
늙은 조객으로 모였네
자네의 잔잔한 말소리와
조숙한 의젓함
얼마나 오랜 세월 안으로 안으로
아픔을 삼키고 다져야
그렇게 정겨운 웃음이 배어나오는지
그때는 미처 헤아리지 못했네
사랑이 부르는 소리 듣기도 전에
글쓰기를 시작해 한 편 두 편
세 권 네 권 마침내 사십여 년간
묵직한 책으로 울창한 숲을 만들었네
오직 언어의 힘으로
글 읽는 영혼마다 깊숙이 깃들었고
멀리 독일과 미국과 프랑스에도
한국 문학의 묘목을 옮겨 심었지
바트 호네프 성당 문밖 어둠 속에서
줄담배 피우며
어머니의 마지막 길 근심하던 자네
포도주를 홀짝홀짝 마시며 밤새도록
조곤조곤 들려주던 이야기
얽히고설킨 말의 실타래 풀어나간
글쟁이의 눈과 입을 우리는
기억하네
서울 한구석 낡은 집 오래된 벽돌담
퇴락한 기와지붕 내가 고치는 동안
자네는 세상을 담은 큰집을 지었군
원고지를 한 칸씩 메워 자네의 필적으로
집과 언덕과 산과 강을 만들었군
눈길 걸어 떠난 고향으로
매미 울어대는 숲 속으로 자네는
이제 돌아가는가
회진면 진목리 갯나들
산비탈에 지은 새집으로
학처럼 가볍게
날아드는가
아쉽게 남기고 간 자네의 앞날
우리에게 남겨진 오늘로 살아가면서
후손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자네 이야기
나눌 것이네
2008년 8월 2일 김광규
ㅇ 작가 이청준 선생 별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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