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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詩 느낌

호박찬가 / 우종률

부흐고비 2009. 1. 8. 12:23

 

 

 

 

 

 

 

 

 

 

 

 

 

 

 

 

 

                                                                                  * 대경 현관...

 

호박찬가(琥珀讚歌)

이보시오 벗님네들 저기 물건(物件) 형색(行色) 보소
앉은키는 자그만데 배는 저리 처졌는가
대장(隊長) 짓을 시키자니 내세우기 부끄럽고
말단(末端)으로 보내자니 얼굴보기 창피하네

시골버스 올랐더니 뒷자리로 밀어 내네
기사양반(技士兩班) 브레이크 눈치 없이 굴러 가네
어린 것은 멍이 들고 늙은 것은 골병(骨病)드네
가를 박고 모를 차며 빙글빙글 굴러가네

꽃 중에는 너를 두고 꽃 아니라 이르거늘
장미(薔薇)처럼 하나하나 향기(香氣)조차 못 맡겠고
국화(菊花)의 암향(暗香)처럼 눈치조차 못 채누나
벌 잡기 놀이할까 자랑 못할 통꽃이여

없는 듯이 가시 돋은 이파리는 또 어떤가
새색시의 섬섬옥수(纖纖玉手) 흠이 날까 겁이 나네
장만하기 번거로워 먹기조차 귀찮다네
게으른 이 무용지물(無用之物) 여지없이 너로구나

팔공산 갓 바위로 가을마중 갔더니만
촌로(村老)들 바투 앉아 나립(羅立)히 소리치네
그 모습(貌襲)이 아련해서 우선 두 놈 골라 드네
그러구러 구석에다 던져두고 지냈구나

며칠 지나 이상(異常)하여 아래위로 살폈더니
아뿔싸 그 중 한 놈 엉덩이가 허물었네
요모조모 살피잖고 겉모양만 보았구나
버리자니 아까워서 화단(花壇) 가에 던져두네

곰곰이 따져보니 탓할 일만 아니로세
하나 남은 성한 놈을 설겅설겅 칼질하여
생선(生鮮) 내장 비워내듯 속엣 것을 발라내니
피자 속 치즈처럼 억지로 딸려오네

구석구석 파내어서 모체분리(母體分離) 하렸더니
떨어지지 않으려고 바둥대니 애처롭다
설워 마라 인연(因緣)들아 언젠가는 헤어질 걸
수(壽)를 다한 늙은 애미 잡는다고 역행(逆行)될까

줄줄이 길게 썰어 오가리를 만들까
끊어지지 않으면 시집 빨리 간단다
말리고 말려서 깊은 독에 묻어 두면
정월(正月) 보름 이월(二月)이면 반찬(飯饌) 중엔 으뜸이라

호박떡 군데군데 붉은 꿀이 별미(別味)로세
팥에다 새알심에 눈물 찔끔 콧물 훌쩍
땀까지 흐르니 범벅 맛이 제일(第一) 일세
여름 내내 빠진 기운(氣運) 보약(補藥)이 따로 없네

삭정이 연한 불로 솥뚜껑에 부쳐내니
불며 먹고 식혀 먹는 지짐이가 일품(一品)이라
꼭지 따고 꿀 부어서 통째로 푹 쪄내니
출산(出産) 후 부종(浮腫)에는 너 하나면 만사형통

지붕 위 채반에다 건듯건듯 말린 씨를
냄비에 볶아다가 까먹는 맛 재미로세
겉모습이 희다고 속도 흴 줄 알았더니
칠 팔월 땡볕 아래 거뭇하게 되었구나

 
화단(花壇)이 소란하여 얼른 달려 나가보니
허물어져 던진 것에 동네 미물(微物) 다 모였네
날개 달린 놈들은 들며 날며 취하고
걷고 기는 놈들은 퍼질러 앉았구나

 
대접(待接) 한번 잘 받았다 돌아가는 모양(模樣)보소
날파리 뽈록뽈록 달팽이 끄떡끄떡
개미는 뒤뚱뒤뚱 개구리는 헐떡헐떡
부러울 게 무어냐며 춤까지 추며가네

잔치가 끝이 나니 씨들만 남았구나
지치고 힘든 그대 올 한 해도 수고 했소
근심걱정 모두 잊고 긴 잠 한번 드시게나
몸 넓이로 구덩이 파 키 높이로 묻어주네

세상사(世上事) 제아무리 험하다고 하다지만
눈속임 입 속임 몸속임 하나 없는
너야말로 군자(君子) 중에 으뜸가는 군자(君子)로세
토닥토닥 두드려서 네 공(功)을 칭찬(稱讚)하네

* 우종률, '2007 제3회 전국시조, 가사공모전 금상 수상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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