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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측량설 / 홍대용

부흐고비 2008. 9. 23. 22:20

 

측량설 (測量說)

 

 


하늘은 만물의 할아버지이고, 태양은 만물의 아버지이며, 대지는 만물의 어머니이고, 별과 달은 만물의 삼촌이다. 음양의 기운이 뭉쳐 만물을 낳아주니 그 은혜보다 큰 것은 없고, 숨결을 불어넣고 물로 적셔 만물을 길러주니 그 덕택보다 두터운 것은 없다.

그렇건만 인간은 생명을 마칠 때까지 하늘을 머리에 이고 대지를 밟고 살면서도 하늘과 대지가 어떤 형상인지를 알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생명을 마칠 때까지 아버지를 의지하고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으며 살면서도 아버지와 어머니의 나이와 모습을 알지 못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어떻게 그것을 옳다고 할 수 있겠는가?

만약 하늘에 대해서는 높고 멀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 말하고, 대지에 대해서는 두텁고 넓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 말한다면, 이것은 마치 아버지에 대해서는 남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 말하고, 어머니에 대해서는 여자라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러므로 하늘과 대지가 어떤 형상인지를 알고자 한다면, 마음으로 탐구해서는 안 되고, 이치로 탐색해서도 안 된다. 오로지 기기를 만들어서 측정하고, 수학으로 계산하여 추론해야 한다. 측정하는 기기가 다양하지만 네모난 방형과 둥근 원형의 범주를 벗어나지 않고, 추론하는 수학의 방법이 다양하지만 구고(句股)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하늘과 대지의 형상을 측정하고 추론하는 차례는 반드시 먼저 방위를 분간하고, 다음에는 척도를 정해야 한다. 방위를 분간함으로써 남극과 북극을 측량하고, 척도를 정함으로써 대지를 측정한다. 먼저 지구를 측량하고 다음에는 모든 천체로 확대해야 한다. 이렇게 한다면, 하늘과 대지가 어떤 형상인지 그 대강의 상황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

홍대용(洪大容), 《담헌서(湛軒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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