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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병이 나야 쉰다 / 박장원

부흐고비 2008. 9. 29. 12:19

 

병이 나야 쉰다


나는 전에 당나라 사람의 시를 보다가 “몸에 병이 들자 그제야 한가롭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달프게 일하느라 잠깐의 휴식도 얻지 못하는 사람이, 한가로운 시간을 차지할 수 있는 경우란, 단지 몸에 병이 생기는 그때뿐임을 이 구절은 말하고 있다. 이 구절을 늘 읊조리면서 나 자신을 가엾게 여기는데 머물지 않고, 온 세상의 이와 같은 처지에 놓인 사람을 가엾게 여겼다.

나는 올해 춘천부사로 있다가 부름을 받고 황급하게 승정원으로 들어왔다. 날이면 날마다 새벽에 대궐로 들어갔다가 밤이 되어 나왔다. 봄에서 여름으로, 여름에서 가을로, 그리고 다시 가을에서 겨울로 세월은 흘렀다. 그 겨울마저 반이나 지났다. 그동안 잠깐 업무에서 체직된 적이 있지마는 그것도 종기를 앓은 덕분이었다. 그러나 바로 또 분에 넘치는 일을 맡게 되었다.

최근 들어 감기가 들었다. 그동안 몸이 상한 것이 누적되었기에 생긴 병이어서 내 스스로도 견디기가 어려울 듯하였다. 두 번이나 글을 올려 면직을 애걸하여 허락을 받았다. 오늘부터 비로소 한가한 생활로 들어가게 되었다.

주자(朱子)는 “하루 동안 안정을 취하면 하루의 복이 된다.”고 하셨다. 이 말씀을 따르자면 병이 든 것도 복이라고 말해도 괜찮지 않을까? 이에 대해서는 따로 따질 분이 있으리라.

구옹(久翁)이 쓰다. 임진년 동지달 상순.

박장원(朴長遠, 1612~1671)〈病閑錄小序〉, 《久堂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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