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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돗자리를 짜다 / 김낙행

부흐고비 2008. 12. 2. 08:35

 

돗자리를 짜다


시골 사람들의 농담에 이런 것이 있다.

“시골 선비가 젊어서 과거 문장을 익히다가 과거에 합격하지 못하면 풍월(風月)이나 짓고, 그러다 기운이 빠지면 자리 짜는 일을 하다가 마침내 늙어 죽는다.”

이 농담은 그런 처지의 선비를 천시하고 업신여겨 하는 말일 것이다. 선비다운 풍모에서 멀리 벗어나고, 풍류와 아치를 손상시키기로는 자리를 짜는 일이 가장 심하다. 그래서 자리 짜는 일을 특히 천하게 여겨서, 빈궁하고 늙은 사람이 마지막에 하는 일로 생각한다. 사람으로서 이렇게 하다가 인생을 마친다면 참으로 불쌍히 여길 일이다. 그렇다고는 하나 주어진 분수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을 느닷없이 비난하고 비웃을 일만은 아니다.

이제 나는 과거 문장도 풍월도 일삼지 않는다. 산속에 몸을 붙여 살아가므로 궁색하기가 한결 심하다. 따라서 농사짓고 나무하는 일이 내 분수에 맞는다. 더욱이 자리를 짜는 일이야 그다지 근력이 들어가는 일도 아니잖은가?

집사람이 그저 밥이나 축내고 신경 쓸 일이 없는 나를 못마땅하게 여겨, 그 형제의 집에서 자리 짜는 재료를 얻어다가 억지로 내게 자리라도 짜라고 하였다. 그리고는 이웃 사는 노인을 불러서 자리 짜는 방법을 가르치게 하였다. 나는 속을 죽이고 그 일을 하는 수밖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처음에는 손은 서툴고 일에 마음이 집중되지 않아서 몹시 어렵고 더뎠다. 종일토록 해봐야 몇 치 길이밖에 짜지 못했다. 그러나 날이 지나고 일이 조금씩 익숙해지자 손을 놀리는 것도 저절로 편해지고 빨라졌다. 짜는 기술이 머릿속에 완전히 익자 자리를 짜면서 곁에 있는 사람을 보고 말을 나누더라도 씨줄과 날줄이 번갈아가며 엇갈리는 것이 모두 순조로워서 조금의 오차도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되자 이제는 괴로움은 다 잊어버리고 즐겨 자리를 짜게 되었다. 식사를 하고 소변을 보러 가거나 귀한 손님이 올 때가 아니면 쉬지를 않았다. 따져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한 자 길이를 짰는데 솜씨가 좋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전히 서툴다고 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크게 나아진 것이다.

천하에 나만큼 재주가 없고 꾀가 부족한 자가 없다. 열흘 한 달 배워서 이런 정도까지 이른 것을 보니 이 기술이란 것이 천하의 보잘것없는 기술임을 얼추 알 만하다. 내가 이 일을 하는 것이 참으로 적합하다. 비록 이 일을 하다 내 인생을 마친다고 해도 사양하지 않겠다. 왜냐하면 내 분수에 알맞기 때문이다.

이 일을 하여 내게 보탬이 되는 것은 다섯 가지다. 일하지 않고 밥만 축내지 않는 것이 첫 번째이다. 일없이 괜한 출입을 삼가는 것이 두 번째이다.

한여름에도 찌는 듯한 더위와 땀이 나는 것을 잊고, 대낮에도 곤한 낮잠을 자지 않는 것이 세 번째이다. 시름과 걱정에 마음을 쏟지 않고, 긴요하지 않은 잡담을 나눌 겨를이 없는 것이 네 번째이다. 자리를 만들어 품질이 좋은 것으로는 늙으신 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실 수 있고, 거친 것으로는 내 몸과 처자식이 깔 수 있다. 또 어린 계집종들도 맨바닥에서 자는 것을 면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나머지로는 나처럼 빈궁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것이 다섯 번째이다. 정축년 여름 5월 아무 날에 쓴다.

김낙행(金樂行, 1708~1766), 《구사당집(九思堂集)》1

  1. 김낙행은 의성 김씨로, 안동에서 태어나 안동과 봉화 등지에서 살았다. 부친은 홍문관 교리를 지낸 金聖鐸이다. 과거에 급제하지 못한 채 향촌에서 선비로 한평생을 보냈다. 그는 영남의 큰 선비인 李栽에게 배웠고, 당시의 저명한 선비인 江左 權萬, 大山 李象靖 등 많은 선비들과 교유하고 학문을 연마한 모범적인 선비이다. 조선시대 선비는 생산적인 일에 종사하지 않았는데 이 글은 그런 선비의 완고한 의식에서 일어난 작은 변화를 보여준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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