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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훈자오설 / 강희맹

부흐고비 2009. 2. 27. 08:39

 

훈자오설(訓子五說)


사숙재(私淑齋)께서 자녀들에게 훈계하시기를 대체로 아버지가 자식을 대하는 관계는 농부가 곡식을 대하는 것과 같다. 농부가 곡식을 잘 키워 큰 수확을 거두지 않으면 결국 굶주리는 환란을 당하게 될 것이요, 아버지가 자식을 잘 가르치고 훌륭히 키우지 못하면 끝내 고약하고 위험스런 화근이 될 것이니 농부가 기름진 옥토를 만드는 방법과 아버지가 자식을 잘 훈계하고 가르쳐서 만사에 힘쓰도록 하는 방법을 어찌 늦추거나 게을리 하리오!

귀한 자식을 키우는데 있어 부모가 부귀영화를 누리고 사는 것만 본다면 남들도 모두 그렇게 산다고 생각할 것이요. 또 지금 아름답고 좋은 옷을 입는 것 만 본다면 지난날 검소하고 근면성실한 생활로 쌓아 올린 결과임을 어찌 알겠는가? 그 원인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들이 어떻게 보람 있는 일을 할 수 있겠는가? 내가 정묘년(1447년)에 과거에 급제하여 남정승(南智 충간공=세종대왕때 좌정승) 댁을 찾아가 인사를 올릴 때 훈계하시기를

내가 하는 말을 이상히 생각치 말라. 사람의 마음은 매우 약한 데가 있어 남의 약점을 들으면 은근히 세상에 퍼지기를 바라고, 남의 좋은 이야기를 들으면 오히려 덮어두려는 심사가 있다. 처음 관계(官界)에 진출하는 선비의 행동에는 어려움이 있고 대대로 국은(國恩)을 입는 가문의 자손은 더더욱 어려운 것이다. 가난하거나 하찮은 집안의 자식은 설혹 호탕한 행동을 하더라도 모두들 "저 사람은 무얼 믿고 감히 저러나?" 라고 말하다가 여러 번 잘못을 저지른 후에야 의심을 하지만, 대대로 나라의 녹을 받은 집안의 자손이면 사람들이 "저 사람은 그 세도를 믿고 교만하다" 한다. 사람이란 일단 의심하거나 한번 험 잡히면 그 소문은 네 필의 말로 쫓아가도 따를 수 없도록 안 좋은 소문이 널리 퍼지게 된다. 이런 때는 어찌 집집마다 찾아다니며 사실을 밝히며 알릴 수가 있겠는가? 이점은 대대로 국은을 입은 집안 자손들이 출세하여 그 이름을 떨치기가 어려운 점이다.

"지금 그대가 젊은 나이로 과거에 장원한 것은 사람들이 색안경을 쓰고 보는 첫째 이유이고, 대대로 재상을 지낸 집안 후예에 관련되는 것이 사람들로 하여금 색안시 하는 두 번째 이유이며, 집안이 임금님과 내외척으로 연결돼 있어 사람들이 주시하는 세 번째 이유가 되는 것이다. 그대는 이 세 가지 의심을 모두 받을만한 처지에 있으니 조금이라도 방심하면 그 실수에 따라 술주정뱅이나 음탕하고 교만한 사람으로 생각할 것이다."

"이런 좋지 못한 이름이 붙는다면 어느 누가 그대가 그렇지 않음을 외쳐 주겠는가? 이는 오히려 무명가문에 태어난 것만 못할지니 몸가짐에 이 세 가지를 삼가라" 하셨다. "나는 이런 가르침을 듣고 물러와서 이를 암송(暗誦)하며 죽을 때까지 경계할 점으로 삼았는데 지금도 무엇을 생각할 때마다 이 교훈을 늘 염두에 두었다" 하였다.


① 도자설(盜子說)
도둑질을 일삼고 있는 자가 일찍이 자기 아들에게 도둑 기술을 가르쳐 주었다. 그러자 아들은 자기 기술이 아벼지 보다 훨씬 낫다고 생각했다. 도둑질을 하러 갈 때면 늘 아버지보다 앞서 들어갔다 나올 때는 뒤에 나왔으며, 가볍고 천한 것은 버리고 무겁고 귀한 것만 골라 가지고 나왔다. 또 그는 귀와 눈이 밝아 먼 곳에서 나는 소리도 잘 들었고, 어두운 곳에서도 먼 곳을 잘 살필 수 있었다. 그러자 다른 여러 도둑이 그의 능력을 칭찬하였다. 마침내 그는 아버지에게 자기 능력을 자랑했다.

"소자가 아버지 보다 기술은 모자라지만 힘은 더욱 쓸 수 있습니다. 이제부터는 아무것도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아비 도둑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아. 지혜는 겸손한 자세로 배워야 이룰 수 있고, 또 그 지혜는 스스로 터득한 것이라야 더욱 훌륭한 경험이 되는 거야. 그런데 너는 아직까지 그런 경지에 도달하지 못했어!"

아들이 대답했다. "도둑이야 재물을 많이 훔쳐 오면 되는 것이 아닙니까? 보세요, 소자가 아버지와 함께 도둑질하러 가면 늘 아버지보다 더 많이 훔쳐오지 않습니까? 뒷날 소자가 아버지 나이가 되면 아마 보통 사람들이 도달하지 못하는 특별한 경지에 이를 겁니다."

그렇겠지. 네가 만일 나의 경지에 도달하게 되면 군대가 아무리 삼엄하게 경계하는 영이라도 들어 갈 수 있고, 또 아무리 깊이 감추어 둔 물건이라도 찾아 낼 수 있을 거야. 그러나 백 번 잘하다가도 한번 실수하면 패가망신하는 실패가 뒤따르는 법이야. 그러니 물건을 훔치는 도중에 어쩌다가 탄로가 나 붙잡힐 지경이 되면 상황을 보아 도망쳐 나오는 기술을 스스로 체득하지 않으면 안 돼. 내가 보기에는 아직 그런 경지에 이르지 못했어."

그러나 아들은 아버지 말을 승복할 수 없었다.

어느 날 밤 도둑부자(父子)는 도둑질을 하러 어느 부잣집에 숨어 들어갔다. 곧 이어 아들은 보물이 가득 차 있는 창고의 자물쇠를 따고 들어갔다. 아버지는 아들이 들어간 창고의 문을 잠그고 그 문을 덜커덩 덜커덩 흔들었다. 그러자 곤히 잠을 자던 주인이 놀라 달려 나와 도망치는 아비도둑을 쫓았다. 그러나 붙잡을 수 없게 되자 주인은 돌아와 창고를 살펴보았다. 그는 그곳 자물쇠가 채워져 있음을 확인하고는 안심하고 다시 방으로 들어가 잠을 잤다.

그때 창고 안에 갇혀 있던 아들 도독이 빠져 나올 궁리를 하다가 손톱으로 창고 문짝을 박박 긁으면서 "찍찍" 하고 늙은 쥐 소리를 냈다. 그러자 방에 들어갔던 주인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기랄 쥐가 창고에 들어가 곡식을 다 축내는구나.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없지.' 그는 초롱불을 들고 와 자물쇠를 열고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때 아들 도둑이 문을 밀치고 도망쳐 나왔다. 그러자 주인은 도둑이 들었다고 소리쳤다. 집안 식구들이 모두 몰려 나와 그의 뒤를 바싹 따라왔다. 도둑은 거의 붙잡힐 지경이 되었다. 도둑은 그 집 마당 안에 파 놓은 연못 둑을 타고 도망치다가 큰 돌 하나를 집어 물 속에 던지고는 몸을 날려 뚝 밑으로 숨었다. 뒤따르던 사람은 도둑이 물속으로 몸을 던진 줄 알고 모두 연못만 들여다보았다. 이 틈을 타서 도둑은 거기를 빠져 나올 수 있었다. 그는 집으로 돌아와 아버지를 원망하며 말했다.

"새나 짐승도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할 줄 아는 데 아버지는 어찌하여 자식이 붙잡히도록 일부러 자물쇠를 잠갔습니까?"

아버지는 대견하다는 듯 아들을 보며 말하였다. 이제부터는 네가 도둑으로 독보(獨步)적 존재(存在)가 되었구나. 사람이 남에게 배울 수 있는 기술은 한계가 있지만 스스로 터득한 것은 무한히 응용할 수 있기 때문이지. 특히 위급한 처지를 당해 임기응변(臨機應變)으로 위기를 모면함으로써 경험이 넓어지고 지혜가 발전하는 거야. 내가 너를 위험한 경지에 빠트린 것은 닥쳐올 위험을 미리 구제하려는 것이었어. 그 뒤에 아들 도둑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도둑이란 남에게 몹쓸 짖을 하는 사람이다. 그런데도 이렇게 그 기술을 스스로 터득한 뒤에야 능히 천하에 짝할 사람이 없게 되는 것이거늘, 하물며 선비가 도덕을 닦아서 공명을 이루는 것임에 있어서야 더 말해 무엇 하겠는가? 대대로 국록(國祿)을 먹는 집안자손이 사람과의 미덕이나 학문의 공과(功過)없이 먼저 영달(榮達)을 누리게 되면 교만해져서 조상님들의 업적을 과소평가하고 무시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도둑 아들이 제 아버지를 무시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만일 높은 지위를 사양하며, 겸손하고 차분한 마음으로 학문에 열중한다면 가히 모든 것을 갖추어 공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자신의 학문을 응용하는 데 있어서도 맞지 않는 것이 없을 것이다. 이것이 바로 도둑 자식이 곤궁한 처지에서 지혜를 터득해 마침내 독보적 존재가 됨과도 같다. 그러니 창고에 갇혀 쫓김을 당하는 곤란을 두려워 말고 그것을 스스로 체득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이 좋음을 명심할 일이다.


② 담사설(膽巳說)
명주지역에 선약이 많이 생산되니 약국에서 2년마다 의원을 파견하여 약을 채취하였는데, 한 의원이 이 임무를 도맡아 자주 명주를 왕래하였다. 이 의원이 처음 도착하였을 때에 채약꾼들이 자신의 무리 중에 한두 명을 가리키며 말하기를 "저들은 뱀을 먹는다." 하고 너나없이 냉소하면서 식사할 때도 그릇을 빌려주지 않고 앉을 때도 같은 자리에 앉지 않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다음 2년 만에 갔을 때에는 조소하는 자들이 줄어들어 전일에 뱀을 먹는다고 냉소하던 자들과 친근해져 혐오감이 없어졌고, 또다시 2년 만에 갔을 때에는 마을에 뱀을 먹는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어져 조소하는 말을 이미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차분하게 살펴보니, 사람마다 머리가 두 갈래로 갈라진 목궁(木弓)과 시위를 멘 조그만 굽은 나무를 가지고 긴 숲속 큰 골짜기로 들어가 약초를 캐다가 뱀을 만나면 크고 작은 것을 가리지 않고 두 갈래로 벌어진 목궁으로 뱀의 머리를 누르면 뱀이 머리를 추켜들고 입을 벌렸다. 그러면 굽은 나무의 활시위로 잡아당겨 뱀의 이빨을 모두 제거한 다음 손으로 껍질을 벗겨서 화살통에 넣어 두었다가 밥이 다 될 무렵 뱀에다 소금을 쳐서 구워 놓고 서로 앞 다투어 남김없이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장기간 이렇게 하자 중독이 되어 죽은 사람이 줄을 이었다.

아! 뱀은 꿈틀거리며 이리저리 돌아다니는 보기 흉한 파충류여서 비록 어리석은 사람도 모두 뱀을 천하게 여기고 미워하며 피할 줄을 안다. 만일 뱀이 가까이 접근하면 너나없이 구역질이 나오고 전율을 느끼니, 이는 무엇 때문인가? 사람의 타고난 성품이 그런 것이다.

명주 사람들이 처음에 그들의 잘못된 행동을 배척하였던 것은 그때까지는 타고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한 사람이 많은 때문이었고, 중간에 가서는 배척하는 사람이 적어지고 뱀을 먹는 사람이 많아졌으나 혹 타고난 성품을 그대로 간직하여 세속에 물들지 않은 자가 있었다. 그러나 종말에는 온 고을이 잘못된 것임을 알지 못하여 조소가 일체 끊기고 더러운 풍속에 안주하였다. 이 지경에 이르면 인성이 모두 가리워져 다시는 시시비비를 논할 수 없게 된다.

어떻게 한 고을의 백성들이 모두 타고난 성품을 상실하여 깨닫지 못하였겠는가? 필시 어떤 사람이 처음에 그런 짓을 하여 오도하였을 것이다. 처음에 오도할 때에 반드시 "뱀도 물고기와 같은 종류이다. 고기가 살지고 향기로우며 사람의 주변에 있어 잡기도 쉬운데다가 그 모양을 따져 보면 가물치나 다름없다. 가릴 것이 뭐 있겠는가?"라고 말했을 것이다.

이에 몇 사람이 시험 삼아 고기를 맛본 결과 해독이 없으므로 점차로 마음에 익숙해져 혐오감이 없어졌다. 이렇게 세월이 쌓이다 보니, 점점 뱀을 먹는 풍속이 이루어져 버젓이 부끄러워하지 않은 것이다. 이때에 그들이 뱀을 먹는 것이 부끄러워할 만한 일임과 해독이 두려울 만하다는 것을 어떻게 알겠는가? 전날에 비난하던 자들까지도 뒤따라 본받으며 말하기를 "저들도 사람이므로 입맛이 다르지 않을 터인데 유독 뱀을 즐겨 먹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필시 그 속에 지극한 맛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렇다면 내가 전일에 그들을 비난한 것이 망령에 가깝지 않음을 어떻게 알며, 그들이 즐기는 바가 소견이 없다는 것을 또 어떻게 알겠는가?"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상호간에 점점 물들어 그릇된 행위임을 깨닫지 못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쌍하다.

 

사군자(士君子)가 재리(財利)와 성색(聲色)에 대해서도 이와 마찬가지이다. 탐욕과 방탕이 천하게 여길 만한 일임과 오욕과 패망이 두려울 만하다는 사실을 그 누가 모르겠는가? 그러나 한번 마음에 겪어 보고는 결국 부끄러움을 망각해 버리니, 어찌 조소하는 말을 들을 수 있겠는가? 너는 마땅히 그 기미를 살펴 소홀히 여기지 말라.


③ 등산설(登山說)
노(魯)나라의 한 백성에게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갑(甲)은 착실하나 다리를 절고, 을(乙)은 호기심이 많으나 몸은 완전하고, 병(丙)은 경솔하나 용력이 남보다 나았다. 그래서 평상시 일에 대한 성적은 병이 항상 으뜸을 차지하고 을이 다음 가며 갑은 부지런히 일을 해서 겨우 제 과정을 메우어 게을리 하는 바가 없었다.

하루는 을이 병과 더불어 태산(泰山) 일관봉(日觀峰)에 누가 먼저 오르는가를 시험하기로 약속하고 경쟁하여 신발을 장만하니, 갑도 역시 행장을 단속하여 오르기로 하였다. 을은 병과 더불어 서로 돌아보고 웃으며 말하였다.

“태산의 봉우리는 구름 밖에 솟아나 온 천하를 내려다볼 수 있을 정도로 높습니다. 그러므로 다리 힘이 좋은 사람이 아니면 오를 수가 없는데, 올라갈 수 있겠습니까?”

“그저 동생들을 따라서 끝으로 당도하더라도 천만다행이 아닌가?”

삼 형제가 태산 아래 당도하자 을이 병과 함께 갑을 경계하며 말하였다.

“우리들은 동떨어진 골짜기를 뛰어오르는데도 눈 한번 깜짝하는 사이에 하니, 우리가 먼저 올라갈 수 있을 것이다.”

병은 산 아래 처지고 을은 산 중턱에 이르니, 해가 이미 어두워졌다. 갑은 쉬지 않고 서서히 가서 곧장 산마루턱에 이르러, 밤에는 관(館)에서 자고 새벽에 해가 바다에서 솟아오르는 것을 구경하였다.

삼 형제가 집으로 돌아오니, 아버지가 각각 얻은 것을 물어 보았다.

먼저 병이 말하였다. “제가 산기슭에 당도하니 일력이 아직 멀었기로 날랜 힘만 믿고서 시냇가나 구부러진 길도 아니 거친데가 없이 서성대다 보니, 어둔 빛이 갑자기 몰려와서 바위 밑에서 잤습니다. 그 때 구슬픈 바람이 귓전을 흔들고 시냇물 소리가 요란하며 들짐승이 울부짖으며 돌아다니기에 처량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에 제 힘을 다하여 한번 달려 보려고 하다가 호랑이, 표범이 무서워서 그만두었습니다.”

을이 말하였다. “저는 뭇 봉우리가 소라껍질처럼 배열하여 있고 푸른 벼랑은 쇠를 깎은 듯하므로, 나는 듯이 달려가서 높은 데도 오르고 비낀 봉과 기울어진 고개를 낱낱이 뒤져 보니, 봉우리는 더욱 많고 더욱 급하였습니다. 그래서 저 역시 바위 밑에서 쉬었는데, 구름과 안개는 깜깜하여 지척을 구분할 수 없고, 옷은 써늘하고 신발은 젖어 뒤로 산마루턱을 오르자니 아직도 아슬 하고, 산 밑으로 내려가자니 역시 멀어서 그저 거기 주저앉고 올라가지 못하였습니다.”

갑이 말하였다. “저는 제 다리가 성하지 못한 것을 생각하고 내 걸음이 갸우뚱거리는 것을 예상할 때, 곧장 한 가닥 길을 찾아 한 걸음도 멈추지 않는다 해도 오히려 일력이 부족할까 염려되었는데, 어느 겨를에 옆으로 가고 멀리 바라볼 수 있었겠습니까? 마음과 힘을 다하여 한 치 한 푼이라도 오르고 또 올라 쉬지 않는 동안에, 따라간 사람의 말이 ‘이미 절정에 도달했다’ 하였습니다. 제가 우러러 하늘을 보니 해라도 맞댈 것 같고, 굽어 쌓인 수풀을 보니 무성하여 끝진 곳을 알 수 없으며, 뭇 산은 봉해 놓은 것 같고, 뭇 골짜기는 주름진 듯하며, 지는 해는 바다에 잠기고, 밑이 새까맣게 어두워져서 옆으로 보면 별들이 서로 빛나 손금도 볼 수 있을 만큼 환하니, 진실로 재미가 있었습니다. 누워서 편안히 잠들 새도 없이 닭이 한 번 울자 동방이 밝아 오니, 검붉은 빛이 바다에 깔리고 금빛 나는 물결이 하늘로 솟구치며 붉은 봉황과 금빛 뱀이 그 사이에서 요란하더니, 이윽고 붉은 바퀴가 구르고 굴러 잠깐 오르내리다가 눈 한번 깜박하는 찰나에 해가 공중으로 떠오르는데 정말로 아름다웠습니다.”

이에 아버지가 말하였다. “너희들이 그랬을 것으로 믿는다. 자로(子路)의 용맹과 염구의 재예(才藝)로도 끝내 공자의 담장에 도달하지 못하고, 증자(曾子)가 마침내 노둔함으로써 얻었으니, 너희들은 알아 두어라.” 아, 덕업을 닦는 차례와 공명을 성취하는 길에 있어 무릇 나직한 데로부터 높은 데 오르고, 아래로부터 위로 가는 것이 모두 그렇지 않은 것이 없다. 그러니 힘만 믿고 스스로 선을 긋지 말며 힘을 게을리 하여 스스로 포기하지 말면, 다리를 저는 사람이 스스로 힘쓰는 사람과 거의 같이 될 것이다.


④ 삼치설(三稚說)
꿩은 본래 뽐내기를 좋아하고 싸움을 잘한다. 한 마리의 장끼는 여러 마리의 까투리를 거느리고 산등성이나 산자락에서 노닌다. 특히 봄과 한여름은 번식기라서 까투리의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그러면 수놈인 장끼들이 그 소리를 듣고 날개를 푸드덕거리며 까투리 곁으로 날아간다. 그럴 때면 사람이 곁에 있어도 두려워하지를 않는다. 그것은 자기가 까투리를 먼저 차지하려는 데 있다.

이런 때에 사냥꾼은 덧을 치고 까투리를 미끼로 잡아매 놓고는 까투리의 울음을 흉내 내며 수놈을 유인한다. 그러면 수놈은 그 죽은 까투리 앞에 늠름하게 선다. 그때 사냥꾼은 미리 설치해 놓은 그물로 장끼를 덮어 씌워 하루에도 수 십 마리씩을 잡는다고 한다. 나는 사냥꾼에게 물어 보았다.

"꿩들의 욕심이 모두 같은가, 아니면 모두 다른가?"

"그것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 유형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산비탈이나 낮은 산기슭에는 수천 마리의 꿩이 있는데 저는 매일 같이 그곳에 가서 잡습니다. 그런데 어떤 놈은 그물을 한번 만에 잡을 수 있고, 어떤 놈은 두세 번 만에 잡는 수도 있고, 또 어떤 놈은 처음에 못 잡으면 끝내 못 잡는 수도 있습니다."

"아니 그것은 무슨 까닭인가? "

"제가 나무사이에 숨어서 대나무 통을 불며 미끼 까투리를 살아 있는 것처럼 움직이면 장끼란 놈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듣다가 목을 길게 뽑아 바라본 뒤에 땅을 박차고 빠르게 날아옵니다. 주위를 의심하지 않습니다. 이런 놈은 한번에 잡습니다. 이는 꿩 중에서 가장 어리석은 놈으로 화근을 생각치 않습니다.

그리고 다음은 대나무 통을 한번 불고 미끼를 한번 움직일 때는 마치 아무것도 듣지 못한 양 있다가, 두세 번 만에야 겨우 마음을 조금 움직여 고개를 뽑고 한동안 망설이다가 열 자쯤 날아올라 공중을 한바퀴 돌고는 두려운 기색으로 가까이 다가옵니다. 이런 놈은 한번 그물을 덮어 씌워서는 대부분 도망갑니다. 그리하여 두세 번쯤은 시도한 뒤에야 겨우 잡을 수 있습니다. 이런 놈은 꿩 중에 경계하는 마음이 많은, 화를 면하려 노력하는 놈입니다.

그밖에 지팡이 소리만 들어도 놀라서 후다닥 숲속으로 미련 없이 날아가 버리는 놈이 있습니다. 저는 이놈을 굳이 잡아 보려고 날마다 숲속을 헤매면서 온갖 방법으로 유인해 보지만 그놈이 사람을 꺼리는 것은 늘 마찬가지였습니다.

저는 마른 나무 등걸처럼 숨을 죽이고 서서 가까이 오기를 기다려 보았으나 그놈은 욕심이 적고 경계하는 마음이 많아서 좀처럼 가까이 할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그 뒤로 이런 놈은 대나무 통이나 미끼로는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한마디로 이런 꿩은 가장 영특해 화를 멀리할 줄 아는 놈입니다."

나는 사냥꾼 이야기를 들으며 이것이 족히 세상 사람에게 어떤 교훈(敎訓)을 준다고 생각하였다. 즉 쓸데없는 친구를 사귀고 여색을 좋아하며 남의 충고(忠告)를 무시하는 자는 부모도 가르칠 수 없고 좋은 친구도 그것을 말릴 수 없어서, 뻔뻔스럽게 나쁜 짓을 일삼다가 결국은 죄를 짓고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러고도 끝내 깨닫지 못하는 자가 있으니, 이것이 단 한번의 그물로 잡히는 꿩과도 같은 무리이다.

또 처음에는 욕망에 눈이 어두웠다가도 화가 두려워 몸을 도사리기는 하지만 주위의 나뿐 친구들이 꾀고 온갖 수단으로 호기심을 자극하면 결국 화근에 말려드는 사람이 있으니, 이런 사람이 바로 두 번쯤 그물에 잡을 수 있는 꿩과 같은 무리이다.

그리고 태어날 때부터 성격이 올곧아 스스로 자신을 자제하고 여색을 멀리하며 욕망에 초연한 사람은 나쁜 친구들이 감히 그의 뜻을 움직일 수 없어 주위에는 좋은 친구들만 있게 된다. 혹시 잘못을 저지르게 되더라도 뉘우치며 날마다 새로워져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데 이런 사람은 그물 같은 것으로는 잡을 수 없는 꿩과 같은 무리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생각해 본다. 좋은 도구와 훌륭한 기술로 많은 꿩을 잡는 것은 마치 나쁜 친구들이 마음 착한 사람을 유인하여 헤어날 수 없는 곳에 빠트리는 것과도 같다. 그것은 꿩 중에도 대나무와 미끼를 피할 수 있는 놈이 적은 것처럼 사람도 자신의 비위를 맞추어 주고 아첨하는 말을 따르지 않는 자가 적기 때문이다. 그러하거늘 부모로서 자기 자식이 단 한번의 그물로 잡힐 수 있는 그런 무리가 되기를 원하겠는가? 아니면 평생 잡히지 않는 욕심 없는 꿩과 같아지기를 원하겠는가? 그러니 너희들은 반드시 그런 것을 분별할 줄 알아 소홀히 여기지 말기를 바란다.


⑤ 요통설(曜通說)
시장통의 후미진 곳에다 관가에서 오줌통을 설치해 두고는 시장 사람들이 급할 때 이용할 수 있게 하였는데, 선비로서 몰래 그 곳에다 오줌을 누는 자는 불결죄(不潔罪)를 받는다. 시 장 근방에 사는 어떤 양반집에 변변치 못한 아들이 있었는데 몰래 그 곳에 가서 오줌을 누었다. 그의 아버지가 알고 호되게 야단쳤으나 아들은 듣지 않고 늘상 그 곳에다 오줌을 누었다. 오줌통을 관리하는 자가 금지시키고자 하였으나 그 아비의 위세에 눌려서 감히 말도 못 꺼내고 있었다. 온 시장 사람들이 모두 그르게 여기는데도 아들은 오히려 무슨 수나 난 것처럼 여겼다. 행신을 조심하느라 그 곳에다 오줌을 누지 못하는 자가 있으면 도리어 그를 비웃으면서,

"겁장이 같으니라구. 뭐가 겁난단 말인가. 나는 날마다 누어도 탈이 없는데, 뭐가 겁난 단 말인가." 하였다. 아버지가 그 행실을 듣고 아들을 꾸짖기를, "시장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곳인데, 너는 양반집 자식으로 백주 대낮에 그 곳에 오줌을 누다니, 부끄럽지도 않으냐. 남들이 천하게 보고 싫어할 뿐만 아니라 화가 따를 지도 모르는데, 뭐 좋을 것이 있다고 그런 짓을 하느냐." 하였다.

아들은, "저도 처음에는 그 곳에다 오줌을 누는 선비를 보면 얼굴에 침을 뱉으며 욕하였는데, 하루는 오줌이 몹시 마려워 그 곳에다 오줌을 누어 보니 몹시 편하였습니다. 그 후부터 는 그 곳에다 오줌을 누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합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이 제가 그 곳에 다 오줌을 누는 것을 보고는 모두 비웃더니 차차 비웃는 자가 줄어들고 말리는 자도 없어졌습니다. 지금은 여럿이 곁에서 보더라도 비난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러니 제가 그 곳에 오줌을 눈다 해서 체면이 깎이는 것이 아닙니다." 하였다.

아버지는, "큰일이다. 네가 이미 사람들에게 버림받고 말았구나. 처음에 사람들이 모두 비웃었던 것은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겨 네가 행실을 고치기를 바라서였던 것이다. 중간에 차츰 드물어지긴 했어도 그 때까진 그래도 너를 양반집 자식으로 여긴 것이다. 지금 곁에 서 보고도 아무도 나무라지 않는 것은 너를 사람으로 보지 않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아 라. 개나 돼지가 길바닥에 오줌을 싸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비웃더냐. 못된 짓을 하는데 도 사람들이 비웃지 않는 것은 너를 개돼지로 보기 때문이다. 너무도 슬픈 일이 아니냐." 하자,

아들은, "다른 사람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고 아버님만 그르다고 하시는데, 대체로 소원(疏遠)한 자는 공정하고 친한 자는 사정을 두는 법입니다. 어째서 남들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데 아버님께서는 도리어 저를 나무라신단 말입니까?" 하니

아버지가, "공정하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사람 취급을 안 해 아무도 나무라 지 않는 것이다. 그러니 그 기미가 너무도 참혹하지 않느냐. 사사로운 정이 있기 때문에 네가 그른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는 마음이 아파서 행여나 뉘우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그러니 그 정상이 너무도 애처롭지 않느냐. 네가 한번 생각해 보라. 세상에 부모 없는 자에게는 훈계해 주는 사람이 없는 법이다. 내가 죽은 뒤에는 내 말뜻을 알게 될 것이다." 하였다.

그 말을 듣고는 아들이 나가서 남들에게 말하기를, "노인네가 잘 알지도 못하고 나만 나무란다." 하였는데, 얼마 후에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다. 아들이 예전에 오줌 누던 곳에 가서 오줌을 누는데, 갑자기 뒤통수에 바람이 일더니 누군가가 그의 이마를 후려쳤다. 한동안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가 깨어나 후려친 자를 잡고 따지기를,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런 짓을 하느냐. 내가 여기에다 오줌 눈 지 10년이나 되었는데도 온 시장사람들이 아무소리 안했는데, 어떤 죽일 놈이 감히 이러느냐?" 하니, 후려친 자가, "온 시장 사람들이 참고 있다가 이제야 분풀이를 하는 것인데, 네놈이 아직도 주둥아리를 놀리는가." 하고는, 꽁꽁 묶어서 시장 한복판에 놓고는 돌을 마구 던졌다. 그 집에서 떠메고 돌아왔는데, 한 달이 넘도록 일어나지를 못하였다.

아들은 그제야 아버지의 훈계를 생각하고는 슬피 울면서 자신을 책하기를, "아버님 말씀이 꼭 맞았구나. 웃음 속에 칼날이 숨겨져 있고 성냄 속에 사랑이 담겼다 더니, 이제 와서 아무리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자 해도 들을 길이 없구나." 하면서, 관 앞에 머리를 조아리며 전의 못된 행실을 고치기로로 마음먹고 마침내 착한 선비가 되었다.

강희맹1(姜希孟, 1424~1483),〈훈자오설(訓子五說)〉,《사숙재집(私淑齋集)》

 

                                         강희맹 선생의 묘와 신도비 (경기도기념물 제87호)


  1. 강희맹은 조선초기 문신으로 뛰어난 문장가이며 유명한 화가였다. 자는 경순, 호는 사숙재, 국오(菊塢), 운송거사(雲松居士)등을 사용하였고, 시호는 문량, 본관은 진주이며 문종, 세조와 외종간이다. 세종 29년(1447년) 문과 친시에 을과1등위로 급제하였으며, 예종 때 남이를 죽인 공으로 익대공신이 되었으며 성종 때에는 이조판서·좌찬성 등을 지냈다. 훈자오설은 그의 자녀를 훈육하기 위해 지었다고 전한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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