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습득 코너

산수화 보는 법 / 조귀명

부흐고비 2009. 4. 20. 12:20

 

산수화를 보는 법 / 조귀명


진짜 산수는 그림과 비슷하기를 바라고, 산수 그림은 진짜와 비슷하기를 바란다. 진짜와 비슷하다는 것은 자연스러움을 귀히 여긴 것이요, 그림과 비슷하다는 것은 기교를 숭상한 것이다. 하늘의 자연스러움이야 원래 사람들이 본받을 만한 법이지만, 사람의 기교 또한 하늘보다 나은 점이 있지 않겠는가?

산촌의 으슥하고 빼어난 곳을 지날 때면 말을 멈추고 머뭇거리면서 그곳 사람들이 그림 속의 사람과 같다고 부러워한다. 하지만 그들을 만나 물어보면 그들은 즐겁다고 여긴 적이 없다. 그러니 그림 속의 사람에게 즐거운지 묻는다 해도, 역시 내가 아는 것처럼 그들이 반드시 즐겁다고 여기지는 않을 것이다.

공경대부 집안의 벽에는 대부분 산간의 촌락이나 들판의 별장에 은둔하면서 고기잡고 나무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그린 그림을 걸어놓고 있다. 눈으로 보면 즐겁지만 직접 살아보면 근심스러운 법이니, 어찌 잘못된 것이 아니겠는가? 더구나 하늘과 땅은 크나큰 밑바탕이요, 조물주는 크나큰 화가이다. 꽃과 잎으로 세상을 울긋불긋하게 칠하고 눈과 서리로 세상을 수묵화처럼 만드니, 고금의 세계는 그저 한 폭의 살아있는 그림 병풍일 뿐이다. 거대한 눈동자를 지닌 사람이 곁에서 본다면, 높다란 수레와 네 마리 말을 타는 고귀한 사람과 짧은 도롱이를 걸치고 가느다란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비천한 사람 중에 누가 등급이 높고 누가 낮겠는가?

나는 평생 기구하게 살았으나 유독 산수에만 연분이 있어, 지리산을 오르고 가야산을 구경하며, 삼동(三洞)을 찾아가고 사군(四郡)을 유람하였다. 하지만 이는 모두 스스로 기약하여 뜻을 이룬 것이 아니었다. 올 가을 화양동(華陽洞)으로 들어가려 하였으나 실행에 옮기지 못하였는데, 하늘이 내게 이 그림으로 누워서 실컷 유람하게 해 주었다. 여덟 폭의 환상적인 경관은 진짜 땅과 비교해도 모자랄 것이 없다. 어찌 낫고 못함을 따지느냐고 말하는 이가 있다면, 어찌 진짜와 가짜를 가릴 필요가 있겠느냐고 답할 것이다.

조귀명1(趙龜命,1693~1737), 〈그림첩에 쓰다(題畵帖)〉,《동계집(東谿集)》

 

 계상정거도(溪上靜居圖)_겸재 정선_개인 소장  

현재 사용되는 1000원 지폐에 삽입된 계상정거도

 

  1. 자는 석여(錫汝), 혹은 보여(寶汝)이며 호는 여럿인데, 그 중 동계(東谿)가 가장 널리 알려져 있다. 풍양조씨(壤趙氏) 명문가의 후손으로 상대주의적 시각을 바탕으로 개성적인 산문을 여럿 남겼다. 이 글은 원래 6칙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여기서는 그 중 넷만 보인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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