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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스승과 벗으로 삼게


학문을 할 때 사우(師友)와 떨어져 있어도 학문이 거칠어지지 않고 굳건히 대성하는 사람이 있다. 뜻을 굳게 정하여 마음대로 할 수 있다면 산천과 목석이 모두 나의 사우이기 때문이다. 만약 뜻이 정해지지 않아 스스로 학문을 내쳐버린다면 앞에 엄한 스승이 있고 곁에 곧은 벗이 있다한들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받을 수 있겠는가?

마천(瑪川)의 이휘백(李輝伯)은 자못 학문에 뜻을 두고 있는 사람인데 나에게 외가 동생뻘이 된다. 올해 나는 그를 만나러 갔다. 그의 집은 강가에 있는데 맑은 강물과 흰 모래가 시원하게 10여 리 뻗어 있다. 강가에는 산이 있고 산은 높고 깊어 우뚝 자란 나무들이 푸르다. 산의 겉면은 모두 바위인데, 그 모습이 강물에 어리비친다. 정원의 대나무는 수천 그루쯤 된다. 마을 주위에는 큰 소나무가 푸르고 울창하다. 휘백은 책을 읽으며 그 사이에 조용히 앉아 있다가 나를 보고는 기뻐하며 함께 이야기를 나누었다.

내가 말하였다.

“휘백의 집은 참 좋소.”

휘백이 말하였다.

“내 집은 좋은 곳이 아니오. 가까운 주변에 어울려 노닐 사우가 없어 종일 외롭게 지내고 본받을 사람이 없으니 내가 어떻게 분발할 수 있겠소? 내 집은 좋은 곳이 아니오. 나는 어릴 적에 아버지를 잃어 집이 가난하고 형제도 없소. 다행히 노모를 모시고 살고 있는데, 아침저녁 문안인사를 거르고 봉양을 그르치면서까지 스승을 따르고 벗을 찾으려고 멀리 갈 수가 없소. 나는 고단하고 무식하여 학문을 이루지 못할 것 같소.”

내가 말하였다.

“어찌 그렇겠소? 이것은 휘백에게 달린 일이요, 휘백의 뜻에 달린 일일세. 뜻이 정해지지 않았다면 스승을 모신 자리에서 가르침을 받더라도 바람으로 바위를 씻는 격이요, 벗과 강학을 하더라도 기름이 물 위에 뜬 격이니, 오랫동안 스승을 따르고 부지런히 벗을 찾더라도 스승과 벗의 도움을 바라지 못할 걸세. 뜻이 정해졌다면 멀리서 찾을 것도 없이 스승과 벗의 도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네. 물에서 스승 삼을 점은 맑게 흘러 멀리까지 이르는 것이요, 산에서 스승 삼을 점은 육중하여 움직이지 않는 것일세. 문식이 빛나고 바탕이 확고한 점은 바위가 스승이고, 마음이 비고 절조가 분명한 점은 대나무가 스승이며, 늠름하여 남에게 잘 보이려 들지 않고 우뚝하여 시세에 따라 변하지 않는 점은 소나무가 스승이라네. 묵묵한 가운데 오고 가는 것이 있어 성품과 기질이 절로 통할 것이니, 어찌 번거롭게 말을 할 필요가 있겠는가? 학문을 이루면 또 벗으로 삼을 수 있을 테니 벗으로 삼을 방도가 없다고 근심할지언정 벗이 없다고 근심할 필요는 없고 스승으로 삼을 방도가 없다고 근심할지언정 스승이 없다고 근심할 필요는 없네. 그러니 휘백은 먼저 뜻을 세우도록 하시게.”

숭정(崇禎) 기원후 두 번째 계해년(1743), 흥주후인(興州後人) 안석경(安錫儆)이 이 내용을 휘백의 정사(精舍)에 적는다.

안석경(安錫儆, 1718~1774), 〈마천정사기(瑪川精舍記)〉《삽교집(霅橋集》

 

▶ 백천교(百川橋) 중 부분_겸재 정선 / 조선후기

해설 - 이종묵 (서울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세상이 온통 실용적인 학문에만 쏠려 있다. 좋은 기술자를 만나 그 비법을 전수받아 단숨에 대가의 반열에 서고 싶어 한다. 그러나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은 그렇게 되지 않는다. 마음을 다스리는 방법을 가르쳐 줄 수 있는 스승은 만나기도 쉽지 않고, 설사 만난다 하더라도 마음을 다스리는 학문은 쉽게 이루어지지 않는다. 차라리 자신을 위한 학문을 하겠다는 굳은 의지를 지닌다면 삼라만상, 우수마발(牛溲馬勃)이 모두 스승이 될 수 있다. 이것이 옛사람의 공부방식이다.

삽교(霅橋) 안석경은 은자다. 세상에 나아가 벼슬하는 데 뜻을 두지 않았다. 이 글을 지은 것은 26세 때인 1743년이다. 안석경은 충주 가흥(可興)에서 태어나 부친을 따라 서울을 오가다가 이 해 원주의 흥원(興原)으로 내려와 살았다. 이 무렵 외가 쪽으로 아우가 되는 이영봉(李榮鳳, 자는 輝伯)이 양주의 한강가에 있는 마천정사에 기거하고 있었는데, 그를 위하여 이 글을 지어 준 것이다.

안석경은 젊은 시절에는 산사를 오가며 홀로 독서를 하였다. 그는 뛰어난 스승이나 벗을 구하려 하지 않았다. 심지만 굳으면 자연이 스승이 될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안석경은 자연이야말로 훌륭한 스승과 벗이라 하였다. 높이 솟은 산에서 흔들리지 않는 몸가짐을 배우고, 흐르는 물에서 맑고 원대한 정신을 배우라 하였다. 바위를 보면 찬란한 문식과 단단한 바탕을 배우고, 대나무를 보면 텅 빈 마음과 분명한 절조를 배우며 소나무를 보면 늠름하고 우뚝한 기상을 배우라 하였다. 이처럼 자연을 스승과 벗으로 삼을 방도를 생각하여야지, 스승과 벗이 없다고 근심할 필요가 없다고 하였다.

조선시대의 선비는 자연을 스승과 벗으로 삼았다. 김시습(金時習)은〈사심이 없음(無思)〉이라는 글에서 자신이 학문을 닦는 방법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산에 오르면 그 높음을 배우려 하고, 물가에 임하면 그 맑음을 배우려 하며, 바위에 앉으면 그 굳음을 배우려 하고, 소나무를 보면 그 곧음을 배우려 하며, 달빛을 대하면 그 밝음을 배우려 한다.”

김시습의 공부 방식과 안석경의 공부 방식이 비슷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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