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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맹(愚氓, 어리석은 백성)이란 호(號)


지난번에 이어서 호(號) 얘기를 하나 더 해야겠다. 중국에서 지식인들이 호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이르게 잡아도 송(宋)나라 중엽 이후이다. 우리가 잘 아는 맹자(孟子)가 이미 공자(孔子)의 자(字)인 중니(仲尼)를 호칭으로 불렀거니와, 이천(伊川) 정이(程頤)도 스승 주돈이(周敦頤)의 자인 무숙(茂叔)을 호칭으로 사용했으니, 당시에는 호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옛사람들은 자기 호를 지을 때 대개 학문의 지향(志向) 또는 자기 단점을 보완하는 뜻을 담았다. 예컨대 자기 성질이 경솔한 사람은 무거울 중(重) 자를 호에 써서 호를 통하여 자신을 반성하곤 했던 것이다. 특히 자기가 지은 자호(自號)에는 자신을 낮추는 겸손한 자세가 드러나는 경우가 많고, 그것을 오히려 멋으로 쳤다. 남의 귀한 이름을 곧바로 부르지 않고 자를 부르거나 호를 부르는 것은 인격을 존중하는 인문정신에서 나온 한문문화의 아름다운 전통이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호를 부르는 문화는 거의 사라져서 호를 부르기도 쑥스러워졌다. 그나마 불리어지는 호들에도 겸손한 뜻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학문과 인격이 높은 선현(先賢)이건 스승이건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정직한 학문자세인 양 비쳐지는 오늘날, 오히려 옛 선비들처럼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호를 하나쯤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남에게 내놓고 부르기 부끄러우면 그저 자기 마음속에 새겨두고 가만가만히 스스로 불러서 자신을 일깨워도 좋을 것이다.



작년에 산재(山齋)에서 피서했는데 함께 지냈던 사람은 재종 아우 현도(現道)와 벗 김내량(金乃良)이었다. 장소는 외지고 인적이 드물기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못할 말없이 맘껏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얘기 중에 내가 내량을 우맹(愚氓)이란 말로 놀렸으니, 이는 내 딴에는 우스갯말로 한 것이었다. 그런데 내량이 화를 내기는커녕 도리어 기뻐하며 말하기를 “평소에 내가 내 호(號)를 찾고 있었으나 적당한 것을 얻지 못했는데 지금에서야 얻게 되었습니다. 우맹이란 호칭이 내게 딱 맞습니다.” 하였다. 그래서 내가 “안 된다. 어리석을 우(愚)란 마음에 가려져 막힌 곳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니, 우리들 중에 누가 가려져 막힌 곳이 없겠는가. 그러므로 자네와 내가 서로 어리석다고 꾸짖는다면 우리 두 사람의 실상에 꼭 맞겠지만 만약 이 어리석다는 것으로 자네의 자호(自號)를 삼는다면 분수에 넘치는 짓이다. 어째서 그러한가?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속눈썹을 볼 수 없는데, 어리석으면서 스스로 자기가 어리석은 줄 안다면 응당 중지(中智)라고 해야 할 터이니, 자네가 어찌 이 정도 수준에 미칠 수 있겠는가. 자신을 어리석지 않다고 여기는 사람이라야 진짜 어리석은 사람이다. 자네가 자호(自號)를 쓴다면 응당 불우(不愚)라 해야 할 것이네.” 하였다.

내량이 나의 계속되는 우스갯소리가 그치지 않을 것임을 알고서 한걸음 양보하여 대답하기를 “나의 어리석음이 이 정도나 되는구려.” 하였다. 현도는 킥킥거리며 혼자 웃고 있었다. 이윽고 해가 저물고 별이 서쪽 하늘에 뜨기에 세 사람은 저마다 집으로 돌아갔다.

올해, 작년 이맘때쯤 되었을 때 뜻밖에 내량이 ‘우맹’이란 호에 대해 스스로 쓴 서문(序文) 한 통을 가지고 와서 내게 보여주며 말하기를, “내게 호가 있게 된 것은 오직 형님 덕분이니, 짧은 글 하나를 써 주어 길이 명심하게 해 주시오.” 하였다. 나도 모르게 깜짝 놀라 말하기를 “한 때의 우스개로 한 말이 어찌 이런 결과에 이르렀단 말인가! 자네는 자신의 어리석음을 진짜 아는 데 이른 것이 아니겠는가. 만약 그렇다면 나는 응당 중지(中智)라는 높은 호를 재배하고 바칠 것이니, 어찌 자네에게 다시 농담을 하겠는가.” 하였다.

그렇지만 당시 얘기의 연유(緣由)를 내가 말하지 않으면 아무도 듣고서 아는 이가 없을 터이기에 그 얘기의 전말을 서술하여 우맹설(愚氓說)이란 글을 지어서 나의 진짜 어리석음을 스스로 증명한다.

- 기정진(奇正鎭) <우맹설(愚氓說)> 《노사집(蘆沙集)》

 

장성 고산서원 : 노사 기정진을 중심으로 이최선ㆍ기우만ㆍ조의곤ㆍ김록휴ㆍ조성가ㆍ정재규 등의 위패를 모신 서원이다. 노사는 순조 31년(1831) 과거에 급제한 후 많은 관직에 임명되었으나 모두 사퇴하고 이곳에서 학문 연구와 후학양성에 힘썼다고 한다.(문화재청 홈페이지)


호남의 거유(巨儒)인 노사(蘆沙) 기정진(奇正鎭 1798~1876)의 글이다. 근엄한 도학자의 이미지와는 달리 이 글은 재치와 유머가 넘치면서도 담긴 뜻이 결코 가볍지 않다.

산속에 있는 집에서 피서하면서 노사가 재종 아우 내량에게 농담으로 우맹(愚氓), 즉 어리석은 백성이라 불렀는데 내량이 오히려 자신의 어리석음을 인정하고 우맹이란 호칭을 받아들여 자신의 호를 삼았다. 이에 노사는 내량은 자신이 어리석은 줄 알았으니 중지(中智), 즉 중간 수준의 지혜로운 사람이라 할 수 있고, 정작 내량을 우맹이라 불렀던 노사 자신은 자기의 어리석음을 몰랐다고 했다. 그리하여 이 글을 써서 내량이 어리석지 않음을 증명하였으니, 그것이 실은 노사 자신의 어리석음을 증명하는 셈이 되는 것이다.

겹겹이 농담이라 농담 치고는 차원이 높다. 그러나 한갓 농담에 그치고 말 뿐은 아니라 농담을 하면서도 남을 배려하고 자신을 돌아보는 지혜가 있으니, 참으로 격조 높은 농담이 아닐 수 없다.

옛날에 성질이 급했던 서문표(西門豹)는 질기고 부드러운 생가죽[韋]을 몸에 지니고 다니고 보면서 너그러운 성품을 유지하고, 성질이 너무 느슨했던 동안우(董安宇)는 팽팽한 활줄[弦]을 몸에 지니고 다니고 보면서 긴장감을 유지했다고 한다. 《한비자(韓非子)》에 나오는 얘기이다. 주자(朱子)의 부친인 주송(朱松)의 호가 위재(韋齋)였으니, 그도 어지간히 성질이 급했던가 보다. 주자의 호인 회암(晦庵)에는 자신의 재능을 남에게 드러내지 않고 속에 감춘다는 겸손한 학문자세가 들어 있다. 이렇듯 고인(古人)의 호에는 자신을 반성하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는 호를 사용하는 사람도 드물거니와 간간이 들리는 호들도 천박하고 격이 낮다. 서예를 하는 사람들이나 종교 신자들의 호는 대개 호를 쓰는 본인과 아무런 관련이 없고, 심지어 천편일률적인 호들도 많다. 세상에 이름이 알려진 사람들의 호를 보더라도 거산(巨山)이니 일해(日海)니 탄허(呑虛)니 일붕(一鵬)이니 하는 호들은 얼마나 어처구니없이 큰가! 이러한 호에는 자신을 높이려는 무딘 욕심만 보일 뿐 자신을 돌아보는 겸허한 지혜는 찾아볼 수가 없다. 이런 호를 쓸 바에는 차라리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편이 낫지 않겠는가.

글쓴이 : 이상하 (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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