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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장군전(朱將軍傳)
송세림(宋世琳) 지음 / 이웅재 해설
장군의 성은 朱(붉음)요, 이름은 猛(사나움)이고, 자는 仰之(치켜듦)니 그 윗대는 낭주(閬州=囊州; 陰囊을 가리킴)사람이었다. 먼 조상은 剛(단단함)인데, 孔甲(구멍 난 조가비)을 섬기되 남방 朱雀의 曆象之官(천문을 보는 직책)을 맡아 出納(들어갔다 나갔다 함)을 성실하게 수행하였던 바, 공갑이 이를 가상히 여겨서 감천군(달콤한 샘)을 탕목읍(물건의 모가지를 씻는 욕탕)으로 食邑을 삼게 하니 자손이 이로부터 가문을 이루게 되었다.
아비의 이름은 赩(낯 붉음)이며, 열 임금을 두루 섬겨 벼슬이 中郞將(秦漢시대에 宿衛[숙직하여 지킴]를 맡던 벼슬이 중랑이었으니, 중랑장은 그 중의 우두머리를 가리키는 말이다)에 이르렀고, 어미 陰씨는 본관이 朱崖縣(붉은 물가의 고을)인데 대력(大曆) 11년에 맹을 낳았다. 맹은 타고난 생김새부터가 범상함을 뛰어넘었는데, 눈은 다만 한 개뿐이고 털이 숭숭하게 난 이마에 성격은 매우 강직하여 굽힘이 없었다. 게다가 여력(膂力;근육의 힘)이 남보다 뛰어나서 화를 낼 때에는 수염을 갑자기 뻗치고 울끈불끈 그 근육을 드러내고 오래도록 읍하는 모습 그대로 굽힐 줄 모르기도 했으나, 남을 공경하고 근신할 줄도 알아서 수시로 몸을 꺼떡꺼떡하기도 했다. 언제나 赤土빛의 團領(조선시대 깃을 둥글게 만든 관복)을 입고 비록 嚴冬이나 暴暑를 만날지라도 벗을 줄을 몰랐다. 또 동그란 알 튀기기를 잘해서 들락날락할 적마다 두 붉은 주머니를 치면서 잠시라도 몸에서 떨어지게 하지 않았으므로, 세상 사람들이 독안용(獨眼龍;외눈박이 용)이라 불렀다.
이웃에 掌中仙(손바닥 가운데의 선)과 五脂香(다섯 개의 기름진 향, 곧 통통한 다섯 손가락)이라는 기생이 있었는데, 맹은 그녀들이 마음에 들어 함께 私通하였는데, 두 기생은 질투하여 서로 번갈아 받들어 모시는 바람에 맹은 눈시울이 몇 군데 찢어지고 눈물과 콧물이 옷깃을 적실 지경에까지 이르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이를 달게 받으며 희롱하여 말하되,『하루라도 너희들의 주먹으로 두들겨 맞지 않으면 비루해지고 恨스러운 마음이 싹터 오르는구나.』라 하였다. 이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를 천하게 여겼다. 그러자 맹은 절조를 굽힌 것을 뉘우치고 깨달아 기운을 북돋우어 항시 늠름하고자 하는 마음을 품었다.
河亶甲(殷나라 10대 임금)이 卽位한 지 3년에 齊郡(齊는 臍[배꼽 제]와 통함) 刺使(刺史는 수령인데, 刺使라 하여 찔러대는 사신이라는 의미로 사용) 桓榮이[하단갑이나 환영은 세속에서 음탕한 창기를 가리키는 말. 하단갑은 물밑 조가비?, 환영은 화냥?] 아뢰기를,『군 아래(郡은 臍郡; 곧 배꼽 아래)에는 오래된 보지(寶池;보배로운 연못)가 있사온데 샘물이 달고 땅이 기름진 곳입니다. 그런데 근자에 가뭄이 심하여 물이 말라붙어 연못이 모두 불그스레해졌을 뿐만 아니라 이따금 못 기운이 위로 올라와 사라져버리고 습기가 차서 막혀버리고 있사오니, 원하옵건대 폐하께서는 즉시 朝臣을 파견하시와 地神을 달래시고 깊숙하게 뚫는 役事를 감독하시어 기름진 못물이 흘러내릴 수 있도록 하신다면 이는 한갓 천하의 근본을 잃지 않게 되올 뿐 아니오라 무릇 혈기가 있는 사람이라면 비록 匹婦라 할지라도 그 어느 누가 폐하의 조치에 기꺼이 감동하지 않겠사옵니까?
왕은 그 아뢰는 말을 옳게 여기시었으나, 그렇게 할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웠다. 여러 신하들에게 일일이 자문하니 溫陽府의 經歷(문서의 출납을 맡아 보는 직책) 朱泚가 맹을 추천하면서 가히 쓸 만하다고 하니, 왕은 이르기를,『속담에 이르기를…「눈이 바르지 못하면 그 마음도 바르지 못하다」했고, 또 이르기를 「나쁜 땅에는 초목이 나지 않는다」했는데, 내가 듣기로는 맹은 머리는 어린애머리처럼 민대가리인데다가 눈도 천박하게 세로로 쭉 찢어졌다 하니, 그것이 안타깝구려!』하였다. 주자가 冠을 벗고 머리를 조아리면서 말했다.『옛적 어진 임금은 오히려 두 알로써 간성지장(干城之將)을 버리지 않았다 했는데, 어찌 용모 하나가 칭함을 받지 못한다 하여 대뜸 버리시려 하시나이까?』
왕이 말없이 오래도록 앉았다가,『경의 말이 옳도다. 다만 맹이 고개를 깊은 숲속으로 처박고 품은 정기도 감추고 지내면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제 모습이 보일까 걱정하고 있는 판국이니 그가 짐을 위하여 기꺼이 벌떡 일어나 줄지 의문이오.』주자가 이르기를,『맹의 성품이 단단하고 부드러움을 겸하고 있으니, 神氣를 드러내면 그 위력이 연못[寶池]의 밖에서는 마치 사나운 짐승의 울부짖음 같이 요란스러우나, 절개를 굽혀 연못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사지에 뼈가 없는 것처럼 되어버리지만, 아마 폐하께서 성심껏 힘써 청하신다면 무슨 말로 사양할 수가 있겠나이까?』
왕이 주자로 하여금 날을 받아 폐물을 가지고 찾아가도록 영을 내려 재촉하였더니, 맹이 흔쾌히 부름에 응하였다. 왕이 크게 기뻐하여 당장 折衝(상대와 교섭하거나 담판함)장군에 임명하시고 보지소착사(寶池䟽鑿使;보배로운 연못을 툭 트이도록 뚫는 사신)로 명하시니, 맹은 명을 받들자마자 당장에 시행하였다. 이에 앞서 이성(尼城)사람 맥효동(麥孝同)이[속담에 이르기를 음탕한 비구니가 보릿가루를 빚어 (남근 모양의)고깃덩어리의 기구를 만들어 그 모양으로 이름하여 맥효동(보리로 만든 효자, 同은 輩와 통하여 사람을 가리킴)이라 하였다. 곧 남근 모양의 기구] 사사로이 방책을 세워서 깊이까지 뚫는 효험을 보이고자 힘써 분투하다가 장군이 이르자 부끄러워 얼굴을 붉히고 물러갔다. 장군은 사방을 두루 살피고 수염을 치켜들고 턱을 끄덕거리면서 말하기를,『이 땅은 북으로 옥문(玉門;음문)산이 솟아 있고, 남쪽으로 황금굴(음문의 통로)이 이어져 있으며, 동서쪽으로는 붉은 낭떠러지가 서로 둘러서 있고, 그 가운데에 바위 하나가 있는데, 그 모양은 흡사 감씨(陰核을 말함)를 닮아서, 진정 術客들이 이르는 바, 「要衝의 땅이요, 붉은 용이 구슬을 머금은 형세라」 진실로 힘이 쇠잔한 자만 아니라면 쉽게 뚫어 성공할 수 있을 것이로다.』하고 드디어 그 형세를 조목조목 진술하여 表를 올리니, 그 대략은 이러하다.
『신 맹은 선조가 남기신 업적을 이어받아 성스러운 임금의 크나큰 은혜를 입었으니, 천리의 적을 꺾어 죽음으로써 한 번 충절을 본받으려 하는 바이라, 어찌 외방에서의 오래된 수고로움이라 하여 꺼리겠습니까? 공로를 이룬 다음에라야 그만둘 것을 다짐하옵는 바, 지금 몸이 감천(단물이 나오는 샘)군에 이르렀지만 감히 일을 갑작스럽게 도모할 수야 있겠습니까? 저는 지금 玉門關 속에 들어와서 오직 날마다 형세를 관망하고 있는 중입니다.』
왕이 표를 보시고 즐겨 마지않으시면서, 옥새(玉璽)가 찍힌 문서를 보내어 그의 공적을 칭찬하는 글을 내렸다.『서방[서방(西方)은 세속에서 말하는 ‘서방(書房)’이다.]의 일은 경에게 맡겼으니, 경은 힘쓸지어다.』맹이 조서를 받들어 머리를 조아리고, 몸을 빼어 홀로 그 일을 담당하였다. 혹은 살살 타이르기도 하고 혹은 깊숙이 파헤치기도 하며, 또 가다가는 얼굴을 반만 내보였다가 때로는 얼굴 전체를 나타내기도 하고, 구부렸다가 폈다가 내려다보았다가 올려다보았다가, 번갈아 들락날락, 몸을 굽혀 있는 힘을 다해 필사적으로 일을 성사시키려고 노력하였다.
일이 미처 반도 되지 않아서 비로소 맑은 물줄기 몇 갈래가 흘러나오더니, 갑자기 희뿌연 물길이 세차게 용솟음쳐 나와 모든 섬과 수풀이 몽땅 물에 잠기게 되었다. 장군도 머리와 온몸이 흠뻑 젖었으나 스스로 태연자약하게 꼿꼿이 서서 터럭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마침 슬생(이)과 조생(벼룩)이 있어 일찍이 ‘좃’씨[‘爪氏는 방언에서 손톱을 지칭한다’며 눙침.]의 患을 당하여 숲속에 숨어 있다가 역시 세찬 물결에 표류하여, 흘러서 황금굴까지 흘러와 寓居하다가 슬피 울며 살려달라고 하니, 굴신이 입을 찡그리며 근심스럽게 말하였다.
『요사이는 나 역시 이런 환난을 여러 번 당했는데 그가 미음이라도 먹여주는 것을 고맙게 여겨 자루 끈을 동여매듯 말하지 않음이 오래였으나 이제 그대들 두 사람을 위해서 그치도록 도모해 보겠소.』조생 등이 좋아라고 날뛰면서 말하였다.『이 일은 저희들의 생사에 관한 일이요, 뼈에 살을 붙임과 같은 일입니다!』
굴신이 池神에게로 가서 힐문하여 말하였다.『너희 집에 심한 손님이 언제나 이환낭(二丸囊; 불알)을 우리 집 문 앞에다가 척 걸어두고 때도 없이 들락날락하기를 처음은 드문드문하더니 나중에는 너무 잦아져 우리 집 뜰과 문을 흠뻑 적실뿐만 아니라 문짝까지도 어지럽게 쳐대니 감히 이처럼 미친 듯 경솔할 수가 있느냐?』 지신이 사죄하여 말했다.『손님은 거칠고 주인은 유약해서 그 폐가 존신(尊神)께 누를 끼쳤으니, 이제 존신을 위하여 마땅히 그를 죽여 버리겠습니다.』바야흐로 오밤중이 되어 지신이 주장군이 힘써 노역하는 것을 가만히 엿보다가, 몰래 장군의 머리를 깨물고 또 두 언덕의 신에게 칙령을 내려 협공케 하니 장군은 기력이 다하여 몇 숟갈의 골수를 흘리며 머리를 늘어뜨린 채 죽고 말았다.
부음을 듣고, 왕은 몹시 애통한 나머지 조회마저 파하고 맹에게 특별히 <장강직효사홍력공신(長剛直效死弘力功臣;길고 빳빳하고 곧으며 사력을 다해 온 힘을 바친 공신)이란 호를 내리시고, 예를 갖추어 곤주(褌州; 잠방이)에 장사지냈다. 나중에 어떤 사람이 장군이 모자를 벗고 이마를 드러낸 채 늘 寶池 가운데에서 노니는 것을 보았다고 하니, 불생불멸을 물리치는 석가모니의 도를 배운 자가 아닌가?
史臣은 말한다.『장군은 일찍이 사람을 감복시키는 힘을 가지고 초야에서 떨쳐 일어나, 만 번이나 죽을 계획을 세우고, 털 하나 없는 곳에까지 깊숙이 들어가 정력을 쏟아 붓는 혜택을 베풀었다. 연못은 사람이 들어가기에는 너무 깊어서 십 년이나 걸려야 할 봇도랑의 血을 통하게 하는 공을 하루아침에 시원스레 이루어서 가히 깊이 박은 뿌리는 튼튼하고 그 근원은 깊다고 할 수 있겠다. 비록 마지막에는 지신의 오해를 받아서 숨 한 번 쉴 사이에 운명하고 말았으나, 그 행한 바 일들의 업적을 공평하게 생각해 보면, 가히 용감하기도 하였으나 겁도 잘 내어서 자신의 몸을 희생해서 仁을 성취한 것이라고 할 수가 있겠다. 아하, 애처러운지고! 』
[해설]
지은이 송세림(宋世琳)은 여산인(勵山人)으로 자는 헌중(獻中)이요 호는 눌암(訥菴)이니 성종 10년(成宗 1479) 태인(지금의 七寶面 詩山里)에서 태어났는데, 어려서부터 총명하여 나이 겨우 20에 생원진사 시험에 합격하였고, 3년 뒤에는 문과에 장원급제하였다. 연산 9년(燕山 1503) 이조좌랑(吏曹佐郞)까지 올랐으나 시묘(侍墓)살이를 하다가 병에 걸려, 그로 인해 세상에 자취를 감추었으므로, 다행히 연산 10년(燕山 1504)의 갑자사화에는 걸리지 않을 수 있었다.
그 후 취은(醉隱)이라 개호하고 은둔하였는데, 한가로운 시간 ‘잠을 쫓는 방패’라는 뜻의 글 “어면순(禦眠楯)”을 지었다. 이 글은 “어면순” 속에 들어있는 글이다.
번역 및 주(註)는 김창룡(金昌龍)이 지은 “한국가전문학선”(정음사 간,1985)을 따랐으나 해설자가 맞춤법, 띄어쓰기 그리고 부분적 윤문과 보주(補註)를 덧보탰음을 밝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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