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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인설 / 김시습

부흐고비 2011. 8. 29. 07:48

참선과 인(仁)


세상이 아무리 발전해도 사람들이 고대의 사상에 여전히 관심을 보이는 것은 생명의 근원, 삶의 본질적인 가치를 거기서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불교라 하면, 우리는 깨달음과 자비를 먼저 떠올린다. 그런데 대개 참선하는 선객(禪客)들에게서는 존재의 근원을 꿰뚫고 생사(生死)를 단숨에 끊으려는 명징(明澄)하고 단호한 눈빛은 읽을 수 있고, 사람을 평온하게 품어주는 자비는 좀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불타의 동체대비(同體大悲)는 더욱 찾아보기 어렵다. 오늘날 불교계 일각에서도 바로 이 점을 선불교(禪佛敎) 편향의 문제점으로 비판하고 있다. 조선전기에 매월당 김시습(金時習)은 인(仁)이 결여되었다고 참선의 결함을 지적하였다.


인(仁)이란 천지가 만물을 생성하는 마음이고 우리가 덕(德)으로 삼는 것이다. 대개 마음의 온전한 덕은 지극한 이치가 아님이 없는데 인이란 내가 이를 말미암아 태어났고 만물과 그 근원을 같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본성의 주체로서 사덕(四德)의 우두머리가 되어서 나머지 의(義)ㆍ예(禮)ㆍ지(智) 셋을 아울러 포괄한다. 나머지 셋을 아울러 포괄하므로 정(情)으로 발현하는 것이 사단(四端)이 되고, 이 사단 전체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이 또 관통한다. 관통하기 때문에 수오(羞惡)ㆍ사양(辭讓)ㆍ시비(是非)가 그 작용이 되는데 언어와 동작 등 모든 행위에서 인성(仁性)을 본체로 삼지 않음이 없다.

만약 그 본체가 없어서 사사로운 생각이 제멋대로 일어난다면 가까운 친족을 사랑하는 것과 만물을 두루 사랑하는 것의 구분, 신분의 높고 낮은 등급의 차이, 공경하고 겸양하는 즈음, 시비와 사정(邪正)의 분변에 있어 잘못이 없을 수 없을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인(仁)을 실천하는 사람은 모름지기 자기의 사욕을 극복해야 하니, 자기 사욕을 극복한다면 마음이 툭 트여서 지극히 공정하여 타고난 본성을 잘 보전한다. 이렇게 되면 본성에 갖추어진 이치가 막히고 가려지는 바 없어서 본성이 사물에 적용되는 것이 모두 도(道)에 맞지 않음이 없다. 그리하여 나의 본성이 천지 만물과 유통하여 천지가 만물을 끊임없이 생성하는 이치를 나의 마음에 두루 포괄하지 않음이 없게 된다.

그렇다면 계(契)란 무엇인가? 계란 합한다는 뜻이니, 이른바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이 이것이다.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은 단지 터럭만한 사욕도 없어, 활짝 트여 더없이 맑은 것일 뿐이다. 그러나 ‘더없이 맑다’는 것은 단지 문을 닫고 고요히 앉아서 눈을 감고 머리를 숙인 채 사물을 전혀 접응(接應)하지 않는, 선가(禪家)에서 말하는 ‘마음을 그저 쉬고 쉰다.’는 것이 아니다. 대개 사물을 만나 응접하거나 행위와 동작을 할 때 한 점 사사로운 생각도 없어서 한 마음의 묘한 이치가 위에 말한 것처럼 두루 천지 만물과 유통하여 모든 이치를 포괄하지 않음이 없는 것이다.

계인(契仁)은 승려이다. 승려가 정좌하여 마음을 억눌러 참선을 하는 것이 유자(儒者)에게 비판받는 것은 단지 인(仁)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계인씨가 만약 인에 힘을 쓸 수만 있다면 정좌할 때 그 마음이 온전히 지극한 이치라 조금도 흠궐(欠闕)이 없고 사물을 접응하고 대응할 때 하늘로부터 받은 본성이 사단(四端) 밖으로 가득 발현할 터이니, 인(仁)의 작용은 굳이 작은 은혜를 베풀어 남을 사랑한 뒤에야 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훗날 머리에 관을 쓰고 집안과 나라에서 일하고 조정에 설 때 어디서나 사람들이 우러러 보지 않음을 없을 것이요, 물러나 몸을 감추고 누추한 거리나 외진 산골에 곤궁하게 살아도 마음에 절로 기뻐서 마치 봄기운 충만한 듯, 느긋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화락(和樂)하여 그 절개를 바꾸지 않을 터이니, 아! 아! 인(仁)의 분량이 크도다.

성화(成化) 경자년 입추일(立秋日)에 벽산청은옹(碧山淸隱翁)은 설을 쓰노라.

김시습 (金時習) <계인설(契仁說)>《매월당집(梅月堂集)》


이 글은 매월당(梅月堂) 김시습(金時習 1435~1493)이 52세 때 계인이란 승려에게 써 준 글로 계인이란 호에 의미를 부여한 글이다. 벽산청은(碧山淸隱)은 매월당의 다른 호이다.

매월당은 사욕이 없어지면 사람의 본성인 인(仁)이 저절로 발현하니, 마음을 인위적으로 다스리는 참선은 옳지 않은 공부 방법이고, 본성을 잘 보전하면 그 마음이 천지만물의 이치와 하나가 된다고 하였다. 그리고 계인(契仁)이란 호의 뜻을 인(仁)에 계합(契合)하라는 것이라 설명하였다. 굳이 마음을 눌러 다스리지 않아도 마음에 사사로운 생각만 없어지면 바로 인에 계합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굳이 산 속에 있지 않고 세상에 나가 일을 하더라도 항상 마음이 안락할 것이라고 하였다.

범어인 석가모니를 의역(意譯)하여 능인(能仁)이라 하므로, 계인이란 호가 본래 유가의 인(仁)에 계합하라는 뜻을 가졌다고 볼 수는 없다. 그런데 승려의 호를 유가(儒家) 공부에 적용하고 유가의 학설로 그 의미를 부여한 것은 매월당 같은 괴짜가 아니면 하기 어려울 터다.

당(唐)나라 때 문장가 한유(韓愈)가 문창(文暢)이란 승려에게 준 <송부도문창사서(送浮屠文暢師序)>에서 유가의 도가 아니라 불교의 설로써 승려에게 글을 써 준 사람들을 비판하고, 유가의 도의 훌륭함을 설파, 은근히 환속할 것을 권한 바 있다. 이후로 유자(儒者)들은 승려에게 시문(詩文)을 써줄 때 은근히 승려들을 낮추어 보고 무시하는 경향이 있어왔다. 그렇지만 매월당처럼 불교를 수행하는 승려에게 유가의 인(仁)을 수행의 요체로 삼아서 설명하고, 환속하여 유가(儒家)의 삶을 살라고 노골적으로 권한 경우는 드물다. 게다가 그 자신도 불교의 학설에 심취하여 《조동오위요해(曹洞五位要解)》ㆍ《십현담요해(十玄談要解)》 등 중요한 저술을 남겼으며, 입산과 환속을 거듭하다 만년에는 결국 승려의 신분으로 돌아갔지 않은가.

오늘날 우리 사회는 이념과 지식이 과잉(過剩)하여 넘친다. 흑백의 색안경을 낀 채 불요불급(不要不急)하며 불분명한 지식들을 머리 속에 잔뜩 담고서 비틀비틀 불안한 걸음을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다. 보이는 것마다 나누고 쪼개어 나와 적을 구별하고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는 너무 많다. 지식인들은 옛날에 군자와 소인을 나누듯이 나와 상대편을 나누어 서로를 한사코 반대하고 부정한다. 이제 좌니 우니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갈등은 더 이상 우리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력이 되지 못한다. 한갓 부질없는 대결이며, 때로는 진실을 호도하는 책략이 될 뿐이다.

지금에 와서는 매월당과 같이 불교의 참선과 유교의 인(仁)을 변별할 겨를이 없다. 나와 남의 경계선을 잊고 나와 남을 하나로 느끼게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이 사회의 고질병을 조금이라도 치유할 수 있다면, 그것이 무엇이건 불문곡직 받아들여야 하지 않겠는가.

글쓴이 : 이상하(한국고전번역원 부설 고전번역교육원 교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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