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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눈-2 / 주인석
절집을 안방 드나들듯 하는 사람이 있다. 주기적으로 가지 않으면 불안한 모양이다. 절집을 다녀와야만 마음이 놓인다는 N여인은 평생 근심거리를 달고 산다. 그냥 넘어가도 될 일을 들고 절집을 찾아간다. 그러니 사흘도록 절집 마당을 밟는 것이다.
그녀는 부처 앞에 꿇어앉는다. 그녀가 부처 앞에서 중얼거리며 기도를 올릴 때는 보채는 아이 같다. 때론 벙어리처럼 한참 동안 말없이 법당에 앉아 있는데 그럴 땐 너무나 처량하게 보인다. 고개까지 숙일 때는 그녀가 죄인 같아 보기가 싫다.
나는 실눈처럼 열린 꽃살문에 붙어 서서 그녀와 부처를 번갈아 본다. 나도 그녀와 같은 편이 되어 부처에게 선처를 바라는 눈으로 올려다본다. 그러나 부처는 초지일관 똑 같은 눈빛이다. 안타까운 마음을 가득 실었는지 오히려 떨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좀 더 강하게 살았으면 좋으련만 어찌 그리 약하게 살아 마음을 아프게 하느냐는 눈이다.
그녀는 힘들거나 일이 안 풀릴 때는 부처와 독대를 한다. 그래야만 일이 해결 된다는 것이다. 부처는 아무 말이 없다. 꾸지람도 하지 않는다. 다만 애처로운 눈으로 보기만 할 뿐이다. 그 눈에서 그녀는 어떤 위로를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한번 의지하기 시작하니 끝도 없이 기대게 되는 모양이다.
부처의 온화하고 가는 실눈이 때론 원망스럽다. 대수롭지 않은 일을 들고 찾아 왔을 때는 무서운 눈으로 내쳤으면 좋으련만 항상 애련한 눈으로만 보아 주기에 어리석은 중생은 더 약해지는 것이다. N여인이 늘 근심을 달고 사는 것도 기대면 언제라도 받아주는 마음 좋은 부처 때문일 것이다. 나는 부처를 보면서 아버지를 떠올린다. 언제나 온순한 얼굴로 부처 같이 언니를 대하는 아버지한테 나는 불만이 많다.
언니는 나이 오십이 훌쩍 넘어도 어린양하는 아이 같다. 사소한 일이 생겨도 아버지를 찾아가 징징거린다.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난다고 아버지가 자꾸 받아 주니까 언니의 투정은 나이가 들어도 멈출 줄 모른다. 언니를 사흘돌이로 만든 것은 아버지의 따뜻한 눈빛 때문이다.
아버지의 온화하고도 염려가 가득 담긴 눈을 처음 본 것은 언니가 아버지의 기대를 저버리고 시집가겠다고 했을 때다. 나이 갓 스물에 빈털터리 남자와 결혼하겠다고 막무가내로 떼를 썼던 언니다. 그때 아버지는 언니를 방에 붙들어 앉히고는 안타까워 죽겠다는 눈으로 달랬다.
언니는 아버지 앞에 꿇어 앉아 허락해달라고 엉엉 울며 애원했다. 그러다가 이내 실성한 사람처럼 멍하니 앉아 있기도 했다. 언니가 아무 말 없이 가만히 있을 때 나는 더 불안했다. 혹시라도 언니가 정신병에 걸리지나 않을까 걱정이 되었다.
나는 삐죽이 열려진 세살문 고리를 잡고 서서 아버지와 언니를 교대로 보았다. 아버지의 선처를 마음속으로 빌고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의 한결 같은 눈빛은 언니 마음을 돌리고자 물기 촉촉한 채로 떨리고 있었다. 아비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다는 간절한 눈빛으로 언니를 보고 있었다.
아버지의 간절한 바람에도 언니는 꼼짝도 않았다. 언니는 끝내 가출을 감행하여 살림을 차려버렸다. 무서운 엄마가 잡으러 갔을 때 자해까지 했던 언니였다. 결국 언니 뜻대로 결혼을 했다. 그런 과정에 아버지의 속은 다 썩었을 것이다. 나는 어렸지만 아버지의 겉으로 웃는 얼굴 표정과 속마음이 같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것으로 아버지가 언니 때문에 속 태우는 일이 끝이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언니는 아버지 뜻을 거슬러가면서 한 결혼이었지만 그 생활이 순탄치는 못했다. 그래서 아버지 마음엔 언니가 자나 깨나 가시처럼 아픈 존재였다. 빼고 싶어도 보이지 않는 가시의 존재, 그대로 두자니 콕콕 찔러대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존재였다.
아버지는 늘 언니를 감싸고돌았다. 아버지의 모질지 못한 마음 때문에 언니는 사소한 일이 생겨도 아버지께 끝도 없이 기댄다. 아버지의 가늘고도 다정한 눈빛이 언니를 더 약해지게 만들었는지 모른다. 한 번 쯤 무서운 눈으로 호되게 야단을 쳐도 좋으련만 어떤 잘못을 저질러도 덮어주며 가련한 눈으로 본다. 나는 마음만 좋은 아버지가 마뜩찮다.
싸고도는 자식이 더 안 된다는 말도 있다. 절에 자주 가는 사람일수록 근심거리가 더 많다. 홀로 태어난 세상 개척하여 사는 것도 스스로 할 일이다. 의지가 약하면 자꾸 다른 사람에게 기대게 되는 것이다. 기대기 시작하면 한정 없고 막연하게 도와주는 것은 끝이 없다. 스스로 일어설 수 있도록 채찍을 휘둘러주는 것이 오히려 자식의 미래를 위해 나을 것이다.
언니를 향한 아버지의 온화한 실눈이 이제는 크고 무서운 눈으로 바뀌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언니가 혼자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실어줬으면 한다. 그리되면 언니도 아버지를 찾은 횟수가 줄어들 것이다. 그러다보면 스스로 해결할 것이고 근심의 수도 줄어들 것이다. 아예 근심거리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기댈 곳이 없으므로.
최근 들어 연로하신 아버지는 실눈을 오래 감고 뜨지 않은 채 누워 계실 때가 많다. 그대로 뜨지 않을까봐 우리가 흔들어 깨우면 깜짝 놀라 눈을 동그랗게 뜨신다. 그런 눈으로 언니의 어리광을 꾸짖어 주신다면 아버지가 안 계신 훗날에도 언니는 오래 아버지의 따뜻한 실눈을 그리워하며 꿋꿋이 살아 갈 수 있을 것이다.
절집에서 부처를 볼 때마다 나는 아버지의 가는 눈이 내 가슴에서 살포시 뜨고 있음을 느낀다. 세상에서 제일 따뜻한 눈, 그래서 그 눈을 평생 그리워하며 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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