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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어와 북어 / 주인석
연일 속이 더부룩하여 해장국을 먹고 있다. 해장국은 술을 과하게 먹은 사람들의 술기운을 풀기 위한 국이다. 아직까지 술 먹는 것을 배우지 못했으니 해장국은 나와 거리가 먼 음식이다. 술을 먹는 것도 아니고 평소 국을 좋아하는 것도 아닌 내가 연이어 해장국을 먹고 있는 것은 속을 해장하기 위해서라기보다 녹록치 않은 삶을 해장하고 싶음이 더 큰 이유라 하겠다.
해장국을 먹고 나니 이전에 불편했던 기운이 사라졌다. 삶의 해장이 잘 된 셈이다. 그것은 해장국의 재료인 북어와 복어가 큰 몫을 했다고 볼 수 있다.이름에 붙은 점 하나의 위치에 따라 완전히 다른 성질의 어류가 되는 것도 신기한데 그 생김 또한 특이하니 세심히 보지 않을 수가 없다. 사는 일이 자갈처럼 자글거리며 편치 않아서 그랬는지 복어와 북어를 보는데 그들의 삶이 사람의 그것과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어제는 북어국을 먹었다. 참기름에 달달 볶은 북어채에다 무와 계란을 풀어 넣고 끓인 북어국은 시원하다. 해장국을 먹은 뒤에는 맛있다보다 시원하다는 말을 더 많이 한다. 그것은 텁텁한 속이 후련해졌다는 뜻과 답답한 마음이 뚫렸다는 의미를 담은 말이다. 몇 가닥 마른 북어채에 무슨 비법이 있기에 사람의 속을 이다지도 시원하게 풀어준단 말인가.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북어는 자신이 처한 입장에 따라 수시로 이름을 바꾸고, 성격도 때에 맞게 변화시키는 다중성을 가졌다. 갓 잡아 올린 싱싱한 생태, 얼리면 동태, 얼리고 녹이기를 반복하면 황태, 반쯤 말리면 코다리, 완전히 건조시키면 북어 이외에도 불리는 이름이 오십 가지가 넘는다. 요리의 종류에 따라 이름과 모습을 바꾸고 성질도 달리하고 나타나도 사람들은 지조 없는 생선이라 나무라지 않고 오히려 그 맛에 홀려들고 만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북어는 백화점보다는 재래시장이 잘 어울린다. 먼지 날리는 시장 구석에 비닐을 덮고 최대한 측은한 모습으로 매달려 있다가 어느 정도 삶이 뭉근해진 여자들의 마음을 붙잡는다. 새파란 여자보다는 갈색으로 물들어가는 여자, 세련된 여자들보다는 어둔한 여자들에게 맹목적인 사랑을 받는다. 미각을 자극하는 일품요리의 재료도 아니면서 뭇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애주가에게는 시원하고 담백한 국물로 속을 비워낼 수 있도록 도와주고 속이 헛헛한 사람에게는 부담 없는 가격으로 허기를 달랠 수 있도록 해 주는 북어는 허름하지만 분명 마력이 있는 해장국 재료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오늘은 복어국을 먹었다. 먹기 좋게 잘라 핏물을 빼놓은 복어에 무를 넣고 팔팔 끓이다가 마지막에 미나리로 맛과 향을 더하고 독성을 없앤 복어국도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울 시원한 해장국이다. 그래서 해장국의 황태자라 불리기도 한다. 어지간히 입맛 까다로운 사람의 식성도 휘어잡는다. 복어는 독 때문에 손질하고 말리는 과정이 까다로워 온갖 정성을 다해야 하지만 요리는 간단한 것이 특징이다. 복잡하게 양념하면 할수록 담백한 맛이 없어지기 때문이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복어는 바다 돼지라고 불리기도 한다. 생긴 모습이 돼지를 닮았는데 '꽥꽥'소리까지 내다가 붙은 별명이다. 복어는 상대의 헛기침만으로도 놀랄 때가 있다. 그럴 경우나 습격을 당할 때, 물이나 공기를 사정없이 들이마셔 배를 팽팽하게 부풀린다.이런 모습으로 일단 적에게 자신의 입지를 알리는 자기 방어 능력이 탁월하다. 또 복어는 위협을 받으면 이빨을 갈아서 대응하기도 하고, 보이는 것은 닥치는 대로 물어뜯고 보자는 사나운 습성이 있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복어는 조심해서 다루어야 하는 생선이다. 복어는 자격증을 갖춘 사람만이 손질하고 요리를 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알과 간장, 피에 독이 들어 있기 때문인데 복어를 속속들이 이해하고 그것만 잘 제거를 하면 참으로 단순한 생선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그것을 알기 전까지 복어를 아무나 쉽게 요리해 먹기에는 매우 위험하다. '이승에서 유혹하는 저승의 맛'이라 불릴 만큼 이승에서 견줄 맛이 없을 정도지만 그 맛에 비례하는 독성이 있다. 가시가 있고 독이 있는 것들의 매력이라 할 수 있겠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복어와 북어는 손질하는 순서가 비슷하다. 먼저 지느러미를 떼어내고 그 다음 대가리를 잘라낸다.이들의 지느러미를 먼저 떼어내는 것은 함부로 펄떡거리며 행동하지 말라는 의미일성 싶다. 그 다음으로 대가리를 잘라내는 것은 생각과 입을 조심하라는 뜻이 아닌가 싶다. 또, 복어는 성질이 사나워 제 풀에 꺾이도록 놔둔 다음 요리해야 하고 북어는 사흘에 한 번씩 두들긴 뒤에 요리해야 간이 잘 밴다고 한다.
'사람의 일도 이와 같으리. 어긔야 어강됴리 아으 다롱디리'
참견할 일도 아닌 것에 성질부리며 가시를 세우는 복어나 몇 가지 모습을 가지고 사는 다중적인 북어도 결국은 한 그릇 해장국이 되어 누군가의 속을 풀어주며 사라진다. 복어 같아서 다루기 어려워 속을 상하게 하는 사람이나 북어 같아서 몇 가지 얼굴을 하고 사람의 속을 태웠던 사람도 지나고 보면 모두 인생의 스승이다. 어떤 모양의 사람이든 그의 삶도 벗겨보면 맨발인 것을.
복어와 북어가 해장국 재료로 인기가 좋은 것처럼 복어나 북어 같은 사람도 인기가 있다. 특히 목적이 있는 일에 목숨을 걸고 앞장서 주는 복어 같은 성격의 사람과 다중성격을 가지고 치밀하게 일을 추진해가는 북어 같은 사람은 찾는 이가 많다. 얼마 못가서 누군가의 뱃속에서 낭자한 해장국이 되어 사라질 것이라는 것을 예상하면서도 그 일을 거절하지도 못하고 그만 두지도 못하는 것은 두 생선의 시원한 장점이라 하겠다.
애써 끌고 온 바다를 사발 속에 풍덩 빠뜨린 복어와 북어는 누군가의 뱃속에서 처음으로 마음 편한 날을 보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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