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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강 / 김정화1
궁둥이를 빼고 앉았다. 앞다리를 세운 새끼 호랑이가 한쪽으로 얼굴을 비틀고 빤히 쳐다본다. 등짝에 손잡이까지 달고서 커다란 입을 벌린 채 하품이라도 뿜는 시늉이다. 익살스럽지만 경박하지 않다. 소박하나 누추하지 아니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도 않다. 왕궁터에 몸을 묻었으니 분명 귀하신 분을 모셨으리라. 아무리 지체 높은 귀족이라도 스스로 바지춤을 내리게 하는 귀물이다. 백제 남성용 소변단지 호자虎子를 만났다.
요강에는 삶의 흔적이 묻어 있다. 이제는 주로 골동품점에 자리하고 있지만 가끔 유적지 껴묻거리 속이나 박물관 유리벽에서 옛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보리 찻잔을 닮은 백제 여성용 요강은 정박한 조각배처럼 여유롭고, 조선 여인의 부장품인 명기요강은 간장 종지마냥 앙증맞다. 한국 가정에서 사용하던 요강은 펑퍼짐한 몸통에 청화백자 산수화를 흉내내거나 모란당초 문양을 그려내어 운치를 높였다. 서양에서도 고대 유적지에서 항아리 변기나 이동식 접시가 발견되는 것을 보면 가장 인간적인 삶의 도구가 요강이라고 여겨진다.
이름으로도 사물의 격을 가늠한다. 오줌 그릇이나 오줌 단지가 흔히 상용되었다면, 요항溺罁, 요분溺盆, 설기褻器, 수병溲甁 같은 애칭과 함께 밤출입이 어려울 때 쓰는 요긴한 항아리란 뜻의 야호夜壺라는 점잖은 별칭도 부여했다. 하물며 어린아이의 작은 오줌통까지 재치 있게 알요강이라 불렀을까. 로마인들은 질그릇을 밀어 넣는 의자변기를 '틈새 의자'라 했고, 고대 그리스인들의 요강은 '들고 나르는 꽃병'이라고 표현했다. 비천한 물건에 해학과 여유가 풍기는 이름을 붙였다.
신분에 따라 쓰임새도 달랐다. 서민들은 옹기나 사기그릇을 사용했으나, 양반집에서는 백자, 청자는 물론 놋요강, 백동요강과 나무요강까지 고급 재료로 멋을 부렸다. 안동의 대갓집에는 종부가 사용하던 종이요강도 남아 있고, 왕족 여인이 나들이 때 대동했다는 비단요강 기록도 전해온다. 조선시대 임금은 매화틀 속에 그릇을 놓고 일을 해결했다. 그때마다 주상의 매화그릇을 챙기는 '복이나인'이라는 궁녀가 대기하였으며, 대감 집에는 '요강담사리'라는 전담머슴을 두었다. 덕분에 지체 높은 분의 엉덩이를 가까이할 수 있는 변기 담당관이 탐나는 자리가 되지 않았을까. 그러한 요강들도 속곳을 내리는 주인을 향해 "내가 본 것의 비밀을 지켜드릴게요"라며 눈을 찡긋거렸을 테다.
가장 호사를 누릴 때는 신행 가마 속이 아닌가 싶다. 요강이 빠지면 반쪽 혼수라 꼬집던 시절도 있었다. 신행길 가마 속에 새색시만큼이나 얌전히 놓인 것도 요강이었다. 친정어머니는 가마요강 속에 짚이나 목화솜을 앉혀 골칫거리 해결을 도왔다. 가마꾼들이 눈치라도 채면 평생 오줌각시나 요강댁으로 불릴 수도 있으니까.
요강만큼 많은 이야기를 머금은 물건이 있을까. 부부싸움의 병기로 내팽개쳐지던 설움도 당했으나 집한 채를 태운 화마 속에서 버텨낸 용기도 갖추었고, 이사할 때 솥단지에 앉혀 사람보다 먼저 집에 들일 만큼 귀한 대접도 받았다. 언젠가 요강전시회라는 재미있는 구경거리를 본 적이 있다. 방짜요강이 제구실을 잃자 녹여서 밥주발을 만들었다는 일화도 있었고, 검찰총장을 키워낸 기특한 요강도 눈길을 잡았다. 서양도 예외가 아니라서 나폴레옹은 바닥에 그의 이니셜 'N' 을 새긴 순금요강을 사용했고, 루이 14세는 요강에 앉아 서슴없이 손님과 대화를 이어갔다는 기록까지 있다.
유년시절 나 또한 요강과 함께 하루를 시작했다. 우리 집에는 파란 목단이 그려진 사기요강이 있었는데 나중에 민무늬 초록요강도 하나 더 들여왔다. 어머니는 아침마다 요강단지를 거름밭에 비우고 반지르르 닦아 놓았다. 요강도 염치가 있는 듯 낮에는 대들보 뒤에 숨어서 딴청 피우듯 조용했다. 당시 내 손이 트면 아버지는 요강에 손을 넣어 오줌물로 씻겼는데, 그때마다 기겁하며 줄행랑을 치고 달아났다. 하지만 해거름의 요강은 언제나 반갑다. 방안에 요강을 들여오면 긴 하루가 끝이 난다. 요강 자리에 눈도장을 찍고 이불을 목까지 끌어 덮으면, 도채비가 나온다는 변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든든한 밤이 이어졌다.
골동품 값이 천정부지로 올라가는 시대다. 덩달아 요강 값도 만만치 않다. 일본군의 쇠붙이 수집령 때 쇠요강이 수탈당했던 오욕을 지녔지만, 요즘 요강은 방의 어떤 기물과도 잘 어울리는 소품으로 격상되었다. 거실의 화병으로 앉았거나 문갑 위 백자 도자기와 키재기를 할 만큼 떳떳해졌다. 외국 관광객들이 뚜껑 있는 놋쇠요강을 사탕통으로 사 간다니 물건도 시대에 따라 신분상승을 하는 모양이다.
이제는 집 안에 요강이 자취를 감추었다. 잠결에 듣는 가족의 오줌발 소리가 사라졌고 오줌단지를 발로 차는 참사도 일어나지 않는다. 부여박물관의 저 호자虎子 역시 얼마나 많은 세월 동안 인간의 찌꺼기를 포용했을까. 오줌을 받았으니 요강이지 꿀을 담았으면 꿀단지가 되었을 터, 안에서 밖으로 새어나가는 것이 어디 지린 오줌뿐이랴. 입으로 쏟아내는 말의 오물들은 어디에 담아내야 할는지….
- 金貞花 경남 김해 출생, 경성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석사, 2006년 《수필과비평》 신인상, 2015년 광남일보 신춘문예 문학평론 당선, 제19회 신곡문학상 본상, 제3회 천강문학상 우수상, 제19회 부산문학상 우수상. 월간 《문학도시》 편집장 역임. 수필집 《새에게는 길이 없다》, 《하얀 낙타》, 《가자미》 수필선집 《장미, 타다》가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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