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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나미비아의 풍뎅이 / 조이섭

부흐고비 2019. 10. 29. 16:14

나미비아의 풍뎅이 / 조이섭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상작


나미비아의 풍뎅이는 새벽에 물구나무를 선다. 나미브 사막에 안개가 걷히면 풍뎅이는 바람이 부는 쪽을 향해 아슬아슬하게 거꾸로 선다. 사막의 모래에 달구어진 복사열은 등껍질 위에 이슬을 머금는다. 맺힌 물방울이 등줄기를 타고 내려오면 나미비아의 풍뎅이는 그 이슬로 목을 축이고 살아간다.

풍뎅이가 물을 얻기 위한 노력은 빈 가지 끝에 매달린 바람처럼 처절하다. 이슬이 맺혀 물방울이 굴러 떨어질 때까지 거꾸로 선 채 꼼짝달싹하지 않아야 한다. 고독의 밑바닥을 거치지 않고는 결코 얻을 수 없는 생존을 위한 투혼이다. 물구나무를 서서 버티지 못하면 살아남을 수 없다. 그렇게 얻은 물은 또 다른 생명을 잉태하고 대를 이어가는 생명수이다.

풍뎅이 같은 작은 미물도 주어진 환경에서 살아남을 길을 스스로 찾아낸다. 생존에 필요한 물을 얻으려고 엄지손톱만 한 등짝이라도 이용한다. 우리네 가장들도 아침에 눈만 뜨면, 제각기 작은 재주 하나씩 메고 나미비아의 풍뎅이처럼 물을 얻으려고 집을 나선다.

아버지도 마찬가지였다. 태어나고 자란 산촌을 뒤로하고 낯선 도시에 와서 살아남을 재주를 배워야 했다. 제재소의 일용직 인부 일자리를 구한 아버지는 새벽부터 트럭 짐칸에 집채만큼 가득 실려 온 소나무 원목을 부려야 했다. 소나무는 굵기가 어른 한 아름 되는 것도 있었다. 산판에서 갓 베어온 원목은 적당하게 마를 때까지 공장 마당 한쪽에 차곡차곡 쌓아두어야 한다. 그때만 해도 지게차 같은 운반기계가 없던 시절이라 사람의 힘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기다란 소나무 앞뒤에 굵은 목돗줄을 걸고 목도채를 끼운 다음 두 사람씩 짝을 지어 어깨에 메었다. 한 손은 어깨에 걸친 목도채를 잡고 다른 손으로는 목돗줄을 움켜쥐고 목도꾼이 허리를 펴면 무거운 통나무가 땅바닥에서 한 뼘 정도 떠올랐다. 앞에서 "어이 차, 어이 차." 선소리를 먹이면 뒤에서 후렴구를 외치며 걸음을 떼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 경사진 나뭇더미 위로 올라갈 때는 선소리마저 입안에서 맴돌 뿐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터질 듯한 심장에서 해녀의 숨비 소리를 닮은 투명한 헛바람만 새어 나왔다. 목에 두른 수건으로 얼굴에 흐르는, 맹물 같은 땀을 연신 훔쳐보지만, 눈앞이 흐려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렇게 한참을 제자리에서 가쁜 숨을 고른 다음에야 비탈을 한 발짝 올라갈 수 있었다. 수십 년 목도질로 어깨에는 굳은살이 박여 풍뎅이 등짝처럼 되었다.

아버지는 가쁜 들숨으로 자식을 키우려는 책임을 마셨고, 날숨으로는 사랑을 가득 내뿜었다. 고단하게 일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했다. 아무리 힘이 들어도 그런 속내 한 번 드러내지 않았다. 그것은 그 시절 가난했던 모든 아버지의 본능이었고 나미비아 사막의 풍뎅이와 같은 보편적인 삶이었다.

물구나무서는 일이 어렵고 고되었을 것이다. 밤낮없이 열심히 일해도 쉽사리 벗겨지지 않는 가난의 굴레가 지긋지긋했을 것이다. 아버지라고 먹고사는 일 외에 하고 싶고 즐기고 싶은 것이 없었을까. 탈출할 수 없는 다람쥐 쳇바퀴 위에서 노동으로 점철된 삶이 어찌 권태롭지 않았으랴. 하지만, 가슴 속 깊이 갈무리해 둔 사랑의 힘으로 고된 노동의 무게를 오롯이 견뎌내었다.

아버지는 환갑 되는 해에 귀향하여 그리도 소원하던 과수원을 일구기 시작했다. 모래밭이나 다름없는 하천부지에 손가락처럼 가느다란 사과나무 묘목을 심고 한여름 내내 거름을 내려고 산으로 들로 풀을 베러 다녔다. 저장창고를 짓고 우물을 팠다. 손수 만든 족답 양수기 하나로 가뭄에 맞섰다.

강산이 한번 변하는 동안 과수원이 성큼 자리를 잡았다. 아버지는 소싯적에 내 과수원을 가져보리라고 결심한 소원을 풀었다면서 막걸릿잔을 기분 좋게 비우며 너털웃음을 쳤다. 하지만, 그 환한 웃음을 오래 볼 수 없었다. 고된 일을 혼자서 요량하고 감당하느라 당신의 속살이 탈피한 매미껍질처럼 텅 비어 버린 탓이었다.

아버지께서는 물구나무를 서는 동안 등껍질 속에 감추어둔 물빛처럼 하늘하늘한 날개를 처음으로 펼치셨다. 깜깜한 밤의 아픔을 녹여내어 만든 한 방울 이슬마저 툭 털어내고 자유롭게 훨훨 날아가셨다. 아버지는 떠났지만 사라지고 잊힌 것은 아니다. 사랑의 유전자는 '근(勤)'과 '면(勉)'이라는 이중나선으로 우리들의 가슴속에 오롯이 남아 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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