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나의 로망 / 윤진모
2019 매일시니어문학상 수상작
"아이고, 우리 아가야-."
아내가 내 등을 토닥거리며 한 말이었다. 전날 술을 과음하여 엎치락뒤치락하다 잠을 설친 아침이었다. 우리 집에 아기가 어디 있나. 잠결이었지만 아내가 이상해 보였다. 40년 넘게 함께 살아온 남편을 어린애 취급을 하다니. 이건 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 들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가끔은 알아들을 수 없는 말 때문에 되물으면 "말할 때 좀 귀담아들어요."라고 야단이다. 낮은 소리를 잘 듣지 못한다고 말해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잘 들리지 않아 못 알아듣는 걸 자꾸 책잡으면 어떡하란 말인가. 이참에 청각 장애 등급이나 한번 받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용하다는 이비인후과에서 진료를 받아도 크게 신경 쓸 일이 아니라는 의사의 진단이다.
아내는 최근에 와서 걸핏하면 잘 잊어버린다. 정말 잊어주었으면 하는 건 좀체 잊지 않는다. 내가 예전에 실수하거나 잘못을 저지르면서 변명하듯 막말한 말은 끝마디까지 줄줄 외고 있다. 기억력의 천재인 양 되풀이할 땐 진절머리가 난다.
"당신이 그때 뭐라고 했는지 알아요?"
수십 년 지난 지금 그걸 어찌 다 알아낼 수 있는가. 말은커녕 상황조차 까마득하게 사라진 처지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된다. 좋은 것만 기억하면 어디 몸에 병이라도 날까. 걸핏하면 예전의 일을 끄집어내어 속을 뒤집어 놓는다. 그렇다고 젊을 때처럼 밤새도록 술이나 퍼마실 배짱이 없으니 아내의 재방송하는 말을 오른쪽 귀로 듣고 왼쪽 귀로 흘려들을 수밖에…….
이젠 이러니저러니하고 말하기 싫다. 아내가 외출하고 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화장실에 불이 켜져 있다. 이게 어디 한두 번인가. 같이 늙어가면서 다투어야 봐야 이로울 게 없다. 단순히 선별형 건망증 정도라면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모른 척해버린다.
"열쇠 어디 있어요?"
내게 맡기지 않은 열쇠를 찾는다고 야단이다. 안방에서 작은방으로 왔다 갔다 하면서 가방을 뒤진다. 이곳저곳 호주머니에 손이 들락거린다. 제발 좀 같은 데 놔두라고 해도 잘 듣지 않는다. 괜히 걱정이 앞선다. 저러다 나들이라도 갔다가 집을 못 찾아오는 것은 아닐지. 아들과 손자들을 아버지라 부르고 나를 아가라 부르지 말란 법이 있을까. 다른 사람 앞에서 나더러 "우리 집 아기는요."라 부르면 어떡하지.
결혼식을 올린 후 부모와 함께 살았다. 한집에 살면서 아내를 어떻게 불러야 할지 오랫동안 서먹하게 지냈다. 가까이 가서 소매를 끌어당기거나 눈짓으로 의사를 표시했다. 아내도 마찬가지였다. 그 쉽고 흔한 "여보" 소리가 입 밖으로 쉽게 나오지 않았다.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별다른 호칭 없이 지냈다. 꼭 불러야 할 경우엔 가톨릭 세례명을 대신했으니 큰 어려움은 없었다.
새벽 미사에 간 아내가 돌아오지 않는다. 평소보다 한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연락이 없다. 그녀의 휴대폰이 거실 탁자 위에 혼자 덩그러니 누워 있다. 어디를 갈 땐 가지고 다니라고 누차 이야기해도 잘 듣지 않는다. 허리가 아파 자주 병원에 다니는 사람이 혹시 길거리에 넘어져 다치지는 않았을까. 길을 건너다 무슨 사고라도 생겼으면 어떡해. 연락할 방법이 없을 때 어떻게 해야 하나. 진즉 햇빛도 들어오지 않는 미로를 헤매고 있는 기분이다. 서너 시간 뒤 아내가 목욕탕에 다녀왔다며 나타났다. 엊저녁 식사할 때 내일 새벽 미사 마친 후, 목욕하고 온다고 말했다니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되었다.
언제부터 그런지는 모른다. 미사 때 집전 사제가 하는 말이 귀에 잘 들리지 않아 아내에게 다시 물어 확인한다. 영화를 봐도 등장인물이 주고받은 대사가 귓가에 잠시 머물다 저만치 물러나기도 한다. 인터넷을 뒤져 눈으로 확인해야 제대로 스토리를 이해하는 때도 있다. 밥을 먹다가 궁금한 것이 있어 컴퓨터 앞에 앉았다가 '여기 왜 왔지?' 하며 돌아서는 경우도 생긴다. 아내더러 잘 잊어버린다고 나무라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상황이 바뀌었나.
아내가 무엇을 잘 잊어버리듯이 내가 그 꼴이다. 흔히들 치매에 걸리면 끝장이라고들 이야기하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우선멈춤이다. 잊을 것은 잊고 기억할 것은 기억하면서 새롭게 출발하라는 신호가 아닐까. 아내에게서 아가 소리를 들어도 좋다. 제대로 아기 노릇 한번 해 보면 어떠하리. 무엇이 두려우랴. 노망(老妄)은 또 다른 이름의 로망이다.
그녀와 처음 수성못을 한 바퀴 돌 때였다. 하늘에서 아름다운 별 하나가 내려와 사뿐사뿐 춤을 추다 내 품에 안겼다. 물이 출렁거리고 내 가슴은 울렁거렸다. 구차스럽게 무슨 긴말이 필요하랴.
간밤에 술을 너무 많이 마셨나 보다. 늦게까지 이불 속에서 뒤척이다 아내가 내뱉는 "아가." 소리를 들었다. 어떻게 집을 찾아왔는지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가야, 아가야."
하는 소리만 귓가에서 맴돌고 있다.
'수필 읽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초원의 빛 / 민병숙 (0) | 2019.10.29 |
---|---|
모란을 그리다 / 성보경 (0) | 2019.10.29 |
용산방죽 / 조순환 (0) | 2019.10.29 |
나미비아의 풍뎅이 / 조이섭 (0) | 2019.10.29 |
무량수전에서 / 주영순 (0) | 2019.10.29 |
- Total
- Today
- Yesterda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