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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아버지의 갓바위 / 김정예

부흐고비 2019. 11. 12. 00:38

아버지의 갓바위 / 김정예
제11회 목포문학상 본상


'아쉽게도 이번 채용에는 함께 하지 못하게 됐습니다.'

5번째 공채에 떨어졌다. 작은 책에만 눈과 코를 박아 놓고 숨도 죄스럽게 쉬며 공부했는데 또 낙방했다. 차라리 공무원 시험이었다면 툭툭 털고 등을 돌렸을 테지만 기업 공채마다 번번이 돌아가며 떨어지니 어느 곳에서도 나를 원하지 않는다는 좌절감이 일상을 집어삼켰다. 누군가 실수로 흘려보낸 유리병처럼 좌표도 부표도 없이 망망대해를 떠도는 기분이었다.

내게는 '장녀'라는 짐이 있었다. 빨리 가족을 부양해야한다는 압박감이 닻이 돼 나의 마음을 우울한 기저로 끌어내렸다.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송한 마음이 들어 피하기만 했다. 밥도, 대화도, 가끔 함께 나가던 낚시도 더 이상 갈 수 없었다. 비 맞은 쥐가 벌벌 떨며 하수구로 도망가듯 처량히 가족을 피해 다니던 어느 날, 아버지는 대뜸 바위를 보러가자고 했다. 별 일 없으면 아무 말 않고 가자며 차에 시동을 거셨다. 머리가 아프다고 해볼까 친구랑 약속 있다고 해볼까. 하지만 적당한 명분이 생각나지 않아 아버지를 따라 나서기로 했다. 언제까지 가족을 피해 다닐 수도 없거니와 속도 갑갑하던 찰나에 드라이브겸 기분이나 풀자는 생각이 웬일로 들었다.

"나도 결혼하고 일이 잘 안될 때 할아버지가 자주 데려갔던 곳이야."

할아버지는 목포사람이었다. 내가 갖고 있는 기억 조각은 단편적이지만 분명한 이미지가 있었다. 소금에 잔뜩 절여진 고추장아찌를 이 없는 잇몸으로 잘게 으깨어먹으면서도 꼭 식후에 담배를 찾던 분이었다. 뱃사람에게는 파도처럼 괄괄한 피가 흘러서 그렇다더라. 그래서 소금을 먹고 담배향을 맡지 않으면 안 된다며 늘 농담을 던지셨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내뿜는 매캐한 담배향과 그리운 소금내 사이에서 태어났다. 자신의 역사와 향기가 자식에게도 옮아가면 어쩌냐며 걱정하셨지만 다행히도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달리 정적인 사람이었다. 쉬이 감정을 표현하는 일이 없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리워질 때마다 목포를 찾았다. 목포항 초입에서부터 느껴지는 짭조름한 바다향은 공기에 술을 탄 것처럼 아버지의 취기를 오르게 했다. 술을 마시면 이상하게 눈물이 많아지는 아버지는 항구에만 다가서면 마치 주사를 부리듯이 눈시울을 붉혔다. 그 눈물이 썩 이해되지는 않았으나 그 안에는 내가 모르는 어떠한 그리움과 애환이 모두 담겨 있으리라 추측했다.

그날도 아버지는 변함이 없었다. 차에서 내려 양팔을 넓게 벌리시고 바다향을 들이마시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코를 킁킁거리며 바위를 찾아가는 내내 아버지의 눈동자가 평소보다 반질반질하게 빛났다. 총기가 아닌 물기였다. 목포항만 찾으면 두 눈에는 흐르지 않는 눈물이 잔뜩 맺혔다. 할아버지 생각이 나신 걸까.

"이게 갓바위라는 거다."

처음으로 본 갓바위, 갓을 쓴 사내가 나란히 서있는 동상 모양. 하지만 별다른 감흥은 없었다. 바위 모양을 보고 신기해하기에는 이미 내가 다 커버린 어른이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갓바위를 소개하는 안내판을 손으로 톡톡 두드렸다. 거기에는 전설이 하나 적혀 있었다. 먼 옛날 아버지에게 효를 다하지 못한 아들이 하늘에 참회하는 마음으로 갓을 쓰고 살다가 죽어 그 자리에 갓바위가 솟아났다는 서사였다.

아버지는 할아버지와 함께 갓바위를 바라보던 순간이 자꾸만 바다향에 되살아난다고 했다. 할아버지가 작은 갓바위를 가리키며 저렇게 변하지 않으려면 효자로 살라고 종종 우스갯소리를 던졌다는 아버지의 말이 습하게 다가왔다. 항상 건조한 표정만 보여주던 분이었는데 그날따라 귓가에 닿는 말들이 참으로 눅눅하여 애처로웠다. 단어에 지난시간 간신히 숨겨온 울먹임이 묻어있었다.

"밥벌이가 힘들다는 이유로 할아버지의 농담도 외면했어."

비록 전설은 전설일 뿐이지만 어째서 중년의 어른은 바위 앞에서 참회를 하는가. 목포항 초입에서 보여준 마른세수를 연거푸 되풀이하며 눅눅한 말을 이어갔다. 영산강 하구를 바라보는 갓바위를 따라 시선을 옮기면서도 사연은 덤덤히 읊었다. 효도를 다하지 못해 그날의 할아버지가 무척이나 그립다는 요지였다.

발을 헛디뎌 아버지의 관을 바다에 빠트린 전설 속의 사내처럼 아버지의 처연한 옆모습은 꼭 무언가를 회개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 시큰거리는 콧망울에 물이 고일세라 재차 닦아내는 행위는 평상시의 모습과는 달랐다. 정적인 아버지가 이토록 슬퍼하며 과오를 뉘우치고 있다는 걸 할아버지는 알까. 부자의 끈이 잘려있지만 어딘가에 닿아있다면, 저 목포항 깊숙한 곳에 뱃사람의 혼이 남아있다면 말이다.

"좋은 직장을 못 가져도 괜찮다. 그래도 너는 내 딸이야. 바람과 물에 깎여도 늘 나란한 이 바위 부자(父子)처럼."

영산강 하구를 바라보던 두 눈에 나를 온전히 담으시고는 잔잔히 말을 이어나갔다. 바위에 포개진 아버지의 풍경이 내게 다가왔다. 익숙한 음성에서 익숙지 않은 말들이 나왔다. 문장 어디에도 힘내라는 구절이 없었지만 찬 바닷바람 사이에서 느껴지는 부정(父情)의 온기가 응원을 말해주더라. 가는 길이 험하고 구불거려도 가족 간의 연을, 끈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뒤따라왔다. 취업에 거듭 실패했다는 이유로 비겁하게 가족을 멀리한 사실이 부끄러워졌다. 등허리가 뜨거워지면서 정수리로 땀이 빼꼼빼꼼 나려했다. 내가 당신을 피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구나.

돈의 논리로 굴러가는 육지가 개탄스러워 바다에서 온 할아버지를 잊고 산 것이 후회된다는 아버지의 말은 하나의 언약을 남겼다. 그것은 할아버지를 향한 이 부르짖음을 잊지 않겠다는 약속이었다. 서늘한 바닷바람의 짠내가 콧속으로 들어올 때마다 차라리 아버지의 눈물에 담겨있는 향이라고 생각됐다. 아버지는 말없이 손을 포개주었다.

왜 갓바위를 드문드문 찾아오는지 이제야 아버지의 여정이 이해됐다. 그것은 단순히 돌아가신 할아버지에 대한 향수에서 비롯된 행동이 아니었다.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업보를 속죄하는 혼자만의 의식이었다. 늘 아들 바위에만 마음을 이입하다 어느 순간 자신을 닮아가는 나를 보고 아버지 바위를 마음에 담기 시작하셨을 테지. 안타깝게도 서로 마주보지 않는 바위의 모습에서 당신과 나의 모습을 찾고 또 찾으며 내게는 아들 바위의 과오가 닿지 않기를 바라셨으리라. 그것은 비밀스러운 응원이요, 속죄였다.

차를 타고 돌아가는 내내 우리는 말이 없었다. 갓바위에 찰랑거리는 조그마한 물이 자꾸만 기억에 겹쳐졌다. 그 순간을 잊지 않아야 한다고 다짐했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생겨도 가족이라는 연이 변하지 않으니까. 갓바위가 아닌 산사람으로서 내가 당신에게 다해야할 의무는 입신양명에서 그치는 일이 아니니까.

"아버지, 저 열심히 살게요."

목포항이 차창너머 아주 멀리 사라졌을 때 입을 열었다. 아버지의 위로에 대한 답변이었다. 아버지는 핸들을 꼭 쥔 채로 앞유리만 바라보며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목포 바다의 물기가 가득 서린 아버지의 말들에 비하면 내 말은 꽤나 건조할지도 모르지만 마음은 그렇지 않았다. 나는 오래도록 갓바위를 잊지 못할 것 같다. 우리가 가족이었음을, 지금 이 순간도 가족임을 깨닫게 해준 그 풍광을.

열심히 살겠노라고. 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물려주신 그리고 내가 물려받은 순간을 쉽게 저버리지 않겠노라고. 바닷바람을 타고 남실거리던 소금향이 두 손을 감싸주던 시간을 지켜 나갈 것이다. 풍화와 침식에도 서로의 옆을 지킨 갓바위가 되리라.



『제11회 목포 문학상』수필 부문 심사평

본심위원 : 이철호


제11회 목포문학상 수필부문에서 예심을 통과한 작품은 11명이다. 이 중에서 본선 당선작 <아버지의 갓바위>와 남도문학상<돌미역>이 영예의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예심을 통과한 작품들이기에 읽기에 무리가 없었다. 또한 작품 질이 우수해서 목포에 대한 애향심 고취와 문학적 사랑에 뜨거운 반응을 보여주었다.

본상 - 아버지의 갓바위

본상 당선작<아버지의 갓바위>는 차분하게 주제를 천착해가는 작가의 글 솜씨가 유려하다. 갓바위에 얽힌 전설처럼 아버지의 할아버지에 대한 효성과 아버지의 자식에 대한 내리사랑이 훈훈하게 느껴진다.
공채시험에서 낙방한 작가에게 아버지는 대뜸 갓바위를 보러가자고 한다. 좌절감에 사로 잡혀있는 작가는 집안의 장녀라는 책임감이 압박해서 아버지를 볼 때마다 죄송한 마음으로 피하기만 했다. 그런 딸을 데리고 찾아간 아버지의 갓바위, 아버지도 일이 잘 안 될 때 할아버지가 데리고 갔던 곳이다.
할아버지는 목포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할아버지가 그리워 질 때면 목포를 찾았다. 목포항만 찾으면 아버지는 할아버지 생각에 흐르지 않는 눈물이 맺힌다.
갓을 쓴 사내가 나란히 서 있는 동상 모양의 갓바위. 먼 옛날 아버지께 효도를 다하지 못한 아들이 참회하는 마음으로 갓을 쓰고 살다가 죽어 그 자리에 갓바위가 솟아났다는 전설의 바위다.
‘좋은 직장을 못 가져도 괜찮다. 그래도 너는 내 딸이야. 바람과 물에 깎여도 늘 나란한 이 바위부자처럼. 가는 길이 험하고 구불거려도 가족 간의 연을, 끈을 쉽게 포기하지 말라는 말이 뒤따라 왔다.’
아버지를 따라 갓바위에 다녀 온 후, 취업에 거듭 실패했다는 이유로 비겁하게 가족을 멀리한 사실이 부끄러워졌다는 작가의 고백이 이 작품의 주제를 마무리 해준다.
혈육 간의 끈적끈적한 우애가 유난히 짙은 남도의 정신과 자연, 역사, 문화, 등 풍경이 잘 드러난 작품으로 이 수필을 본상 당선작에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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