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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탑에 가을이 물들면 / 박필우
제5회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동상
내게 가장 사랑하는 탑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이곳 경북 구미시 선산읍 낙산동 삼층석탑을 꼽는다. 전국에 산재해 있는 그 많은 탑 중에서 하필이면 낙산동 석탑일까? 그런 나를 딱히 이해하지 못할 때가 있지만, 그것은 첫 감동이 그만큼 컸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실개천을 이어주는 다리를 건너는 순간 나와 딱 마주하는 석탑에 형언할 수 없는 그리움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주위 만추의 색상과 어우러져 약간은 퇴색되고 풍화되고 시달림을 당했지만, 딱 맞아떨어지는 균형감, 건방진 반전도 없는 지붕돌, 황금비율로 올라가며 줄어드는 체감, 위압감 없이 적당히 편안함을 주는 크기, 논 한가운데 주위의 황금 들녘과 함께 조화롭게 서 있는 석탑이 바로 선산읍 낙산동 삼층석탑이다. 그때부터 생이 외롭거나 힘에 겨울 때면 자주 찾아 나를 달랬던 곳이다. 이제 어린 시절 아버지를 똑 닮은 내가 어린 시절 나를 똑 닮은 아들과 함께 찾았다.
여전히 깔끔한 미감과 달리 어수룩한 모습에 약간은 비어 있는 친근함으로 다가왔다. 대리석 같은 매끈한 완성미는 없지만, 날렵한 반전도 없는 단정한 지붕돌이 편안하고, 돌에 철분이 포함되어 세월에 녹아내리는 철화, 즉 철화분청 자기에 나오는 색상을 간혹 발견할 수 있었다. 또한, 어떤 돌에는 회분이 묻어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이토록 스스로 가을의 색상을 연출하고 있으니 유일하게 가을을 타는 외로운 석탑이다. 마치 어린 시절 해질 무렵 황혼을 몰고 마당으로 들어서는 아버지를 보는 듯하다.
고고하게 서 있는 석탑이 유난히 쓸쓸해 보이는 것은 석탑에 단풍이 물들었기 때문이다. 비라도 오는 날에는 인생의 끝자락에서 보이는 허무함도 있고, 세상의 끝에서 주는 절박함과 절망의 어두운 그늘을 함께 보이고 있다. 그러니 고즈넉함에서 풍기는 한 많은 사연이 한껏 묻어, 온갖 풍파 다 겪고 난 뒤에 오는 고단한 삶에서 감추어진 내 아버지의 정을 느끼게 한다.
비록 사람들의 괄시 속에 기단석과 몸돌에 오만가지 낙서투성이며, 세월의 힘을 견딜 수 없어 깎이고, 깨어지고, 눈보라와 비바람을 온전히 맞고 보낸 세월이야 오죽하겠느냐만, 우리 아버지가 그래 왔듯 힘겨움 속에서도 낙산동 석탑은 말이 없다. 옆집에 사는 험악하게 생긴 아주머니의 주먹세례에도 덤덤히 당하고만 계셨던 무기력한 아버지는 다른 왼쪽 뺨을 내밀며 자식의 잘못을 대신 빌었다. 어린 나는 치를 떨며 달려들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아버지의 분노였다.
그날 저녁 마치 심연에 잠긴 듯 아버지의 깊고도 슬픈 표정은 영원히 잊지 못한다. 나는 그때부터 고독을 알았다. 사람이 고독을 즐긴다는 것은 무엇이 힘들게 하고 있다는 증거이지만, 점점 커가면서도 아버지의 고독을 빼닮아 가고 있었다. 그러다 이 석탑을 만나고 난 후부터 나를 다독여가는 힘을 얻게 되었다. 그랬다. 흔들림 없이 천 년의 세월을 지내온 석탑은 절대 고독도 녹여내는 마력이 있으며, 우가풍가(雨家風家)도 이 또한 지나가리란 진실을 이 석탑에서 느끼곤 한다. 아마 아버지도 그러했을 것임을 나도 아버지가 되어서야 깨달았다.
내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원서를 쓰고자 생떼를 쓰는 나를 뒤에서 가만히 껴안던 아버지의 뼈마디가 이곳의 석탑을 볼 때면 되살아나는 까닭은 과연 무엇일까? 큰형의 저지레를 고스란히 천륜의 인연에 묵묵히 당하고만 사셔야 했던 아버지였다. 여린 육체에 슬픔의 뼈마디만 남아 겨우 지탱했던 것인데 식어가는 마지막 열기로 나를 온전하게 덥혀주셨다. 아버지는 가을이 되면 모든 자양분을 가지에 남겨두고 메말라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조금씩 탈색되어 쓸쓸히 그렇게 생을 마감했다. 그 자양분을 축적한 여린 가지는 그것으로 추운 겨울을 이겨내고 화사한 봄날을 맞았다.
며칠 전 거울 앞에 섰을 때 내 어린 시절에 아버지를 보았다. 아버지가 그리워 찾아온 가을날 아버지를 닮은 석탑을 바라보았다. 그 시절 내 등 뒤에서 감싸주던 온기를 느끼며 석탑을 등지고 또 다른 세상을 보았다. 그러다 삭아가는 뼈마디의 감각이 내 등을 향해 찌르고 그것이 아파져 왔다. 방종한 삶에 대한 아버지의 경고였다. 이제 나에게 세상은 늘 따뜻한 봄날일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계절이 오고 감을 잊고 있었다. 그러나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몰라서 잊었을까? 도시의 하이에나가 되어 쾌락 속으로 뛰어드는 만용에 일침을 가하는 아픔이었다.
석탑은 하늘에 우리네 희망을 전하는 계단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사람이 여기에서 외로움을 달랬을 것이며, 고통을 이겨가며 위안을 얻었을 것인가! 그래서 그렇게 묵묵히 견디어 온 세월, 천 년을 뛰어넘어 굳건히 서 있는 탑에 나는 존경을 표하고, 경외감을 가지게 된 사연이다. 이것이 이 모든 조화가 진정한 내면의 아름다움이라 생각한다. 종교의 유무를 떠나 아름다움이 세상을 지배하기 마련이면, 종교보다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할 것이라는 믿음을 가지게 되는 이유가 된다. 이것은 내가 아들에게 들려준 이야기지만, 무심한 아들의 표정에 유난히 아버지가 그립다.
해가 떨어지면 울던 아이도 바람도 잠이 든다는데, 서산으로 해가 기울어간다. 그렇게 한참을 놀다 돌아서는 발길에 아쉬운 미련이 덕지덕지 걸려 있음을 보았다. 석탑에서 풍겨오는 정겨움이 내 등 뒤로 가득 차 있음을 느낀다. 뼈마디가 풍화되어 온몸을 감싸 안고, 미련에 고개를 돌리면 하늘과 경계를 이룬 지붕돌의 네거티브한 선이 또 아버지 흰머리처럼 실루엣이다.
지극한 선의 아름다움, 그것은 바로 하늘과 세상을 구분하는 선이며, 나와 석탑을 구분하는 선이었다. 유일하게 가을이 물드는 석탑에 고개 숙여 합장하고 외로움을 남겨둔 채 다독이듯 돌아선다. 아들아이의 꼭 잡은 손에 힘이 실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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