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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내부 수리 중 / 최민자

부흐고비 2019. 11. 25. 22:12

내부 수리 중 / 최민자


친구와 만나기로 한 가게 앞에 작은 메모판이 붙어 있다.

'내부 수리 중'

손님이 뜸한 여름을 틈타 실내 정비를 하려는가 보다. 아니면 어디 잠시 휴가라도 떠난 것일까. 유리문에 붙여둔 종이 한귀퉁이가 자꾸만 바람에 들썩인다.

'내부 수리 중'

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며 출렁이는 글자들을 바라다본다. 나도 그렇게 팻말 하나 달아매고 잠시 문 닫고 휴업이나 했으면. 때 없이 솟아나는 잡동사니 상념들은 꽁꽁 묶어 구석지에 개켜두고, 눅눅하게 쳐져 있는 요즈막의 마음자락은 툭툭 털어서 일광소독이라도 해두고 싶다. 이 빠진 접시와 무디어진 칼날은 새 것으로 교체해 놓고, 자주 터덕거리는 아날로그시계도 첨단의 디지털로 바꾸어 달까 한다. 무엇을 애써 걸어두기보다는 빈 벽을 많이 남겨두는 것도 눈 맛이 시원해 좋을 것이다. 버릴 것 버리고, 바꿀 것 바꾸고, 낡아 삐걱거리는 몸 구석구석을 닦고 조이고 기름 치는 일까지, 자고새면 수리할 품목이 늘어날지 모른다. 리모델링 작업을 깔끔하게 끝내고 '신장개업' 간판을 대문짝만 하게 내걸면 사는 맛이 한결 새로워질까.

기운 잃은 육신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기억력과, 좌충우돌 부대끼다 생채기 진 마음을 보수하느라 나는 언제나 쩔쩔매며 산다. 멀쩡한 척, 번드레한 척, 아무 일도 아닌 척 시치미를 떼지만, 흐려진 창문과 고장 난 내연기관, 막힌 배수구를 가리고 감추느라 시시때때 남몰래 허둥대며 산다. 간판을 내달아 걸지 못할 뿐, 실은 나도 언제나 내부 수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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