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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못 / 정성화

부흐고비 2019. 11. 25. 21:40

못 / 정성화


이삿짐을 싸놓고 집을 둘러보았다. 살다가는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있다. 액자를 떼어낸 곳의 벽은 당황스럽다는 듯이 창백해 보이고, 소파가 놓여있던 자리에는 네 발의 자국이 선명하다. 또 형광등에 붙여 놓은 별 스티커는 아직 이사 소식을 모르는지 여전히 반짝거리고 있다.

군데군데 먼지가 솜사탕처럼 뭉쳐 있다. 가볍게 공중을 날아다니는 것으로만 알았는데 어느새 먼지도 집을 짓고 있었다. 집이란 사람만 쉬는 곳이 아니라. 먼지 또한 조용히 내려앉아 쉬는 곳이었던가 보다.

이 집에 이사를 왔을 때 비어 있는 벽은 왠지 무뚝뚝해 보였다. 그래서 환하게 웃는 우리 가족사진 액자와 추가 귀엽게 흔들리는 벽시계를 걸어주며 처음으로 말을 탔다. 또 다른 벽에는 풍경화 한 점을 걸어 주었다. 그것은 벽에게 바깥세상의 정경을 보여주는 일이었다. 그러자 벽은 잊었던 기억을 되살리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걸었던 것을 다 떼어낸 지금, 벽은 생기를 잃은 듯하다. 간간이 남은 못 자국이 쓸쓸해 보인다. 어깨에 남은 우두자국 같다. 찢겨진 벽지와 떨어져 나간 시멘트 조각, 움푹 팬 구멍으로 인해, 못 자국은 마치 옛날의 영화와 권세가 사라진 빈집처럼 느껴진다. 또 회복되지 않을 상실감과 보낸 것에 대한 회한(悔恨)을 품고 있는 듯이 보인다. 못 자국이란 벽속에 자리 잡고 있는 그 집의 추억들이 조용히 숨을 고르고 있는 숨구멍 같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어쩌면 나 역시도 신(神)이 이 세상에 박아놓은 못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못에 신은 무엇을 걸어두고 싶었을까. 나는 지금 튼실한 못으로 살아가고 있는 걸까. 그러나 더 이상 걸어둘 게 없어진다면 신은 미련 없이 내 정수리에 장도리의 날을 들이대겠지. 그리고 가뿐히 뽑아내버리겠지.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발바닥에 힘이 쥐인다. 내 발은 뽑히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쓰는 질경이 뿌리가 된다.

뽑는 자와 뽑히는 자의 경계선상에 신과 인간이, 장도리와 못이 있다. 그렇게 갈라지는 기준이라는 게 정말 ‘필요와 불필요’ 뿐일까 생각하니 이내 쓸쓸한 기분이 된다. 신은 내 목에 뭔가 걸어두고 싶었을 텐데, 나는 본분에 충실치 못하고 못의 형상을 이용해 다른 이의 가슴을 찌르고 다니기가 일쑤였다. 나의 가족뿐 아니라 친구, 친척, 시댁 식구 등 그 대상을 가리지 않았던 것 같다. 더 부끄러운 일은 나보다 더 힘들게 사는 이의 가슴팍까지도 찌르고 다녔다는 것이다.

개구즉착 (開口卽錯) 이라고 했던가. 입을 여는 순간에 어긋난다는 뜻이다. 내 입 안의 혀를 제대로 단속하지 못해 얼마나 많은 낭패를 겪었는지 모른다. 또 게릴라처럼 치고 빠지는 날카로운 말투 때문에 오해를 산적도 많다. 내 혀가 또 하나의 못이었던 것이다.

나라고 해서 못에 찔리지 않은 것은 아니다. 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다. 방안에 둘러앉아 얘기를 나누던 시누이들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는 게 심상치 않았다. 시집을 오면서 그렇게 맨몸으로 오다니 얼굴도 참 두껍다고 했다. 부엌에서 일하고 있던 나를 두고 한말이었다. 조금의 굴절도 없이 그 말은 수평으로 날아와 내 가슴에 단단히 박혀버렸다. 그때 박힌 못 때문에 나는 결혼한 지 이십년이 넘도록 공밥을 먹고 있지 않으며, 그 못에다 책과 분필 지우게 보따리를 걸어두고 있다. 못이란 꼭꼭 다진 마음 보따리를 걸어 두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다.

나는 우리 집 남자들에게, 남자는 모름지기 미스터 에너자이자(Mr.Energizer)가 되어야 한다고 못을 박는다. 오래 가는 힘, 고통을 견디는 힘이 없으면 남자가 아니라고, 불을 밝힐 수 없는 건전지의 운명을 생각해보라면서 한 번 더 장도리로 내려친다. 그러나 못을 내려치는 머리와 못을 빼내주는 날이 나란히 붙어 있는 장도리의 모양을 생각하면, 그들의 가슴에 쓸데없이 박혀 있는 못을 찾아내어 빼내는 일 또한 나의 몫인 듯하다.

무슨 얘기를 해도 다 받아주는 사람이 있다. 나만이 이런 아픔을 겪는구나, 이 일을 어찌 감당하랴 싶을 때 나는 그녀를 찾는다. 그런 아픔쯤은 아무 것도 아니라고 하며 이 세상에 견뎌내지 못할 고통이란 없는 거라고 그녀는 말한다. 아무리 진한 슬픔을 들이대어도 그녀는 내가 견딜 수 있는 슬픔으로 단번에 희석시켜버린다. 그리고 자신의 슬픔인양 받아들인다. 그녀의 그런 능력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그녀의 가슴에 나 있는 무수한 못 자국들이 세월이 흐르는 동안 서서히 마멸되어 부드러운 스펀지로 변한 건 아닐까. 그래서 다른 이의 아픔이나 슬픔, 갈등까지도 단번에 받아들일 수 있는 게 아닐까. 그래서 그녀를 보면, 못 속에는 위기 극복 유전자나 고통 예방 백신 같은 게 분명 들어있을 것 같은 생각이 절로 든다.

사람을 힘들게도 하지만 강하게 하는 못, 나는 이제 더 이상 못을 두려워하지 않을 것이다. 못이 빠져 네 귀가 맞지 않는 상자가 되었을 때, 누구라도 서슴치 말고 내게 다가와 단단히 못질을 해주었으면 싶다.

내 스스로 나에게 쳐야 할 못은 어떤 것일까. 헐렁해진 못 하나가 손에 잡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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