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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지금 몇 시냐 / 전미란

부흐고비 2019. 12. 15. 09:45

지금 몇 시냐 / 전미란
The 수필, 2019 빛나는 수필가 60인 선정작


"몇 시 몇 분입니까? 시간을 구하시오."

초등학교 때 시계 보는 법을 몰라 종종 나머지 공부를 했다. 방과 후면 종이 위의 시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동그란 시계의 모양과는 달리 머리는 잘 굴러가지 않았다. 시침과 분침이 직각을 이루거나 포개지는 문제는 쉬웠지만 긴바늘이 조금만 움직여도 짧은 바늘은 어느새 정각을 벗어나 풀기 어려웠다. 짝꿍은 시간의 비밀을 다 풀어버린 듯한 표정으로 "이게 뭐가 어렵다고…." 하면서 어이없어했다. 나는 운동장 느티나무 그림자가 길어지는 것을 지켜보며 집에 갈 시간만을 기다렸다.

어릴 적, 어머니는 시계에 밥이 떨어졌다며 나를 부르시곤 했다. 안방 윗목 높이 괘종시계가 붙어 있었는데 밥을 주는 일은 늘 내 차지였다. 유리문을 열고 밥을 주면 죽었던 시계는 묵은 시간을 털어내고 바로 살아났다. 시계가 밥을 먹는 날엔 시간의 발걸음 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한밤중 종소리는 무서웠다. 종을 치기 직전 마치 심호흡이라도 하듯 '씨익' 하며 뱉어내던 태엽의 신음 소리는 더 무서웠다.

얼마 전 친정에 갔다. 창고에 괘종시계가 해묵은 잡동사니 틈에 끼여 먼지를 뽀얗게 뒤집어쓰고 있었다. 언제부터 창고에 있었는지 칠이 벗겨지고 귀퉁이가 부서져 있었다. 세월의 어디쯤에서 멎어 버린 시계는 어머니를 떠올리게 했다.

육남매 중 막내를 결혼시키던 해, 몸에 묵직한 혹이 만져진다고 하시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커졌다고 했다. 어머니는 퇴원과 입원을 반복했다. 몸속의 혹은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게 되었다.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걸 알게 된 후 조금이라도 곁에 있고 싶어 친정으로 내려갔다.

어느 날, 어머니의 몸이 퉁퉁 부어올랐다. 의사가 오늘을 넘기기 어려울 거라고 했다. 링거액은 초침처럼 다급하게 떨어졌다. 강한 진통제에도 통증이 잦아지지 않았다. 아파도 소리를 내지 않는 성정을 지닌 어머니는 병실에서 죽고 살아나기를 반복했다. 잠깐 눈이 감겼다가 뜨일 때마다 "지금 몇 시냐?"고 또 "몇 시냐?"고 물으셨다. 물음의 간격은 갈수록 짧아졌다. 그러다 어느 순간부터 말을 잃고 시계만 망연히 쳐다보았다.

자정 무렵 어머니는 침대에서 힘겹게 몸을 일으켜 앉았다. 당신을 에워싸고 서 있는 자식들을 눈물 괸 눈으로 바라보셨다. 그리고는 갑자기 누룽지가 먹고 싶다고 했다. 나는 누룽지를 끓여 오려고 부리나케 집으로 달려갔다. 입맛이 그대로 있으신 걸 보니 아직 가실 때가 되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한결 놓였다. 집으로 돌아오자 나도 모르게 긴장이 풀어졌다. 잠깐 눈을 붙인다는 것이 어처구니없게도 깜빡 잠에 빠졌다. 허둥지둥 일어나 조급한 마음에 설 끓인 누룽지를 갖고 병원에 가는 사이 어머니 몸시계가 멈춰버렸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엊그제 같은 어머니의 아픈 숨소리가 들린다. 세월의 소용돌이에서도 난 어머니의 시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온전히 마음을 기울이지 못한 그날이 오랫동안 가슴속을 휘저었다. 임종을 지키지 못했던 시간이 지금도 아픔으로 작동하고 있다.

어머니는 가파른 생의 내리막에서 어떤 시간이 필요했을까. 몇 시냐? 또 몇 시냐?고 왜 그렇게 시간을 물어 왔을까. 째깍거리는 현실의 시각이라고 하기엔 거리가 멀게 느껴졌던 물음. 시간을 터득하지 못했던 유년처럼 나는 지금도 어머니의 물음에 대한 답을 얻어내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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