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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다음 정류장 / 전미란

by 부흐고비 2019. 12. 15.

다음 정류장 / 전미란


아저씨, 이 차 어디로 가요?

문이 반쯤 닫히려는 순간, 버스기사가 버럭 화를 낸다. 짧은 정차 후 버스는 지체됐다는 듯 사납게 출발한다. 금방 행선지를 묻던 여자의 물음이 덜컹 귀에 닿는다. 이어 냉랭한 안내 방송이 흘러나온다.

다음 정류장은 신월동입니다.

어휴, 근데 열 받아 죽겠어. 내가 하루 이틀 일하는 것도 아닌데, 들어 온지 얼마 안 된 놈이 주인한테 전화 한 거야. 자기도 수다 떨면서 우리가 떨면 사장한테 꼬질른다니까. 얼마나 사람을 얕잡아 보는지 몰라. 오늘 출근하면 또 한소리 듣겠지. 난 이 집 김밥이 좋아. 시금치는 질긴데 우엉이 많이 들었거든. 앞좌석 등받이 사이로 보이는 오십이 훌쩍 넘은 여자와 그보다 더 나이든 여자가 은박지에 싸인 김밥을 먹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다음 정류장은 합정역입니다.

승객들이 교통카드를 찍을 때마다 환승입니다! 환승입니다! 연이어 들린다. 먼 곳을 떠돌던 기억 하나가 갈아타듯 환승한다. 중학교 때 일이다. 시험성적이 뒤처졌던 나는 학교장추천을 받지 못해 도회지고등학교 진학이 무너졌다. 낮은 점수에 맞춰 도시로부터 떨어진 학교를 다니게 되었다.

다음 정류장은 홍대입구입니다.

깊은 숨을 내쉬며 창밖을 바라본다. 젊음의 진원지 같은 활기찬 이곳을 지날 때마다 잘 낫지 않는 상처처럼 숨은 기억이 되살아난다. 살아오면서 관통했던 많은 정류장 중에 초라하게 통과했던 열일곱 살 정류장. 나에게 허용되지 않았던 경계를 넘고 싶었다. 탈 때는 목적을 향해 가고 싶은 곳이었지만 중간에 수없이 내리고 싶었다.

다음 정류장은 연세대 앞입니다.

주말이면 고향읍내 정류장에는 대부분 촌에서 도시학교로 돌아가려는 학생들로 붐볐다. 새하얀 칼라에 명문여고 뱃지를 단 약방집 딸은 우월감을 반짝이며 나타났다. 동창이면서 가깝게 지낸 그 친구와 마주칠 때마다 엄지로 눌러 박은 압정처럼 마음이 납작하게 눌리었다. 길은 외길이었고 완행버스는 내가 자취를 하고 있는 소읍을 거쳐 지나야만 도시로 갈 수 있었다.

다음 정류장은 이대입구입니다.

어느 날 하필 선망의 감정을 품었던 그 애와 나란히 앉게 되었다. 생글생글 눈웃음을 치는 그 친구와 짐짓 모른 척 한마디 말도 나누지 않았다. 그 애 눈가의 웃음이 자꾸만 날 얕잡아 보는 것 같았다. 어린 마음에 열패감이 비포장 길 뿌연 먼지처럼 풀썩풀썩 일어났다. 주눅과 창피함이 바싹 죄어치는 바람에 목적지에 못 미쳐 내려버렸다. 어쩌자고 무작정 미리 내리고 말았는지. 낯선 곳에서 그만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다음 정류장은 안국역입니다.

버스는 정류장마다 가쁜 숨을 돌리듯 멈춰 서며 묵묵히 달린다. 김밥 먹던 여자들의 대화가 다시 들려온다. 아휴, 젊은 사장이 어찌나 갈구는지 몰라. 하느님 사랑으로도 용서되는 게 아니야. 일손이 부족해도 인원 보충 안 해주지. 휴가마저 못 쓰게 하지. 이건 말이 안 되는 거 아니야? 아, 날씨 좋다. 오늘 같은 날은 즐겨야 하는데… 잠시 침묵이 흐른다. 맞은편 차도에는 차들이 풍뎅이처럼 납작하게 엎드린 채 밀려 더 이상 물러설 데가 없어 보인다.

그녀들은 광화문에서 쫓기듯 후다닥 내렸다. 버스는 다시 차창으로 고층빌딩 세상을 끝없이 반사하고 받아내며 달린다. 한숨을 틀어막듯 김밥을 삼키던 여자가 신산한 생의 노선에서 하차하고 싶은 정류장은 어디였을까. 꺾어진 길 없이 순탄하게 목적지까지 도착한 사람이 얼마나 될까. 흔들리는 버스 속에서 졸음처럼 쏟아지는 지난날의 회상이 유리창에 쿵쿵 부딪힌다. 피곤에 눈을 붙이거나 스마트폰에 얼굴을 파묻거나 멀거니 창밖을 바라보는 사람들. 어쩌면 우리는 자신이 가고자 하는 곳이 어디인지 모른 채 정거장과 정거장 사이를 부유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음 정류장을 향해 막 출발하려던 버스가 끼익, 브레이크 소음과 함께 급정거를 한다. 문이 열리자, 뒤늦게 뛰어온 한 중년여자가 외치듯 묻는다.

아저씨, 이 차 어디로 가요?

그 많은 노선을 다 말해 달라는 거요? 지금?




[작가노트] - 나의 수필은 무엇이 변하였나? / 전미란

십년 가까이 붓 가는대로 쓰는 전형적인 신변수필을 썼다. 그것마저도 나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수필가라는 이름을 그럭저럭 연명하다시피 지내다 상투성에 넌더리가 나던 때 ‘창작에세이’를 만났다.

창작에세이는 상상을 요구했다. 상상은 제약이 없어 자유롭다. 하지만 표현되지 않은 공상과 다를 게 없었다. 표현된 상상만이 창작문학이 될 수 있었다. ‘이것’이라는 소재를 발견하면 뷰파인더에 초점이 딱 맞는 ‘저것’이라는 보조관념을 찾기 위해 파고든다. 형상화를 위해 사실의 소재와 인연을 끊어야한다. 사실의 소재가 아무변화를 하지 못하고 있으면 신변잡기밖에 될 것이 없기 때문이다. 동질성의 보조관념으로 비유창작이 되고나면 생각지도 못했던 주제와 문장에 이르렀고 내가 진짜 하고 싶었던 말이 되어 나왔다.

창작에세이는 사실의 소재를 작품을 제재로 삼으면서도 현실에 없는 이야기와 이 세상에 없는 존재를 만들어낼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이 열려 있는 문학양식이다. 하고 싶은 말과 그것을 담아내는 그릇을 찾는 일은 늘 어려운 일이다. 글이 안 풀린 땐 왜 창작에 뛰어들어 이렇게 고생을 하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재능이 없는 자신을 탓해본다. 재능이 없어 오리무중에 갇혀 헤맬 지라도 비유창작의 불쏘시개로 형식의 틀을 벗고 일탈과 파격에 도전해본다.

창작에세이는 화자로 대변되는 나를 문학화 된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게 한다. 수필을 쓴다는 것은 끝없이 나를 소재로 ‘나’라는 인물을 새롭게 만들어 내는 일인 것 같다. 수필의 정체성을 잃지 않으면서 신변잡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이 숙제처럼 따라다닌다. 오늘도 머릿속은 창작열망으로 사계절 바람이 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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