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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바람의 넋 / 유희남​

부흐고비 2019. 12. 21. 12:15

바람의 넋 / 유희남​


나는 죽어 새가 되고 싶다. ​

현세에 지은 죄가 하도 무거워, 꿈도 야무지다고 내쳐질 게 뻔 하지만, 그래도 뻔뻔스러운 난, 한번쯤 하느님께 떼를 써 볼 참이다. ​한때는, 생명을 받지 않고, 축생으로도 풀잎으로도 태어나지 말고, 구음이나 바람으로 환생하고 싶단 생각을 했었다. ​젊은 날에는, 꽃보다 이쁘고 지인달사처럼 의연한 나무를 볼 때마다, 죽으면 푸른 나목으로 살고 싶단 소망을 가진 적도 있었다. ​

그러나, 내 혼 속에는 아버지 피가 흐른다. ​그것은, 자유, 자유, 자유의 피다. ​시원을 알 수 없는 그리움으로, 일평생 수상스런 바람에 부대낄 자유의 향기. 그래서 난, 새가 되고 싶다. 새가 되고 싶다. ​아마, 선친께서도 새가 되셨으리라. ​

일생동안 누가한테도 굽힌 바가 없었고, 그 어떤 것에도 거칠 것이 없었던 내 아버지, 그 수려한 풍모와 학식과 해박한 논리, 그리고 단아한 용모는 당대 우리 버들류 씨 문중에서 견줄 이없이 뛰어난 천재로 불렸던 분이다. ​

지방에는 비록 학생으로 기록되지만, 나는 그게 오히려 부끄럽기는커녕, ‘아버지답다’는, 역설적 미학으로 이해한다. 어쩌면 당신께선, 무엇인가를 이루려고 하거나, 되려고 하는, 부질없는 인간적 한계를 벌써부터 갈파하셨던 것은 아닐까. ​

나는 이때껏 당신만큼 멋지고, 당신만큼 겸허한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당신께서는 학자적 여유와 분별 있는 풍류로 뭇 여성의 가슴을 애타게 하셨는데, 그분의 본질 속에는, 쉽게 범접할 수 없는, 청아한 기백이 살고 있었다. ​어쩌면 그것은, 변증을 통한 사유와, 인생의 깊은 통찰에서 생성된, 인식의 그 무엇이 아니었을까. ​

상대적으로 삶이 고달플 수밖에 없었던 어머님이, 가끔씩 푸념조로 쏟은 불만은, 이제 나이 들어 되짚어 볼진대, 아버지의 삶을 지배한, ‘역마살’과 ‘바람의 넋’이었단 생각이 든다. 아버지는 내 수필〈만가〉에도 구체적으로 나오지만, 당신처럼 자유, 그 차제였던 분도 없으리라. ​

철들면서 왠지 나는, 아버지처럼 생을 사랑하면서도 달관한 남자를 좀체 다시 만나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을 했었다. ​늘 당당했고 젊고 푸르렀던 아버지는 이상하게도 한 마리 거대한 새를 연상시켰었다. ​멀리, 높이 날기 위해 부단히 비상을 시도하는, 그래서 인생에 잘못 불시착한 외로운 한 마리 큰 새를. ​

혹자는 나의 이런 생각을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아무러면 어떠랴. ​그런데, 4남매 중에서, 아버지의 그런 기질이나 취향을 유난히 많이 닮은 게 바로 나다. 미당 서정주 선생의 시에, 8할이 바람이었다고 했지만, 내겐 9할이 바람이라 해도 과하지 않을 것 같다. ​

나는 늘, 가슴속에서 바람이 분다. 종횡으로, 일진광풍으로, 때로는 미풍이나 소슬바람으로……. 내 마음은 거의 잔잔한 날이 없다. 불혹의 언덕에 올라선 지금까지, 살찐 적이 별로 없는 것도, 가슴 깊은 데서 부는, 지배할 수 없는 바람 때문에, 가슴을 깎으며 피 흘리고 살아 그런 건 아닐까. 바싹 마른 가랑잎처럼, 언제나 완전 연소를 꿈꾸는 자세로, 가슴속엔 내 자신이 관장할 수 없는 바람이 분다. ​

그래서 난, 이런 기질이나 성품에 어울리는 새가 되고 싶다. 아마 태어날 때 하느님께서 잠깐 조시다가 조류로 분류할 걸, 인류 쪽으로 점지하신 게 틀림없으리라. ​진원을 알 수 없는, 천형의 운신인 이 바람은, 만일 내가 새로 태어났더라면, 끝없이 자유롭게 비상하며 살았으리란 공상을 하게한다. ​

흰 깃을 유유히 너울거리며, 태평양이며 알프스 산정을 넘었을 것이다. 때로는 독수리처럼 높이 물새처럼 소근대며, 갈매기처럼 사랑하며…… 가끔은, 저 고비 사먹을 횡단하는 할단 새처럼, 작열하는 태양 밑을 뜨거운 의지로 횡단했을 것이다. ​

이제까지 쌓아올린 삶을 송두리째 고스란히 남기고, 타이티 섬으로 실종(?) 됐던 폴고갱을 이해한다. 그의, 예술과 삶에 대한 가치의 초월을 무시로 동경하는, 내 의식 깊은 곳 어디쯤에서, 참회하듯 이글거리며 타고 있는, 이 자유의 의지……. 무엇에도 속박되고 싶지 않은, 그러면서도 끝없이 떠나고 싶은 소망. 대체 이 연원은 무엇일가. ​

아직도 출근시간이면, 달리는 차 속에서 영영 이대로 사라져 버리고 싶은 충동을 누르며, 매양 가슴을 졸이는 내 핏줄 속에는, 어쩌면 아버지가 지녔던 노진한 ‘바람의 넋’이 그대로 유전된 게 아닐까. 정녕, 나는 근원도 모른 채 불고 있다. ​

이 고단하고 곤비한 살의 무게가, 두 발을 족쇄처럼 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창망한 하늘을 우러를 때마다, 한 마리 작은 새이고 싶은 열망으로 부질없이 술렁인다. 어쩌면 나에겐, 보헤미안이나 집시의 넋, 아미면 시원을 할 수 없는 바람의 혼이 씌운 모양이다. 때때로 이런 생각에 잠기곤 한다. ​

가을날, 산골짜기를 파스텔 색조로 물들이는 저녁 안개처럼, 감미로운 우수로 나를 감싸는 이 천형의 허무야말로, ‘자유’를 궁극의 고향집으로 남긴 채 떠도는 미망과 번뇌의 덫이 아닐까 어디고 정착하거나 뿌리 내리길 두려워하며, 그 어떤 것도 집착하거나 탐닉하지 않으려는 무소유의의지는…. 그래서, 가진 것이라곤 빈약한 육신 하나뿐이면서도, 비교적 마음이 넉넉한 나의 이 이율배반이여. ​

아직도 ‘새’를 꿈꾸는, 영원히 자유인이길 꿈꾸는 내 의지는, 그러기에 나머지의 목숨도, 가늠하기 벅찬 설렘으로 방황할게 너무나 뻔하다. 오! 자유의 매혹이여. 스러져 버리지 않을, 존재의 향기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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