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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삼도내의 돌탑 / 송규호

부흐고비 2019. 12. 24. 21:14

삼도내의 돌탑 / 송규호


니가타에서 뱃길로 35킬로, 사도佐渡는 민요<오케사부시>의 노랫말처럼 떠돌이도 정이 든다는 살기 좋은 곳으로 전해 내려온 섬이다. 차창 너머로 스쳐 지나는 마을마다 붉은 과일이 마지막 과일을 탐스럽게 익어간다.

해발 1,172미터의 저 긴포쿠산에 눈이 세 번 내리면 마을에도 눈발이 비친다고 한다. 그런데 산에는 이미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다. 크게 돌아가는 허구리에 어린이와 나그넷길을 지켜주는 돌부처가 당집과 더불어 예스럽다.

여기 네가이縣는 섬의 서북쪽 끝인 갯마을이다. ‘네가이!’ 원하는 것은 나름대로의 소망이겠지마는 간절히 빌기만 하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일까. 오노 거부바위에서 쌍거북바위 쪽으로 해안선을 따라 일부러 찾아가는 ‘사이노 가와라’이다. 우리네 정서로서는 ‘삼도내三途川의 모래톱’ 또는 ‘가장골’로 고쳐 부르고 싶은 곳이다.

폭포의 갯골을 지나자 길이 거칠어지면서 크고 작은 돌탑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여기저기 바윗등에 모여 앉은 동자부처가 예사롭지 않다. 금줄이 늘어진 바위문을 조심스레 빠져나오자 갑자기 차가운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동시에 그 무엇이 뒷통수를 잡아당기듯 온몸이 으스스해진다.

여기 삼도내는 죽은 아이들의 넋이 모이는 곳으로 믿어 알려져 있다. 시간이 멎은 듯한 이 외딴 바닷가는 마치 세상의 끝인 양 거칠고 쓸쓸하기 그지없다. 그리하여 이 곳을 저승으로 가기 전에 반드시 건너야 한다는 삼도내로 정했는지도 모른다.

아무 것도 모르는 가운데 태어난 어린이들은 또 영문을 모르는 채 저 세상으로 떠난다. 그러나 이들은 극락도 지옥도 아닌 오로지 여기 삼도내에만 머물러 있어야 하는 법도인 것이다.

돌과 모래가 뒤섞인 갯마당에는 갯돌을 쌓아올린 돌탑이 많이도 늘어섰다. 그리고 안쪽의 커다란 동굴에서는 수많은 돌탑이 지장보살을 겹겹이 에워쌌다. 보살의 무릎 앞에 놓인 꽃과 과자는 어느 사랑 찬 엄마의 눈물어린 정성인지 모르겠다.

삼도내의 모래밭은 어린아이를 여윈 사람들의 빎의 광장이다. 많은 어머니들은 어버이보다 앞서 가버린 아이가 그 불효스러운 죄 값음으로 이토록 탑을 쌓은 것이라고 스스로 믿는다. 그런데 해질 무렵이면 악귀가 나타나서 돌탑을 무너뜨리고 꽃다발을 산산이 날려 보내며 다시 쌓으라고 비아냥댄다. 이것은 거센 바닷바람과 동네 개구쟁이들의 짓궂은 장난인 것이다.

그럴 때마다 아이들은 또 연약한 손으로 돌멩이를 주워 모아 다시 쌓기 시작한다. 첫 번째 탑은 아빠를 위하여, 두 번째는 엄마를 위해, 그리고 세 번, 네 번째는 형제자매를 위해서 탑을 쌓는다. 실은 어린애를 앞세운 한 맺힌 어머니가 손수 쌓아 올린 눈물의 탑이다.

이토록 기껏 쌓아두면 두 번 밤사이에 또 무너뜨려버린다. 그러면 어버이가 그리운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삼도내에 울려 퍼진다. 이때 지장보살이 점잖게 나타나서,
​ “울지 말아라, 너희 부모는 사바세계에 있느니라, 그러므로 여기서는 내가 너희의 아버지이니라.”

이 말을 들은 아이들은 그 옷자락과 지팡이에 매달려 울며 도와달라고 애원한다. 그러면 삼도내의 광장에 또 한 차례의 염불이 되풀이된다.

“나무아미타불”

어린 넋의 무덤이라고 할 수 있는 돌탑에는 가지각색의 바람개비가 꽂혀있다. 모두 갯바람을 타고 티없이 맑은 어린애들처럼 빙글빙글 잘도 돈다. 그러다가는 문득 문득 멈추어선 다. 자식들에게는 바보스럽도록 어리석고 정겨운 엄마의 얼굴이라도 얼비쳐 보이는 것일까.

그 옛날, 고향의 가장골에 누이동생을 묻던 날도 때때로 비가 내렸다. 할머니는 태어난 지 사흘 만에 가버린 갓난이를 포대기에 싸안았다. 그리고 천덕이네 돌담 밑을 돌아가면서 아기 비 맞겠다고 치맛자락으로 감싸 안았다.

일꾼이 파낸 구덩이에 볓짚을 깔고 보재기 뭉치를 내려놓으면서 끌끌 혀를 찼다. 그러면서 되뇌던 그 넋두리가 70년이 지난 오늘날 아직도 귓전에 아련하다.

‘젖꼭지도 모르고.....이름도 없이.....’

이만 네가이 마을을 돌아가려는데 젊은 내외가 찾아와서 새로이 탑을 쌓기 시작한다. 하나 또 하나, 갯돌을 포개 올린 손끝이 마치 갓난아기를 어르듯 곰살갑기도 하다.

무너지면 고쳐 쌓고 쓰러지면 다시 일으켜 세워야하는 돌탑들이다. 돌탑은 멀리 가버린 어린애의 넋을 가슴깊이 새겨 묻은 이 세상 어머니들의 한결같은 마음이다. 그리하여 세월의 흐름에 따라 시나브로 여위어 가는 꿈이라고나 하자.

오늘날 ‘삼도내의 돌탑 쌓기’라는 말은 ‘헛수고’의 뜻으로 쓰인다. 그런데 저기 저렇게 또 하나의 돌탑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어린애를 앞세워 보낸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한 ‘삼도내의 돌탑’은 옛이야기로만 묻어버릴 현실이 아닐 성싶다.

숲속에서 또 까옥까옥 까마귀가 운다. 효성이 지극한 까마귀의 게걸스러운 울음소리가 어쩌니 애처롭게 들리는 한낮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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