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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덕송(牛德頌) / 이광수

부흐고비 2019. 12. 29. 22:25

우덕송(牛德頌) / 이광수


금년은 을축년(乙丑年)이다. 소의 해라고 한다. 만물에는 각각 다소의 덕(德)이 있다. 쥐 같은 놈까지도 밤새도록 반자위에서 바스락거려서 사람에게, "바쁘다!" 하는 교훈을 주는 덕이 있다. 하물며 소는 짐승 중에 군자다. 그에게서 어찌해 배울 것이 없을까. 사람들아! 소 해의 첫날에 소의 덕을 생각하여, 금년 삼백육십오 일은 소의 덕을 배우기에 힘써 볼까나.

특별히 우리 조선 민족과 소와는 큰 관계가 있다. 우리 창조신화(創造神話)에는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사람의 조상을 낳았다 하며, 또 꿈에서 소가 보이면 조상이 보인 것이라 하고 또 콩쥐팥쥐 이야기에도 콩쥐가 밭을 갈다가 호미를 분지르고 울 때에 하늘에서 검은 암소가 내려와서 밭을 갈아 주었다. 이 모양으로 우리 민족은 소를 사랑하였고, 특별히 또 검은 소를 사랑하였다.

검은 소를 한문으로 쓰면, '청우(靑牛)' 즉 푸른 소라고 한다. 검은빛은 북방 빛이요, 겨울 빛이요, 죽음의 빛이라 하여 그것을 꺼리고 동방 빛이요, 봄 빛이요, 생명 빛인 푸른 빛을 끌어다 붙인 것이다. 동방은 푸른빛, 남방은 붉은 빛, 서방은 흰 빛, 북방은 검은 빛, 중앙은 누른 빛이라 하거니와, 이것은 한족들이 생각해 낸 것이 아니요, 기실은 우리 조상들이 생각해 낸 것이라고 우리 역사가(歷史家) 육당(六堂)이 말하였다고 믿는다. 어쨌거나 금년은 을축년이니까, 푸른 소 즉 검은 소의 해일시 분명하다. 육갑(六甲)으로 보건대, 을축년은 우리 민족에게 퍽 인연이 깊은 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검은 빛 말이 났으니 말이거니와, 검은 빛은 서양 사람도 싫어한다. 그들은 사람이 죽은 때에 검은 빛을 쓴다. 심리학자의 말을 듣건대, 검은 빛은 어두움의 빛이요 어두움은 무서운 것의 근원이기 때문에 모든 동물이 다 이 빛을 싫어한다고 한다. 아이들도 어두운 것이나 꺼먼 것을 무서워한다.

어른도 그렇다. 캄캄한 밤에 무서워 아니하는 사람은 도둑질 하는 양반 밖에는 없다. 검은 구름은 농부와 뱃사공이 무서워하고, 검은 까마귀는 염병 앓는 사람이 무서워하고, 검은 돼지, 검은 벌레, 모두 좋은 것이 아니다. 검은 마음이 무서운 것은 누구나 아는 일이요, 요새 활동사진에는 검은 손이 가끔 구경꾼의 가슴을 서늘케 한다. 더욱이 우리 조선 사람들을 수십 년 이래로 검은 옷을 퍽 무서워했다.

그러나 검은 것이라고 다 흉한 것은 아니다 어떤 것은 검어야만 하고, 검을수록 좋은 것이 있다. 처녀의 머리채가 까매야 할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렇게 추운 때에 빨간 불이 피는 숯도 까매야 좋다. 까만 숯이 한 끝만 빨갛게 타는 것은 심히 신비하고 아름다운 것이다. 처녀들의 까만 머리채에 불 같은 빨간 댕기를 드린 것도 이와 같은 의미로 아름답거니와, 하얀 저고리에 까만 치마와 하얀 얼굴에 까만 눈과 눈썹도 어지간히 아름다운 것이다.

빛 타령은 그만하자, 어쨌거나 검은 것이라고 반드시 흉한 것이 아니다. 먹은 검을수록 좋고, 칠판도 검을수록 하얀 분필 글씨와 어울려 건조무미한 학교 교실을 아름답게 꾸민다. 까만 솥에 하얀 밥이 갓 잦아 구멍이 송송 뚫어진 것은 더 말할 것도 없고, 하얀 간지에 사랑하는 이의 솜씨로 까만 글씨가 꿈틀거린 것은 누구나 알 일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구태 검은 소라고 부르기를 꺼려서 푸른 소라고 할 필요는 조금도 없다. 푸른 하늘, 푸른 풀 할 때에는, 또는 이팔청춘이라 하여 젊은 것을 푸르다고 할 때에는 푸른 것이 물론 좋고, 풋고추의 푸른 것, 오이지에 오이 푸른 것도 다 좋지마는, 모처럼 사온 귤 궤를 떼고 본즉, 겉은 누르고 큰 것이나 한 갈피만 떼면 파란 놈들이 올망졸망한 것이라든지, 할멈이 놀림 빨래를 망하게 하여 퍼렇게 만든 것이며, 남편과 싸운 아씨의 파랗고 뾰족하게 된 것은 물론이요, 점잖은 사람이 순사한테 얻어맞아서 뺨따귀가 퍼렇게 된 것 같은 것은 그리 좋은 퍼렁이는 못 되다.

그러니까 우리는 구태 검은 소를 푸른 소로 고칠 필요는 없다. 검은 소는 소대로 두고 우리는 소의 덕이나 찾아보자.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마라 하였으나, 대개는 속마음이 외모에 나타나는 것이다. 아무도 쥐를 보고 후덕스럽다고 생각은 아니할 것이요, 할미새를 보고 진중하다고는 생각지 아니할 것이요, 돼지를 소담한 친구라고는 아니할 것이다. 토끼를 보면 방정맞아는 보이지만 고양이처럼 표독스럽게는 아무리 해도 아니 보이고, 수탉을 보면 걸걸은 하지마는, 지혜롭게는 아니 보이며, 뱀은 그리만 보아도 간특하고 독살스러워 구약(舊約) 작자의 저주를 받은 것이 과연이다 ― 해 보이고, 개는 얼른 보기에 험상스럽지마는 간교한 모양은 조금도 없다. 그는 충직하게 생겼다.

말은 깨끗하고 날래지마는 좀 믿음성이 적고, 당나귀나 노새는 아무리 보아도 경망꾸러기다. 족제비가 살랑살랑 지나갈 때에 아무라도 그 요망스러움을 느낄 것이요, 두꺼비가 입을 넓적넓적하고 쭈그리고 앉은 것을 보면, 아무가 보아도 능청스럽다. 이 모양으로 우리는 동물의 외모를 보면 대개 그의 성질을 짐작한다. 벼룩의 얄미움이나 모기의 도심질이나 다 그의 외모가 말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소는 어떠한다. 그는 말의 못 믿음성도 없고, 여우의 간교함, 사자의 교만함, 호랑이의 엉큼스럼, 곰이 우직하기는 하지마는 무지한 것, 코끼리의 추하고 능글능글함, 기린의 외입쟁이 같음, 하마의 못 생기고 제 몸 잘 못 거둠, 이런 것이 다 없고, 어디로 보더라도 덕성스럽고 복성스럽다. '음매'하고 송아지를 부르는 모양도 좋고, 우두커니 서서 시름없이 꼬리를 휘휘 둘러, "파리야, 달아나거라, 내 꼬리에 맞아 죽지는 말아라." 하는 모양도 인자하고, 외양간에 홀로 누워서 밤새도록 슬근슬근 새김질을 하는 야은 성인이 천하사(天下事)를 근심하는 듯하여 좋고, 장난꾼이 아이놈의 손에 고삐를 끌리어서 순순히 걸어가는 모양이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 것 같아서 거룩하고, 그가 한 번 성을 낼 때에 '으앙' 소리를 지르며 눈을 부릅뜨고 뿔이 불거지는지 머리가 바수어지는지 모르는 양은 영웅이 천하를 취하여 대로(大怒)하는 듯하고 좋고, 풀판에 나무 그늘에 등을 꾸부리고 누워서 한가히 낮잠을 자는 양은 천하를 다스리기에 피곤한 대인(大人)이 쉬는 것 같아서 좋고, 그가 사람을 위하여 무거운 멍에를 메고 밭을 갈아 넘기는 것이나 짐을 지고 가는 양이 거룩한 애국자나 종교가가 창생(蒼生)을 위하여 자기의 몸을 바치는 것과 같아서 눈물이 나도록 고마운 것은 물론이거니와, 세상을 위하여 일하기에 등이 벗어지고 기운이 지칠 때에, 마침내 푸줏간으로 끌려 들어가 피를 쏟고 목숨을 버려 내가 사랑하던 자에게 내 살과 피를 먹이는 것은 더욱 성인(聖人)의 극치인 듯하여 기쁘다. 그의 머리에 쇠메가 떨어질 때, 또 그의 목에 백정의 마지막 칼이 푹 들어갈 때, 그가 '으앙'하고 큰 소리를 지르거니와, 사람들아! 이것이 무슨 뜻인 줄을 아는가, "아아! 다 이루었다." 하는 것이다.

소를 느리다고 하는가. 재빠르기야 벼룩 같은 짐승이 또 있으랴. 고양이는 그 다음으로나 갈까. 소를 어리석다고 마라. 약빠르고 꾀잇기로야 여우 같은 놈이 또 있나. 쥐도 그 다음은 가고, 뱀도 그만은 하다고 한다.

"아아! 어리석과저. 끝없이 어리석과저. 어린애에게라도 속과저. 병신 하나라도 속이지는 말과저."

소더러 모양 없다고 말지어다. 모양내기로야 다람쥐 같은 놈이 또 있으랴. 평생에 하는 일이 도둑질하기와 첩얻기 밖에는 없다고 한다. 소더라 못났다고 말지어다. 걸핏하면 발끈하고 쌕쌕 소리를 지르며 이를 악물고 대드는 것이 고양이, 족제비, 삵 같은 놈이 있으랴. 당나귀도 그 다음은 가고, 노새도 그 다음은 간다. 그러나 소는 인욕(忍辱)의 아름다움을 안다. '일곱 번씩 일흔 번 용서'하기와, '원수를 사랑하며, 나를 미워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 할 줄을 안다.

소! 소는 동물 중에 인도주의자(人道主義者)다. 동물 중에 부처요, 성자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말마따나 만물이 점점 고등하게 진화되어 가다가 소가 된 것이니, 소 위에 사람이 있는지 없는지는 모르거니와, 아마 소는 사람이 동물성을 잃어버리는 신성(神性)에 달하기 위하여 가장 본받을 선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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