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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모시의 멋 / 배혜숙

부흐고비 2020. 1. 21. 20:43

모시의 멋 / 배혜숙


한산 세모시 한 필쯤 누구에게나 선물할 수 있는 여유를 갖고 싶다. 그만큼 정갈스럽고 깨끗한 마음을 가지지 못함이 참으로 부끄럽다. 모시가 지닌 우리 고유의 신선한 멋을 가내 공업의 정교한 솜씨를 나는 좋아한다. 번쩍이는 인조비단 감촉과 수백 종의 호화스런 화학섬유류가 최고의 품위와 최상의 멋을 풍겨 주리라는 지극히 물질적이며 매끄러운 감각이 활개치는 세상이라 이 모시옷의 우아함, 높은 품위를 전혀 모르는 이들도 있다. 그런 사람을 보면 안타깝고 구차해 보이기조차 하다.

기계에 의하지 않고 손으로 한 올 한 올 모시풀에서 빼어낸 표표하고 까끄러우면서도 부드런 실을 도투마리에 감아 베틀 위에 얹어 옷감을 짜는 정성만큼의 고귀함을 알아주는 이들도 많다는 데는 새삼 흐뭇한 기분이다. 대대로 물려온 시집살이의 설움, 고단한 한숨이 올올이 짜여지고 깨끗하고 선한 마음 자세가 소망의 올이 되어 베어있는 모시, 안으로만 접어 두었던 열망이, 분노가, 사연이 몰래 숨겨진 모시 필들을 볼 때면 홀연히 한국 아낙네들이 몇 천 년을 지켜 내려온 인내의 항아리라도 들여다 보듯하다. 그래서 모시처럼 짜여졌을 섬세하고, 절박한 정들을 물려받은 한국 여인들의 많은 지순한 사랑을 생각하게도 한다. 물에 들어갈수록, 손이 자주 갈수록 점차 희고 고와짐은 또한 얼마나 아름다움이랴.

해마다 여름이면 조그만 보퉁이를 머리에 이고 우리 집을 찾는 전라도 사투리의 모시 장수 아줌마가 있다. 그 아주머니랑 나누는 어머니의 이야기는 끝이 없이 갈수록 고조된다. 정갈한 모시 필들을 사이에 두고 모시옷 입은 이들의 자태며, 모시의 고귀함, 모시가 지니는 한여름의 멋을 늘어놓으면서 어머니는 모시 필들을 황홀하게 보시곤 한다. 나 또한 어머니 곁에 앉아서 마음 따겁게 감탄하며 동양화 병풍이나 고려청자를 감상하듯 이리저리 들여다본다. 아니 그건 시각적으로 본다는 것보담 마음과 눈으로 음미한다는 게 훨씬 적당한 표현이다. 그러다 보면, 한산 아주머니, 어머니와 나는 그 모시옷에 대한 여릿여릿한 추억에 잠긴다.

우리가 갈망하는 일들이 욕심 없이 소박한 것일지라도 이루어지기가 쉽지 않듯 어머니는 늘 이 한산 세모시 한 필 살 수 있는 여유를 가지지 못하시어, 모시 얘기에 푹 잠기시거나, 보고 만질 수 있는 것으로 마음을 족해 하신다.

한여름 소나기처럼 시원한 감각을 가져다 준 모시옷의 매력을 보았다. 비취잠에다 자주빛 댕기를 드리고 까만 머리와 연연한 흰빛의 모시 한복이 너무 잘 어울리는 젊은 여인이었다. 잠자리 날개 같은 아른한 저고리에 비쳐는 하얀 속살, 질끈 졸라매어 숨겨진 볼륨의 가슴에 얹힌 호박단 브로치, 풀이 알맞게 선 치마폭이 이루는 참한 분위기가 퍼져 나왔다. 둥그런 머리선을 타고 내리는 무수한 사연이 하얀 목줄기로 모시 저고리의 소매 선으로 다시 적당하게 퍼진 치마선을 타고 흰 버선발과 고무신 코에 내려앉는 듯했다. 그 아름다운 여인으로 하여금 더 빛나는 모시의 매력을 읽어 내릴 수 있었다.

며느님의 바느질 솜씨와 섬세하고 조심성 있는 알뜰함을 자랑하시던 어느 할머니의, 반백의 머리와 잘 어울리던 모시옷의 자태가 있다. 그래서 한국 며느리의 고운 인내와 보배로운 순순함을 배울 수 있다. 까다로운 시집살이 애환이 할머니의 모시옷 바느질 땀마다 퍼져 나옴을 느낀다.

대청마루에 화문석 돗자리를 깔고 앉으신 할아버지가 <태극선>이나 <합죽선>을 들고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고 계실 때의 모습은 할아버지의 모시 고의적삼 때문에 고즈넉함을 느끼게 한다.

새벽마다 산책을 나서는 아버지의 모시 잠방이는 아침 이슬을 들이켜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시면 잠방이 끝은 흠뿍 젖어 있다. 아버지가 걸음을 떼어놓으실 때마다 사그락거리는 경쾌한 소리, 또한 모시만이 가진 특유의 소리다.

카톨릭 신자인 외할머니의 여름 일요일 외출 채비도 아름답다. 하얀 모시옷을 차려 입으시고 성경책과 미사 수건을 옆에 낀 채 대문을 나설 때마다 외할머니의 뒷모습에 끌려 언덕길을 사라지실 때까지 바라보던 일들이 이만큼이나 성장한 뒤에야 모시옷이 주는 기품 탓임을 알 수 있다.

서울 고모님은 양복만 입고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일요일만이라도 모시옷을 입게 하시겠다고 봄부터 한 땀씩 바느질하시는 뜻에서 한국 아내들의 잘 익어 단맛이 드는 후한 정을 풍겼다.

어느 해 칠월칠석날 나는 어머니를 따라 절에 갔었다. 8월의 끄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법당 뜰에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법당 안에서 두 손을 모으고 머리를 조아려 기도를 드리는 뒷모습 때문이었다. 그 많은 신도들이 모두 날아갈 듯한 자태의 모시옷을 입고 있어 가슴으로 느끼기엔 너무 벅차 표현할 수 없는 경건함이 절 주위를 감돌았다. 어린 날 절에 가면 스님의 길게 이어지는 경읽는 소리와 107번의 절이 지루함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그 날 나는 그 많은 신도들의 모시옷 때문에 오래도록 머무르고 싶은 충격을 느꼈다. 나는 그들의 기구가 결코 헛되지 않을 것임을 믿었다. 어머니의 유일한 여름 외출복인 모시옷 한 벌은 삼십 년을 넘어 입어 아주 낡았다. 그래서 모시가 지닌 빛이 제대로 나지 않아 씻을 때마다 엷은 옥색 물을 들인다.

올여름에도 일찍이 그 옷을 새로 손질하신다. 어머니의 여름 준비는 항상 모시옷의 손질부터 시작되곤 한다. 어머니가 보물처럼 아끼는 모시옷은 30년이 넘은 어머니의 여름을 묵묵히 지켜온 세월의 고운 표적인 것이다. 세모시 한 필을 장만하여 아버님의 모시옷을 한 벌 새로 지어야 하겠다고 벼르는 마음에서 나는 한국의 어머니다운 무한한 사랑을 가슴으로 안아 들인다.

한여름 시내버스 속에서 남색 통치마 위에 모시 저고리를 입은 어쩌면 처녀일지도 모를 여인을 보았다. 그녀는 단순한 차림새인데도 샘터라도 금방 다녀온 듯한 모습이다. 그 여인의 곁에만 바람이 일어 버스 속의 모든 사람은 그 여인의 주변만이 산바람 같은 기운이 일렁이듯 그쪽으로 향했다.

아주 호화스런 이름을 가진 일류 양장점에서, 백화점에 진열된 합성섬유의 갖가지 옷들, 양품점 쇼윈도우에 걸린 사치성이 농후한 원색의 옷들이 어떻게 감히 그 청신함을 따를 수 있을까.

모시옷의 고결함이란 결코 장미나 백합의 자극적 향기가 아니다. 소나무 청솔 향기가 내는 향이다. 그는 태양이 지닌 강렬하고 뜨거운 빛보담 가만히 달빛을 머금은 자태다. 모시옷은 결코 밖으로 드러내지 않으며 안으로 접어두는 데서 하염없는 멋을 풍긴다. 모시옷은 비둘기 날갯죽지에 묻어오는 잔잔한 바람소리를 지녀 자기를 내세워 오만하지 않는 사람의 옷이다. 겸손하고 온전히 참을 줄도, 남을 사랑할 줄도, 이해할 줄도 아는 사람들에게서만이 제값을 지닌다.

남에게 무엇인가를 죄다 나누어주기도 하면서 남의 것을 사양할 줄도, 이해롭게 받아들일 줄도 아는 한국 여인의 옷이다.

누가 뭐래도 한국의 여인이기에 한국의 어머니, 한국의 아내, 한국의 며느리일진대 모시의 멋으로 강한 긍지를 지녀 우리 것에 눈 주고 귀 기울이는 정신도 있다. 한국 여인이기에 여름날 속살이 보일 듯한 그래서 여운과 운치가 있는 모시옷을 한 번쯤 손질해서 외출을 나서는 온후한 감정도 지니고 있나 보다.

어머니는 오늘도 옹기그릇에 옥색물을 풀어서 모시치마를 담그고 계시다. 마루에 앉아서 보는 그 모습이 한없이 정겹다.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한산 아줌마의 사투리가 모시 끝마다 주렁주렁 달리고 모시올과 함께 짜여져 배어 있을 여인의 한숨과 애환이 숨어 있는 모시 한 필을 어머님께 선물하고 싶다. 결코 부도덕하지 않으며 뉘우침이 있는 생활의 돗자리 같은 한산 세모시 한 필은 어머니를 충분히 기쁘게 해 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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