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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매생이 / 박모니카

by 부흐고비 2020. 2. 10.

매생이 / 박모니카
제19회 신라문학대상


매생이국을 끓인다. 며칠 전부터 속이 편치 않다며 음식만 보면 손사래를 치는 남편을 위해서다. 파도처럼 일렁이며 끓어오르는 물에 낱낱이 손질한 생굴을 한 움큼 집어넣는다. 제 몸을 우려낸 굴의 육즙에 깨끗이 씻어 둔 매생이를 푼다.

제 생을 둥글게 말고 있던 매생이가 오그린 다리를 주욱 펴며 한 올씩 펴져 나간다. 솥 안은 금세 바다가 된다. 다족류의 곤충처럼 스멀스멀 몸 밖으로 기어 나오는 초록의 말들이 둥근 수평선을 넘는다. 갯내음이 물씬 풍겨오고 공중으로 일제히 날아오르는 갈매기들의 날갯짓 소리가 들린다. 그 사이로 매생이 냄새가 밀물처럼 천천히 밀려온다. 경상도에선 구하기 힘든 매생이를 알게 된 것은 순전히 영암 사는 친구 덕분이었다. 언제부턴가 남도 정취를 육자배기로 간드러지게 보여 주겠노라고 벼르던 그녀는 어느 날 두툼한 소포를 보내왔다. 그 안에는 얼려진 초록의 해조류가 어른 주먹만 하게 뭉쳐진 채 여러 개 담겨 있었다. 의외였다. 당연히 그 유명한 남도 판소리일 거라는 내 예상은 어긋났다.

매생이는 파래와 비슷하나 파래보다 올이 훨씬 가늘다. 정약전의 <자산어보>에는 '누에 실보다 가늘고 쇠털보다 촘촘하며 길이가 수 척에 이른다. 빛깔은 검푸르며 국을 끓이면 연하고 부드러워 서로 엉키면 풀어지지 않는다. 맛은 매우 달고 향기롭다.'라고 예찬했다. 그렇게 가느다란 몸에서 엉키면 풀어지지 않을 만큼의 촘촘한 힘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일까. 문득 매생이 같은 그녀가 생각났다.

그녀를 만난 것은 대학교 동아리에서였다. 그러니까 이십오륙 년이 다 되어 간다. 그때 그녀는 힘겨운 시간을 견디고 있었다. 지주 집안으로 중증 뇌성마비를 앓는 아버지에게 팔려오다시피 한 어머니를 둔 그녀, 유학자인 시아버지의 권위는 추상같았고 시어머니의 간섭은 시도 때도 없이 그녀 어머니의 숨통을 조였다. 뼈도 없는 것처럼 흐물거리는 삶을 살아가는 어머니가 그래도 한숨을 토해낼 수 있는 곳은 아버지 곁이었다고 했다. 시종 침을 흘리는 아버지의 입가를 수건으로 꼭꼭 눌러 주며 병수발을 하는 어머니에게 그녀 자신도 모르게 화를 냈다고 했다. 말 한마디 대꾸 못하고 그저 지난 한 생을 받아들이기만 하는 그녀의 어머니가 너무 바보스러워 보였다는 것이었다. 그나마 대를 잇겠다고 지극한 정성으로 낳은 남동생이 정박아인 것을 그녀의 어머니는 믿으려 하지 않았다고 했다.

그녀는 그곳을 뻘밭이라고 했다. 어떻게든 늪 같은 그곳을 빠져 나오리라 작정한 것이 멀리 떨어진 대구의 대학교를 선택한 것이었다. 그녀는 술만 먹으면 울었고 세상을 비관했다. 학교 다니는 4년 내내 그녀는 단 한 번도 고향으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렇게 철저하게 자신의 상황을 외면했던 그녀는 그러나 어떤 연유에서인지 졸업하자마자 고향으로 돌아갔다. 매생이가 포자상태로 뻘밭 속에 잠시 머무르던 것처럼 그렇게 머물다 갔다. 4년의 방황이 그녀가 어찌 할 수 없는 천형 같은 그녀의 삶을 수용하게 했던 것일까. 그녀는 이제까지 그 이유에 대해서는 내게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매생이가 나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선 것은 그녀가 보내온 매생이 뭉치 중 절반 이상을 먹은 뒤였다. 척박한 바위 위에서 실핏줄 같은 줄기 하나만으로 온갖 풍상을 다 겪은 매생이의 일생이 그녀의 삶처럼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고향으로 간 그녀는 조부모님이 돌아가시자 무성생식을 하는 매생이처럼 결혼도 뒤로 미룬 채 그녀의 가족을 부양하며 살았다. 그녀의 어머니마저 마른 풀잎처럼 누워 버렸을 때 어머니의 빈자리를 그녀가 메우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녀의 어머니가 하던 것처럼 그녀는 정박아인 동생을 보살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씩 엎질러놓는 음식이며 대소변 가리기, 또한 끊임없이 흐르는 아버지의 침을 닦아 주었다. 그녀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수용하게 되었고 그들과 같이 웃고 울었다. 그들이 곧 그녀였다. 그녀가 그토록 도망가고 싶었던 뻘밭 같은 그들이야말로 '가족'이라는 보물임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런 그녀에게서 가끔씩 전화가 왔다. 그녀는 행복하다고 했다. 누군가를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그런 넉넉함이 그녀의 목소리에서 배어나왔다. 그럴 때 그녀의 목소리에는 남도의 보리밭 같은 풋풋함이 묻어 있었다. 매생이의 뿌리 내린 터전이 조간대의 상부 바위인 것처럼 그녀에게 뇌성마비 아버지와 정박아인 동생은 그녀의 삶을 돋을 새김한 단단한 바위였던 것이다. 물과 햇빛만 있으면 살아가는 매생이처럼 그들의 웃음은 그녀가 살아가는 이유가 되어 있었다.

바다 속을 주기적으로 뒤집는 태풍이 닥칠 때라도 매생이는 버텼다. 살아남기 위하여 세상에 없는 그만의 발톱을 세울 줄도 알았다. 매생이를 바위에서 떨쳐 내려고 쉼 없이 후려쳐대는 파도를 매생이는 거부하지 않았다. 오히려 파도에 익숙해지려는 노력을 더했을 뿐이다. 있는 그대로를 굴절 없이 투과시킬 수 있을 만큼의 가늘기를 가진 매생이는 하나의 극한을 제시하며 쪼갤 수 있을 때까지 부피를 줄였다. 욕망의 최소 부피만을 허용한 그녀 역시 매생이 가늘기 이상의 삶을 바라지 않았다. 그런 그녀는 날 아프게 하고 부끄럽게도 했다. 그러한 그녀를 보며 내 어깨를 짓눌렀던 내 삶의 무게가 매생이 한 올의 중량보다 더 무겁다고 감히 말 할 수 없었다.

삶이 위기라고 느낄 만큼 절박할 때라도 묵묵히 견뎌냈던 그녀 어머니를 그 친구도 어느 새 닮아 있었다. 가녀린 몸으로 운명처럼 들이닥칠 사랑을 믿었고 그것이 비극이라 할지라도 생의 전부를 걸었던 그녀는 아름다운 초록의 매생이였다.

온실 안의 꽃보다 들꽃이 더 향기로운 것은 눈보라와 비바람을 겪어 왔기 때문이리라. 사람도 마찬가지다. 온실의 꽃처럼 아무런 고생도 하지 않은 사람은 향기가 없다. 그러나 절박한 삶을 살아온 사람에게는 들꽃 같은 향기가 은은히 풍겨져 나오는 것이다. 그녀에게는 언제나 들꽃 향내가 난다. 해국 같은 향내를 풍기는 그녀가 오늘따라 간절하게 생각나는 것은 어떤 이유일까. 그녀가 남도의 육자배기 운운하며 보내준 것이 다른 것도 아니고 왜 하필 매생이였는지.

나는 매생이국을 끓여 남편에게 정성스레 내어 놓는다. 남편은 카! 소릴 내며 속이 시원하다고 연신 너스레를 떤다. 그때 열린 창 너머 저쪽에서 언젠가 들었던 남도의 얼큰한 육자배기 한 자락이 흘러나오는 것이었다. "저 건너 갈미봉에 비가 몰려 들어온다. 우장을 두르고 지심 매러 갈거나 진국명산 만장봉에 바람이 분다고 쓰러지며 송죽 같은 굳은 절개 매 맞는다고 훼절할까......." 매생이 같은 그녀가 남도의 푸른 백사장을 휘이휘이 걸어가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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