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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우물 / 류인혜

부흐고비 2020. 4. 6. 17:16

우물 / 류인혜


깊은 우물 속의 물을 길어 올린다.
​ 두레박줄의 길이만큼 한 생각들을 함께 퍼서 담는다. 다시 두레박이 떨어지는 소리와 팔에 감지되는 무게의 느낌으로 빈 두레박을 채워서 물을 길어 올린다. 추상적인 공간에서 한가득 실체가 생겨나 생활을 만들어 간다. 우물을 생각하는 마음은 참으로 낭만스럽다.

물을 청하는 이에게 바가지의 물위에 버들잎을 띄어 주었다는 옛 여인의 지혜와 여유로움이 미소를 짓게 해준다.

또 우물가로 모인 여인네들의 끝없는 호기심과 충동이 흐르는 소문에 생명을 주어 힘차게 뛰어다니도록 만들어 준다. 온 마을이 같은 정서 안에서 생각을 모아서 화합을 이루어 가는 것이다.

우물이 주는 친근감은 그 둥그런 가장자리로 모여드는 사람과 사람들의 연결성 때문이다. 같은 우물물을 먹는다는 것은 한솥밥을 먹는 것과 같은 비중으로 인식되었다. 이웃이 서로 친근하게 지내는 커다란 구심점이었다.

그러나 우물가에 혼자 서게 되면 무척 외로워진다. 어느 곳에서도 처음도 아니고 끝도 아닌 자리에서 맴돌게 되는 허전함으로 두려워진다.

영혼은 인간이 정성껏 파놓은 우물이다.

깊은 땅속 어딘가에서 맑은 물이 솟아나듯이 우리의 영혼도 신비로운 어느 곳에서 아름다운 감성과 지혜로움을 흘러 내주고 있다.

사람의 생활은 갖가지 모양의 두레박으로 그것들을 퍼내어 옮겨 담는 행위이다. 필요한 만큼, 넘치지 않게…. 때로는 두레박이 깨어질 수도 있고 간신히 길어 올린 물이 부족할 수도 있다. 우리 영혼의 우물에 모여드는 일상의 찌꺼기들로 더렵혀지고, 상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훌훌 털어 낼 수 있는 것이 사람의 살아가는 일이 아니겠는가! 온갖 지내온 사연들을 가슴에 품고 도리어 그것이 주는 아픔과 기쁨을 즐기는 것이다. 우물은 이제 내 생활에 필요 없게 된 것이지만 그것을 생각하는 마음은 언제나 설렌다.

우물은 처음 본 것은 일곱 살 때 할아버지 댁으로 가서다.

밤새워 기차를 타고 가서 아침녘에 그곳으로 들어서자 작은 고모님은 나를 우물가로 데리고 가서 세수를 시켜주었다. 물의 차가움과 손길의 간지러움이 내가 우물을 대한 처음 느낌이었다.

그 우물은 무척 깊고 턱이 높아서 매달려 발돋움을 해야만 저 멀리 동그란 거울마냥 물의 윤곽이 잡혔다. 그 속을 향해 소리치면 메아리가 돌아 돌아서 흐릿하게 울려 왔었다. 학교 가기 전 심심하기만 했던 그때의 재미있던 놀이였다.

여러 해 후에 우리 식구들은 집을 새로 지어 살림이 났었다.

아버지 몫의 집이 사변 때 타버렸다는 그 자리에다 기역자 모양의 집을 세웠는데 마당 모서리의 메워진 우물을 다시 팠다. 그 속에서 몇 소쿠리의 사기그릇을 꺼내었다. 피난을 갈 때 묻어두었다는 올망졸망한 그릇들이 얼마나 신기했는지 모른다. 보물을 캐낸 것 마냥 흥분해서 떠들고 다니며 오만가지 상상으로 한동안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런데 그 우물은 언제나 물이 흐려져 있었다. 특히 비가 오면 누런 흙탕물이 넘쳐서 두레박도 필요 없이 바가지로 물을 퍼서 사용할 수 있었다. 우물 본래의 맛과 멋이 모조리 사라진 상황에서 아무 느낌도 없이 그저 망아지처럼 뛰어다니던 시절이었다.

얼마쯤 더 커서는 얼굴이 비칠 만큼 물이 맑고 투명한 우물이 그리워지도록 마음이 조용해 졌다. 그래서 우물 속에 비친 얼굴이 미워지고 가엾어지고 또 밉고 그리워지는 윤동주 님의 <자화상>이란 시를 즐겨 읽었다.

그때 수돗물이 잘 나오지 않는 서울의 변두리에서 살았다. 살던 집의 마당 중앙에 자리 잡고 있던, 빨래만 많이 해도 물이 말라 버리는 감질나고 멋없는 우물을 사용했다. 그래도 그 우물은 이웃 여러 집에서 생광스럽게 애용했다.

어느 날 가까운 산으로 나들이를 갔었다. 산중턱의 오래된 절 부근에서 거울처럼 맑은 물이 손에 잡힐 둣 담긴 우물을 보았다. 우물 속에 푸른 나뭇잎이 가득 담겨, 잎 사이사이로 하늘을 조금씩 내밀면서 조용히 흔들이고 있었다. 느닷없이 뛰어든 얼굴이 그 풍경을 방해하는 것이 미안해서 얼른 고개를 빼고 있다가 슬그머니 눈만 내밀어 훔쳐보고는 얼른 돌아서 버렸다. 그대로 끝인 양 언제나 마음속에 남아있는 우물이 되었다. 짝사랑하던 이를 그리워하듯 가끔 침묵 속에서 흔들리는 영상으로 기억하곤 한다.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수많은 우물을 보았다. 그것이 운치가 있든 없든 우물만 보이면 무조건 반가웠다. 우물에 대한 많은 기억들이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긴긴 여름날 참외나 오이 따위를 우물 속에 던져놓았다가 두레박으로 겨냥을 잘해서 건져 먹던 일은 또 얼마나 재미가 있었던가!

그리고 여러 번 구경했던 우물 치는 작업은 어른들에겐 번거로운 것이었겠지만 나에게 커다란 구경거리이고 즐거움이었다. 언제 없어진지도 모르게 우물 속에 빠져있던 자질구레한 부엌살림들과 여러 가지 물건들, 심지어는 바람에 날아가 잠겨버린 옷가지도 양철통에 담겨 올라왔었다. 그럴 때마다 모두들 탄성을 지르며 웃었는데 할머니께선 누가 빠뜨렸냐고 소리치셨다.

먹을 물을 미리l 큰 그릇마다 길어 두고 소독약을 뿌리고, 우물 주변의 시멘트를 새로 바르는 것으로 일이 끝났었다. 나는 물이 얼마나 다시 고였을까, 들여다보고 싶어서 안달이 났었다. 우물에 관한 많은 기억들은 여러 색깔의 흔적으로 간직되어 있다가 가끔 튀어 올라와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어 준다.

우물은 물이 마르지 않아야 한다.

우리의 영혼도 언제나 마르지 않는 풍성한 깊이와 내용을 간직하면, 마음의 두레박이 한가득 내면을 담아 올릴 때 그 흔들림으로 즐거워지고 생기가 넘치게 되는 것이다.

언젠가 깊은 우물을 만나게 되면 고개를 들이밀고 소리치고 싶다.

그 메아리가 돌아서 한숨을 크게 들이쉴 때쯤, 먼 곳에서 울리는 내 음성을 듣고 아늑한 그리움에 잠길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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