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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사치의 바벨탑 / 전혜린

부흐고비 2020. 4. 28. 09:26

사치의 바벨탑 / 전혜린1


-여성의 가장 큰 본질적 약점은 사치의 광적 추구와 같은 생에 대한 비본연성인 것 같다.

'여자는 전체로 보아서 아직도 하인의 신분에 있다. 그 결과 여성은 자기로서 살려고 하지 않고 남성으로부터 이렇다고 정해진 자기를 인식하고 자기를 선택하도록 된다. 남자의 손에 쥐어진 경제적 특권, 남자의 사회적 가치, 결혼의 명예, 남자에 의존하는 것에서 얻는 효과, 이러한 모든 것이 여자들로 하여금 남자의 마음에 들도록 애쓰고 있다.'

여성에 관해서 말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남성에 대한 여성의 관계에 있어서 언급되어야 한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세계의 어느 나라에서도 여성과 남성 간의 사회적 차이와 대립이 완전히 제거된 곳은 없으며 앞으로도 사회 구조의 전적인 변화가 없는 한은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사회적 지위는 몹시 느린 속도로 향상되어 가는 과정에 있고 아직도 우리는 평균적으로 보아서 여자가 사회에 한 발을 디디고 서기가 마치 미국에서 한 흑인이 그렇게 하려는 경우와 마찬가지로 힘드는 처지에 있다. 그러한 남성과 여성 간의 커다란 차이를 미리 고려하면서만 우리는 여성의 제문제 또는 약점을 파고들어갈 수가 있을 것이다.

여성의 가장 본질적 약점으로 나는 생 전반에 대한 비본연적 태도를 들고 싶다. 자기 자신을 순간순간마다 의식하고 사회와 세계에 대해서 자기를 투기하고 초월하면서 사는 것이 본연적인 생활 태도라면 태반의 여성의 생활은 그와 반대라고 말할 수 있다. 즉 보다 큰, 보다 진실한 문제에 빠져 있고 그 곳에서 아무런 타격도 전율도 반응 없이 흘러가듯이 사는 생활 태도, 말하자면 비진정하고 불성실한 생활 태도가 대부분 여자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남녀를 막론하고 인간이라는 무서운 조건하에 있는 우리가 해야 할 유일의 일은 우리의 삶을 규명하는 것일 것이며 적어도 그러한 근본적인 생활 감정에 지배된 생활이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유일의 진실하고 엄숙한 문제는 회피하고 자그마한 일들, 물진, 사치스런 생활, 남자에게 의존 또는 기계와 같은 나날의 틀 속에 안면하는 의식, 이러한 것들 속에 자기를 소외해 버리는 생활은 허위 위에 서 있는 것이다.

생과 사에 자기를 똑바로 응시하고 산다는 것은 무서운 용기와 신경력을 요한다. 특히 이 사회의 구조와 한국적 풍토 속에서는 너무나 신경이 긴장되는 작업이기는 하다. 그러나 그것 없이는 전생의 의의가 무로 화하는 것이니까 그것을 회피하는 것은 일회적으로 주어진 우리 삶에의 죄인인 것이다.

무엇보다도 자기를 좀 더 응시할 수 있을 것, 자기를 견딜 수 있을 것이 결과적으로는 다 비극인 우리의 생의 소상을 긴박한, 팽팽하게 차 있는 참된 순간으로 지속시키는 방법일 것이다. 우리가 존재에서 외면하고 사실의 세계로만 눈을 향하는 데에 여성에 대한 사회의 비난의 근본 원인이 있다고 본다. 자기 과제를 느끼지 못하는 삶에는 필연적으로 공허가 따르고 따라서 오락의 필요가 생긴다.

최신 유행의 여성들에게 갖는 매력은 거기에 있다. 왜냐하면, 물건을 사는 것--특히 몸에 붙일--은 어느 나라 여성을 막론하고 남자들에게 있어서 바와 필적할 만한 상쾌한 오락인 까닭이다. 가장 유행이고 가장 비싼 물건을 입거나 신을 여자의 얼굴에는 반드시 어떤 빛나는 생기가 떠 있다. 그 순간은 그 여자는 살고 있는 까닭에 자기가 이룰 수 없는 사회 내의 일이나 지위나 가치의 인정을 완전히 보상해 주어서 하고 있다.

사치스러운 복장에 대한 여성의 판타직은 억눌려진 야심 사회 내에서 해당하고 싶은 본질적 욕망과, 자기는 다른 여자와 다르다고 어떤 여자든지 반드시 믿고 있는 오신, 또 누구나 다소 가지고 있는 나르시즘(자기 연애) 등의 혼합물인 것이다.

정말로 수많은 여인은 이 광신의 추구를 위해서는 어떤 희생도 아끼지 않고 있다. 월급의 전액을 차지하는 값의 지갑을 태연히 들고 다니고 연봉에 해당되는 값의 외투도 서슴지 않고 해 입는다. 현실에서는 발견하거나 인정되지 않는 자아의 가치를 이러한 방법으로나마 가상적으로라도 만들어 보려는 것이다.

외투도 신도 곧 닳아 버리는 물건이고 유행도 바뀐다. 즉 가상적 자아의 '바벨탑'은 너무나 빨리 무너지는 것이다. 그러면 또 새로운 투쟁이 시작된다. 이렇게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여성의 물질에 대한 애착은 웃거나 비난하기에는 너무나 어둡고 심각한 근원이 여성의 내재 속에 있는 것이다. 이렇게 비본질적 존재로 여성을 만든 것은 여성의 지능 계수도 생리도 아니고, 다만 사회의 상황인 것으로 사회와 가정은 여성을 가능한 한 비본질적으로 교육하기에 전력을 다해 왔다.

여성의 자주성을 찾으려는 가장 조그만 움직임이나 생각까지도 조소되고 비난받아 왔고 다만 두 사람의 합의에 의해서 공동하게 생활을 건설해 가고 둘이 다 자아의 생장을 지속시켜 가는 공동체라고 보아야 할 결혼을 사회는 여자의 궁극적인 숙명, 여자의 자아 발전의 무덤으로서 또 어떤 절대적인 영광스러운 예속으로서 가르쳐 주어 왔다.

말하자면 비진정하면 할수록 여자다운 여자일 수 있다. 그러한 전통에 닦인 여자도 자연히 그러한 사고방식을 갖게 되었고 그것에서 이익을 끝내어 줄 것까지도 알게 되었다. 즉 자기의 삶 전부를 실존을 스스로 순간마다 결단하고 세계로 향해서 투기하는 생활 대신에 한 남성에게 자신을 꽉 맡겨 버리고 자기는 더 이상 사고할 필요 없이 사소하고 무상하게 흘러가는 일상성과 사실성의 세계에 파묻히는 편이 얼마나 편하고 또 사회에서 잘 받아들여진다는 것을 의식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어느 여자도 그것에 완전히 만족하거나 행복을 느끼지도 않을 것이다. 적어도 그런 생활에는 일순 일순의 팽팽한 충일감과 초월의 느낌이 없을 것이다. 어느 주부든지 어떤 순간에는 반드시 자기를 부조리하게 느낄 것이다. 쌀 씻고 빨래하고 옷 꿰매고, 나날의 무서우리만큼 단조한 반복 속에서 그 여자의 인식은 엷게나마 눈을 뜰 것이다.

이것이 나의 생활인가 하고, 그럴 때 우리는 그 의식의 각성을 소중히 포착해야 한다. 그리고 파고 들어가야 한다. 분명 그것은 나의 생활이 아닌 것이다. 누구냐의 생활에 불과한 것이지 자기를 사물이나 타자의 속에 소외 해 버린 일반적인 아무나의 삶이지 그것은 이 일회적인 나만이 가질 수 있는 삶은 아닌 것이 그것을 의식할 때 우리는 생이 진정한 것이 아니었고 불성실한 것이었음을 알게 된다. 그리고 보다 한 발자국 나와 가까워진다. 자아에 대해서 비로소 눈을 뜬 느낌을 갖게 된다. 무엇보다도 자아에 자기의 감정과 이성과 신경에게 충실한 것, 그것 이외에 우리가 자아에 이를 수 있는 길은 없다. 그것만이 사치, 허위, 소극성, 아첨, 비굴, 수다 등등의 여성에 붙여진 비난의 제 레테르를 벗는 길로 한 걸음 나아가는 길이다. 이 모든 레테르는 남성들의 사회에서 남성에 의해서 붙여진 레테르이다.

그러나 사회 상황의 변화에 의해서 남녀가 정말로 동등한 입장이 되고 여자도 남자와 마찬가지로 세계를 향해서 자신을 초월하는 행위 속에 자기를 찾을 수 있을 때까지 여성은 개인적으로라도 무서운 고독과 절망과 싸우면서 자아를 좇는 길을 걸어가지 않을 수 없으며 현재도 걸어가고 있는 사람이 숨은 곳에 많으리라고 확신한다.

지엽적인 여성의 결점은 모두 이러한 비실존적 생활 태도에서 나온 것이므로 우리는 여성의 결점을 열거하는 것보다도 우선 우리의 존재의 문제를 좀더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즉 여성도 남성과 마찬가지로 사회적. 경제적으로 비의존적으로 투기가 가능해진다면, 아니 한 마디로 여성의 경제적 지위가 남성의 그것과 동등해진다면 여성의 근본 결함인 비진정, 불성실한 생활 태도는 자연 소멸하고 여성도 보다 높은, 보다 참된 과제를 자기의 생활 과제로 삼게 될 것이다.

  1. 전혜린(1934~1965): 수필가. 평남 순천 출생. 독일 뮌헨대 독문과 수료. 여러 대학의 강사를 거쳐 성균관대 교수 역임. 31세로 자살함. 자유로운 정신과 현실 세계와의 치열한 대결 속에 불꽃처럼 살다가 간 지식인이었다. 끈기와 탄력과 집중력을 갖고 생을 긍정했고 생의 완벽성을 구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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