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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수천석두水穿石頭 / 설의식

부흐고비 2020. 5. 10. 22:58

수천석두水穿石頭 / 설의식1


중학 시대의 도화, 습자는 으레 을이었다. 그만큼 나는 그림과 글씨에 재주가 없었다. 재주는 없었으나, 취미는 또 무던하여서 서, 화를 즐겼다. 기능의 부족을 감상으로써 보충하려는 심산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이와 같은 심경으로 그림을 모았다. 원래 힘 부족이라 고급품은 생염도 못 하였고 그저 너저분한 고물상을 뒤졌을 뿐이다. 그나마도 만만한 것은 또 구복을 위해서 팔기도 하였다. 두제의 문구가 남아 있는 현판 중의 하나이니 추사의 글씨다. 이것만은 팔 수가 없어서 서재에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글씨 때문만이 아니라, 그 내력에 있어서 심금에 울리는 귀중한 마디가 있는 까닭이다. 한문이나마 이 글을 쓰는 핑계도 여기에 있다.

수천석두--물이 돌머리를 뚫는다. 이 문구의 출현은 함경도가 본향이 아닐까 싶다. 내 조상과도 관련이 있는 듯싶어서 유다른 감흥을 느끼는 것이다. 이유는? 그 유래를 풀기 위하여 이야기는 옛날로 올라간다.

'문불과장의요, 무불과첨사'--서북인에 대한 이 같은 악정을 뒤집기 위해서 일어선 홍경래란은 누구나 다 아는 이조사상 뚜렷한 자취다. 옛날에는 역적으로 몰았거니와, 오늘에 있어서는 시대적 감각에 피가 통하는 혁명의 선구적 의의를 가지는 것이니 번거롭게 따질 필요도 없겠다.

이 혁명의 풍운아가 동지를 얻으려고 서북을 유력하여 관북에 이르렀다. 함북과 함남 경계선에는 마천령이란 산이 있었다. 그 산상에 지었다고 전하는 시에

'마천령상파운좌, 만학천봉차제조'
마천령 꼭대기에 구름을 헤치고 앉았으니 만학천봉이 차례로 조회한다.

시구에 나타난 그의 심혼에는 이미 제왕적 기백이 보였던 것이다. 그는 무용뿐이 아니라 시문에도 이같이 능숙하여 곳곳에 심회를 남겼던 것이다. 함남의 수부, 함흥에는 반룡산 기슭으로 흐르는 성천강이 있으니 '함흥차사'로 이름 있는 함남의 큰 강이다. 이 반룡산 꼭대기에 앉아서 지은 시--

'산욕도강강두립, 수난천석석두회'
산은 강을 뛰려고 강머리에 섰는데, 물은 돌을 뚫기 어려워 돌머리를 돌더라.

제 1구는 붕정을 달리는 의취가 있으나 제 2구이 '난'가에 이르러 이미 지기가 부족하였다. 이는 실패가 암시된 일종의 언참이기도 하였다. '수난...' 대신에 '수장천석--물이 장차 돌을 뚫으려고...' 이렇게 되었다면--그 같은 시가 튀어나올 수 있도록 그의 저력이 절대하였다면 성공하였을 것이라고 후세의 평은 애달파하는 것이다.

이 사실의 확, 불확은 모르겠다. 그러나 함남 주읍에는 널리 퍼진 전설이니, 관북 지방에서 유배 생활을 겪은 추사는 이 글을 따서 이 글씨를 썼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굴러서 오늘에 내 서재를 단속하고, 그리고 나로 하여금 이 글을 쓰게 한 것이다.

'수천석두'--물이 돌을 뚫는다. 아마 이것은 '불능'에 속할 것이다. 맹자는 '협태산이초북해'를 불능의 일례로 들었다. 난중의 난사를 가리켜 '하늘의 별따기'라고 우리의 속언은 전하여 온다. '수천석두'도 그만 못지않게 지난사요 불능사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일'은 있을 수 없다. 그러나 그와 같은 '말'은 있을 수 있다. 그 같은 '의욕'과, 그 같은 '신념'과, 그 같은 '용기'는 있을 수 있고 또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함동서구, 각축오대주'--이 같은 일이 있을 수 없으나, 이와 같은 노래가 있었기 때문에 중국의 1차 혁명은 '동자군'의 피로써 계승될 수가 있었던 것이다. 의욕이 있어도 되기가 어려운 것이 세상사거든, 하물며 당초부터 의욕도 없음이랴? 가능, 불가능의 수판만 따져 가지고야 어디서 용기가 생길 것이냐?

가능하면 하고 가능치 못하면 그만둔다--이와 같은 심법으로야 무엇이 얻어질 것이냐? 얻어진들 몇 푼짜리가 될 것이냐?

'수천석두!' '수난천석두회'가 아니라 '수장천석두회' 그렇다! 의욕과, 신념과, 용기를 가지자. 희망으로 맞아야 할 신춘에 이와 같은 희망을 가지자.

'수천석두'의 희망을 가지자. 얼마나 어려운 일인고! 그러나 또 얼마나 보람 있는 일일 것인고! '수천석두!' 아침저녁으로 이것을 바라보는 나는 저절로 젊어지는 것이다. 늙어질 수가 없는 것이다.

  1. 설의식(1900~1954): 평론가, 언론인. 호는 소오. 함남 출생. 일본 니혼 대학 사학과 졸업. 동아일보 편집국장, 부사장, 새한 민보 사장 역임. '일장기 말소 사건' 당시의 동아일보 편집국장이었던 설의식은 민족주의자였으며 그의 날카로운 비평문 속에는 민족주의적인 사관과 지사풍의 자세가 담겨 있다. 그의 필치에는 독자들의 마음을 격동시키며 청신하게 각성시켜 주는 매력이 있다. 사물을 관조하되 근원으로부터 꿰뚫는 눈이 있었으며 거기에 유머와 위트까지 곁들여 그를 뛰어난 에세이스트로 빛나게 하였다. 수필집으로 "해방 이전", "화동 시대" 등이 있으며 '유관순 추념문'이 유명하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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