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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지성의 어제와 오늘 / 송건호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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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지식 사회에서 그들의 지성을 사적으로 고찰하면 크게 보아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할 수 있다. 전 단계는 방향지,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 이념형 지성의 단계이고, 후단계는 사실지, 바꾸어 말하면 기능형지성이 지배하는 사회였다.

지성은 넓은 의미에서 감정이나 의지 같은 인식의 활동에 대해 지각의 작용을 의미하며 이런 경우에는 사물을 지각하는 최초의 출발점이 되는 감각도 포함되나, 일반적으로 지성이라 할 때에는 감각으로 얻은 사물을 재료로 사고하고 추상적인 개념으로서 지식을 정리하는 사고 작용을 하는 의식 활동을 뜻한다. 이런 경우에는 대체로 감각과 구별되는 오성이나 이성 같은 작용과 동일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좀더 소상히 한국의 지성사를 분석하면 더 많은 몇 개 단계로 구분할 수도 있겠지만 여기에서는 제목도 '어제와 오늘'로 되어 있으므로 우선 두 단계로 나누어 생각해 보고자 한다.

지성의 소유자들, 환언하면 지식인은 그때그때의 주어진 사회, 즉 시대적 여건에 따라 그 존재가 여러 가지 의미로 등장한다. 이런 관점에서 8.15까지의 한국 지식인을 볼 때 당시의 지식인은 자타가 공인하는 엘리트였다. 사회적으로 우선 그들은 식민지 사회에서 선발된 계층, 즉 지식인이라는 점을 들어야겠고 따라서 민족 해방이라는 민족적 꿈을 위해 무엇인가 선각적 활동을 해야만 하는 과제를 메고 있었다. 일제시대에 대학생 내지 대학 출신 지식인에 대한 사회의 기대가 얼마나 컸었는가를 지금 세대는 상상조차 못 할 것이다.

한편 일제시대의 대학은 철저한 엘리트 양성 기관이었고 학문도 영미 계통 아닌 독일 학문의 영향을 받아 강한 이념 지향적인 성격을 갖고 있었다. 학문이 이념성을 띠고 있다는 것은 학문이 강한 사상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8.15 전까지의 지식인은 이같이 사회적으로는 존경받는 엘리트였고 학문은 이념 지향적인 성향이 강해 대학 출신 지식인들은 너나없이 사회적 민족적 지도자로서의 긍지가 남달리 강했고 그만큼 자존심과 지조가 강했다는 것이 당시의 지식인이 가진 일반적 이미지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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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트로서의 지식인이 가진 이러한 이미지는 8.15 후까지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해방 당시의 이데올로기 과잉 시대에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공과는 별문제로 치고 하여튼 그 시대를 좌우하다시피 했다. 이때의 지식인은 따라서 강한 이념 지향성을 띠고 있었으며 시대 상황이 절박했으니만큼 어느 의미에서 보면 8.15전 이상으로 그러한 성향이 강했다고도 볼 수 있다. 지식인의 이러한 성향은 자유당 치하에서도 큰 변화가 없었다. 이 시기는 엄격히 따져 일종의 과도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그 때까지는 아직도 일제시대의 지적 풍토가 우세했으므로 지성에 어떤 본질적 변화란 없었다.

후진국의 지식인은 일반적으로 선진국의 학문을 받아들이는 속에서 지식인으로서 활동하게 된다. 따라서, 후진국의 지성을 분석할 땐 그들이 어떤 선진국의 학문 내지는 문화의 영향을 받고 있는가, 바꾸어 말해 어떤 선진국의 문화권에 속하느냐가 문제 된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전 단계의 한국은 일본을 중계로 한 독일 문화권에 속해 있었고 후 단계인 지금은, 압도적으로 미국 문화권에 속한다.

우리나라 지식인은 미국 문화권에 들어가면서 지성의 성격이나 사회적 구실이 점차 변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변화를 측면에서 재촉한 것이 대학의 사회적 기능이 달라지게 되었다는 점도 지적해야겠다. 즉, 전에는 대학이 엘리트 양성 기관이라는 성격이 강했으나 지금은 양적으로 대학이 일제시대와 비교가 안 될 만큼 성장했을 뿐만 아니라 질적으로도, 즉 양적 팽창의 필연적 한 결과로 대학이 이미 엘리트 양성 기관으로서가 아니라 지식인의 대량 양성 기관으로 변한 것이다. 지금은 대학 졸업자가 일제시대의 중학 졸업자보다도 양적으로 더욱 흔하게 되었다. 그만큼 대학과 대학인이 대중화되었다는 사실을 지적해야겠다.

대학의 기능에서 지적할 또 하나의 점은 학문이 미국의 일부 영향 아래 전적으로 기능화되었다는 점이다. 대학의 '대중화'와 학문의 '기능화'라는 두 가지 변화는 지식인의 지성에도 결정적 영향을 주어 전단계에 있어서의 지성의 강한 이념 지향성이 기능형 지성으로 질적 변화를 가져온 것이다. 지성이라는 동일한 어휘 밑에 전 단계와 현 단계 사이에는 이미 개념상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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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기능화는 여러 가지 경향에서 발견된다. 지난날 지식인이라고 하면 철학. 문학. 역사. 사상 등 다분히, 문화적, 정신적, 사상적인 즉 추상적 지성의 소유자를 의미했다. 옛날 대학생이 즐겨 철학, 종교, 예술 같은 형이상학적 분야에 관심이 많고 그 방면의 독서를 많이 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그러나 지금 대학생은 이러한 관념적 지성에는 거의 흥미를 기울이지 않는다. 대학생의 공부방을 들여다보면 얼마나 지금 대학생이 순수 교양을 위한 독서의 빈약한가를 발견하게 된다.

이제 학문은 점차 기능화의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 보다 더 실무적이 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의 지식은 사회에 나가서 무엇을 할 수 있는가가 먼저 문제된다. 문학이니 철학이니 하는 순수 문학 또는 인문 과목의 전공은 사회에 나가 가난하게 살기 알맞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학생들의 생각이 이렇게 변한 데에는 오늘의 대학 교육이 기능인의 양성을 주목적으로 삼고 있는 사실하고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대학의 교과 과정을 보면 오늘의 학문이 기능적이며, 따라서 지성이 기능형 지성으로 변하게 된 이유를 발견하게 된다.

지성의 기능화는 현대 사회가 요구하는 시대적 과제라고 해야 할는지 모른다. 한 세대 전처럼 지식이 한낱 관념적 산물에 지나지 않는다면 해마다 템포가 빨라지는 오늘의 과학 기술 시대를 따라가기 어려울 것이며 국제생존 경쟁에 낙후되기 마련일 것이다. 이것은 특히 신생국의 경우 중대 문제이며 신생국일수록 지식의 기능화는 절실한 과제라고 해야 할는지 모른다. 지성의 기능화, 따라서 지성의 효율화가 오늘날처럼 요구되는 시대는 없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지성의 기능화는 이러한 긍정적 구실만 하지 않는다. 기능화란 바꾸어 말해 기술화를 뜻한다. 주어진 문제, 일들을 효율적으로 해결해 나가는 일종의 테크닉학에 불과하다. 주어진 문제, 주어진 일이 과연 옳으냐 그르냐의 가치 판단에는 소홀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기능형 지성의 소유자는 자기의 배운 자 지식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살릴 것이냐에 보다 더 관심을 쏟는다. 그들은 자기의 지식이 옳게 사용되느냐 악용되느냐에 대해서는 그렇게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즉 효용을 보다 생각하며 그 지식의 사용이 사회적으로, 민족적으로, 국가적으로 어떠한 의미가 있으며 과연 바람직한 사용이냐 아니냐에는 그다지 큰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지식의 기능화가 빚는 일종의 불가피한 경향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짓기의 가치를 기능적--즉 효능적 위주로만 생각하다 보면 그러한 지식인은 사회적으로 혹은 정치적으로 모순된 행동을 하면서도 태연자약 아무런 부조리도 느끼지 않으며 따라서 고민도 수치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가령 오늘은 A를 위해 활약하다가도, 기회가 허용만 되면 A와 견해를 달리하는, 심한 경우 적대적이라고까지 할 수 있는 B를 위해서라도 가진 바 지식을 동원, 봉사를 하는 예를 볼 수 있다.

지성이 이념성을 겸하지 못하고 기능화가 지나치다 보면 효용성이 문제이지 지성의 일관성, 바꾸어 말해 지식인의 지조 같은 것은 그다지 문제되지 않는다. 기능적 지성의 소유자 중에는 일반적으로 그의 사회생활에 일관성이 부족하고 효율성만을 찾아 해바라기와 같은 생활을 하는 사례를 흔히 볼 수 있다. 일찍 '근대화' 과정을 거쳐 휴머니즘이나 개인주의가 발달하고 따라서 자의식, 주체 의식이 강한 서구 사회에서는 지성이 기능화되어도 뚜렷한 자아 의식으로 '해바라기'식 처세를 보기 힘드나, 자아의식이 아직 약한 후진 사회에서는 지서의 지나친 기능화가 서구 사회에서 보기 어려운 여러 가지 부작용을 일으키기 쉽다. 한때 존경의 대상이 된 바 있는 지식인이, 일부이기는 하나, 오늘날 멸시와 조소의 대상이 되고 있음은 개탄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최근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높아지고 새삼스러우리만큼 민족의 주체성이 주로 사학계를 중심으로 의식되고 제창되어 지석의 지나친 서구적 기능화에 대해서도 반성의 경향이 일부 나타나고 있음은 경하할 일이다.

전통 문화에 대한 관심이라고 무조건 바람직하게 받아들일 수는 없겠지만 문화나 지성을 한낱 기능적 의식 활동으로만 받아들이는 서구의 일부 지적 풍토에 도전, 이념 성향을 강하게 띠고 나타났음은 주목할 만하다 하겠다.

본래 가장 바람직한 지성이란 물론 기능주의에 치우쳐서도 또 이념주의에만 치우쳐서도 안 된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다. 오늘의 한국 사회의 지성은 이와 같이 지나친 기능화와 이것에 도전한 새로운 이념형 지성 간의 일종의 갈등 현상의 축도라고 보아 틀림없을 것이다. 따라서 지식인들은 이 같은 한국 지성의 현황을 정확히 파악하고 민족적 자각을 더욱 높여 신생국의 바람직한 지성이란 진정 무엇인가를 탐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1. 송건호(1927~2001): 평론가. 충북 옥천 출생. 서울대 법대 졸업. 한국 일보, 경향신문, 조선일보, 동아일보의 논설위원과 경향신문. 동아일보의 편집국장을 역임. 저서에 "민족 지성의 탐구" "한국 민족주의의 탐구" 등이 있다. 역사적 안목의 비판이 실린 많은 평론. 에세이를 발표했으며 한국 지성의 현실과 문제를 일깨우는 인물로 지목되고 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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