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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백자 이제 / 김상옥

부흐고비 2020. 5. 28. 03:36

학이 받쳐 든 술잔
여기 술잔이 하나 있다. 그러나, 이 술잔은 적어도 백유여 년을 창공에 높이 떠 물 흐르듯 흐르고 있는 것이다. 아니, 언제까지나 떠서 흐르고 있을 것이다.

참으로 희한한 일이다. 정말 술잔이 창공에 떠서 물 흐르듯 흐를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렇게 떠 있는 바에야 어찌하랴. 일찍이 이 땅에 한 무명 도공이 있어, 그 도공의 슬기가 능히 이러한 이적을 나타낸 것이다. 그리하여 지금도 내 눈앞에 선연히 보여 주고 있는 것이다.

이 술잔은 정작 무엇으로 만들어졌을까? 이는 그 무명 도공이 나고 살고 또 죽고, 그리고 죽어서 묻혀 있을 그 어느 외딴 산골짜기의 흙임에 틀림없다. 종생토록 고된 노역으로만 다루어진, 그 곰의 발같이 생긴 무디고 억센 손, 그 손으로 이 흙을 빚어 구워 낸 것이 바로 이 백옥보다 흰 술잔이다. 아니, 차라리 희다 못해 눈이 시리도록 연푸른 술잔이다.

이러한 도자기의 빛을 애도가들은 영청이라 일컫기도 한다. 과연 그냥 희거나 그냥 푸른빛이 아니라, 오직 푸르름의 잠영, 푸르름의 그리메가 다시 그늘져 비쳐지는 빛이다!

이렇게 희고 푸른 영청 빛을 살리자면 어떻게 하랴? 그것은 파란 하늘빛이 노상 서리고 배어 있을 저 동방의 서조, 학의 날개를 새길 수밖엔 없다. 드디어 도공은, 아니 그 이름 없는 명장은 잔받침에 두 마리 학을 새겼다.

목과 부리는 입체적인 도법, 날개는 음양각에 투각까지 겸했다. 그 솜씨도 자못 빼어나 학과 같이 청수하다. 암놈은 목을 휘어 수놈의 다리 위에 얹고, 수놈은 또 암놈의 뻗은 다리 위에 그렇게 서로 목을 휘었다.

아예 인위란 모르고 오히려 한 자연으로 살아 온 도공, 그는 그가 태어난 골짜기의 흙을 파서 그 골짜기의 물로 빚고, 그 골짜기의 나무를 찍어 구워 낸 것이기에, 정녕 미도 미한 줄 모를 만큼 그저 그대로 자연스럽다. 그가 언제 미를 배웠으며 또 미를 익혔으랴. 그러나, 어찌 미를 모르고서 이같이 지묘한 의장을 구상해 내었을까? 인색한 일인들은 이를 그냥 '우연의 소산'이라 한다. 설령 우연이라면, 그 우연은 누가 닦고 누가 가꾼 우연이란 말인가?

받침으로 새겨진 학은 또 그냥 있지 않다. 좌우에서 마주 보며 활짝 죽지를 펴고 있다. 그리고 또, 펴고만 있지 않고 저 끝없는 창공을 향하여 하냥 날고 있다. 이렇게 날고 있는 두 마리 학의 날개는 말할 것도 없이 오직 한 개의 술잔을 받쳐 들기 위함이다. 그러기에 이 술잔은, 가령 술상 위에 놓였거나, 또 누가 들어서 뉘게 권작하거나 해도, 이미 학은 받침하고 있는 바에는 분명히 어느 심령의 하늘을 날고 있다 하리라.

예로부터 학은 십장생의 하나, 학이 하늘로부터 술을 실어 온다면, 아니, 어떠한 술이라도 이 잔에 한 번 담기기만 한다면, 그것은 그대로 장수를 축복하는 불로의 선주! 또 하늘로부터 술을 긷는다면, 이 술잔은 그대로 끝없는 설화의 샘을 길어 올리는 선녀들의 두레박! 이미 내게는 이 술잔으로 장수를 빌어 드릴 어버이도 없고, 나 또한 일적불음이라 대작할 친구도 없다. 그러면서 연전에 이것을 사서 내내 수장하고 있다.

문갑 위에 놓인 이 술잔은 이제 술을 마시는 연모가 아니다. 갈수록 속진에 물들어 가는 마음, 이제 그런 마음을 세례하는 하나의 조촐한 정기이다.

알같이 생긴 연적
조선 시대 자기 중에 그 생김새의 종류가 많기로는 아마 연적을 두고 달리 당할 것이 없을 것이다. 사각형, 육각형, 팔각형, 원형, 그 둥근 가운데도 떡 모양이 있고, 또 중심이 뚫린 환형, 곧 또아리 모양이 있다. 물형으론 복숭아 모양, 고기 모양, 새 모양, 두꺼비 모양, 그 밖에도 지붕 모양, 초롱 모양, 부채 모양, 무릎 모양 등, 별의별 것이 다 있다.

골동을 수집함에 있어서도 벽이 있어, 어느 분은 병만을 모으고, 어느 분은 사발이나 대적 같은 주방 그릇들을 모으고, 또 어느 분은 문방구, 그 문방구 중에도 필통이나 연적만을 따로 모으는 기호가들이 더러 있다.

내게도 네모꼴에 청화로 보상화문을 그린 것이 하나 있고, 원형에 호접 한 쌍을 역시 청화로 그린 것이 있다. 이들 둘이 다 연대도 얕고, 그나마 네모 꼴은 입이 깨어져 도무지 실용으론 쓸모가 없다. 그래서 이미 한쪽에 밀쳐 두었다가, 마침내 조그만, 신라의 도금불 하나를 구해서 그 위에 올려놓았더니 아주 안성맞춤 잘 어울린다.

이제는 그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연적이 불상 받침으로서 더욱 값진 구실을 하게 되었다. 신라의 쇠붙이와 조선 시대의 질그릇! 이것이 천여 년을 격한 오늘, 외로운 문인의 서실에 와서 그 연분의 기나긴 실끝이 이토록 맺어질 줄이야! 이리하여 이 신라불은 조선조의 꽃무늬를 깔고 나의 방 안을 항시 지켜 주고 있는 것이다.

호접 무늬 있는 것은 빛깔은 그리 좋지 않지만, 금 간 데 하나 없이 완전하다. 이것은 몇 해 전 어느 골동 가게에서 거저 얻은 것인데, 노상 책상에 놓였다가 벼루에 물방울을 떨구는 제 본디의 타고난 구실을 아직도 그냥 되풀이하고 있다.

요 며칠 전, 어느 고물가게를 지나다가 나는 또 담청을 곁들인 무릎 모양의 백자 연적을 하나 샀다. 그러나 이도 입이 깨어졌다. 이것을 때우려는데 그 조그마한 입을 때우는 품삯이 이 몸뚱이 전체를 산 값보다 더하다.

얼른 생각하면 어리석은 일이라 하겠다. 그러나 사람도 만약 입이 없고 몸만 있다면 폐물이 되고 말 것이니, 연적 또한 이와 마찬가지리라. 그러나 때우는 데는 먼저 몸에 밴 때를 뽑아야 한다 하기에, 때를 뽑으려고 탈지면에 과산화수소를 묻혀 환부를 온통 싸 두었었다. 과산화수소는 환부를 소독하는 약이지만, 자기의 상처에서 때를 뽑는 데도 그만이다. 나의 이러한 거동을 보고 있던 아내와 아이들은 킥킥거리고 웃는다. 꼬마놈은 방 안에서 병원 냄새가 난다고 야단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탈지면을 들어 보고 마음을 죄어도 때는 좀처럼 빠지지 않더니 하루는 거짓말같이 말갛게 때가 빠졌다. 이것을 맑은 물에 헹구어 내어 화대로 쓰는 소반 위에 올려놓았었다. 소반의 검은 칠 빛과 이 담백의 연적 빛이 서로 대조되어 더욱 희고 더욱 검게 보인다. 더구나 형광등 불빛 아래 이 볼록한 무릎 모양의 연적을 보고 있노라면, 홀연히 어느 끝없는 환각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윽고 곁에 앉았던 딸애가,
'사람의 발자국이 아직 한 번도 닿지 아니한 어느 먼 심산유곡, 그 깊숙한 숲 속에 이름 모를 백조가 있어, 그가 품었다가 놓아두고 간 신비한 알과 같다.'고 하며, 제법 그럴싸한 환상의 날개를 펼쳐, 그 비경에 혼자 찾아든 양 조용히 경이의 표정으로 눈을 깜박거렸다. 아내는 독백으로 그 아버지에 그 딸이라 뇌며 혀를 차면서도, 한편으론 딸의 환상에 또한 딸애처럼 경이의 눈빛으로 못내 흐뭇해했다.

사실, 이 연적은 구만리장천을 난다는 저 대붕의 알은 아니라 해도, 거위나 백조의 알보다는 조금 크고, 타조의 알보다는 약간 작은 것이다. 눈도 코도 없이 다만 물을 머금고 물을 배앝는 두 개의 구멍이 있을 뿐, 이 수수께끼 같은 단순한 형태, 그러나 이는 다름 아닌 지난날의 어느 도공이 그 천명에 순종하던 마음을 태반으로 하여 낳은 한 개 무념의 알, 백자 연적일 따름이다.



金相沃(1920~2004): 시조 시인. 호는 초정. 경남 충무 출생. 학교 교육은 별로 받지 않았고 인쇄소 문선공 등으로 소년기를 보냄. 광복 후 부산 등지에서 교사 생활을 하였으며 상경하여 표구사 아자방을 경영하기도 하였음. 16세 때에 시조 "청자부"로 가람 이병기를 놀라게 한 바 있으며 한국 현대 시조를 꽃피운 공로자 중의 하나로 "백모란" "이조의 흙" 등 많은 시조 작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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