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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침묵의 언어 / 김규련

부흐고비 2020. 7. 8. 23:24

돌을 벗 삼아 곁에 두고 묵묵히 앉아 있다. 망중한(忙中閑)이라 할까. 때로 이러한 한적한 시간이 가물거리는 인간의 심혼에 생명의 불길을 당겨 줄지도 모른다. 마침 권솔은 모두 외출하고 빈집에 혼자 있다. 창 밖에는 신록의 물결이 연신 너울거리고 있다.

한동안 버려뒀던 수석이란 이름의 돌들이 저마다 몸짓을 하며 가슴으로 다가온다. 돌에도 정이 오가는 것일까. 하나하나 먼지를 닦고 손질을 해본다. 모두가 한결같이 돋보인다. 10여 점 되는 돌들이 그렇게도 모두가 개성이 뚜렷할까. 질감이 다른가 하면 그 형태며 색감이 다르고, 선과 굴곡이 서로 상이한가 하면 균형이며 조화며 규모가 또한 다르다. 어찌 그뿐이랴. 오랜 수마(水磨)와 풍화작용에서 얻은 돌갗의 세련미며 모양새의 추상미는 더더구나 다르다.

수석인들은 돌을 보고 산수경석, 폭포석, 평원석, 물형석, 무늬석, 호수석, 괴석 등 온갖 이름을 붙인다고 한다. 하나 나는 아직 돌밭에서 수석을 캐어 내고 이름을 붙여 부를 만큼 전문적인 식견은 없다. 그저 오가다 문득 마음에 들고 연이 닿아 한 점씩 모아왔을 뿐이다. 폭포석 두 점과 경석 한 점에는 정이 더욱 간절하다. 지난날 잠시 영양(英陽)땅에 머물렀을 때 왕피천(王避川) 상류에서 손수 캐내었기 때문이다.

돌들을 조용히 들여다보면 저마다 감춰 온 비밀 같은 것이 있다. 어떤 것은 불덩이를 식혀 온 기나긴 풍상의 세월이 보이고, 어떤 것은 물밑에서 이뤄 온 꾸준한 퇴적의 흔적이 숨어 있다. 또 어떤 것은 땅속에서 압력과 열에 시달리며 변성해 온 아득한 자취가 남아 있다.

어느덧 한나절이 지났다. 나는 이미 돌을 따라 심산유곡을 소요하고 있는 것일까. 숱한 바위 언덕과 벼랑을 지나고 무수한 골짜기도 통과했다. 험준한 산봉우리를 넘어 지금은 물보라에 옷깃을 적시며 폭포 곁에 서 있다. 그늘진 곳에서 괴석들이 슬금슬금 움직이기 시작한다. 어떤 놈은 멧돼지 같고, 어떤 놈은 공룡 같고, 또 어떤 놈은 주작 같다. 괴물들의 갑작스런 울부짖음에 깜짝 놀라 환상에서 깨어난다.

돌들이 근엄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표정 속에 숨어 있는 많은 의미를 찾아 읽어 본다. 돌에는 무수한 시간의 응결이 있는가 하면 침묵의 미덕이 있다. 부동의 자세가 박혀 있는가 하면 관조의 슬기가 엿보이기도 한다. 돌은 비록 속진 속에 굴러도 탈속의 멋이 있고, 세상사 온갖 잡음에 부딪혀도 흔들림이 없이 그저 태고의 정적이 감돌뿐이다. 돌은 간청해 오는 사람의 인품에 따라 걸맞은 설법을 베풀어 주는지도 모른다.

다시 돌을 하나 응시해 본다. 돌의 시원과 종말을 상상해 본다. 돌들이 숨을 쉬며 생동하고 있는 것 같다. 돌은 지구와 태양계와 은하계며, 온 우주가 내어 뿜는 숨결을 호흡하며, 하나의 큰 생명 속에 살아서 존재하는 것이 아닐까. 돌에 스치는 영겁의 시간과 무한한 공간을 헤아리다 말고 문득 인간사를 생각하면 인간의 영고성쇠와 희비애락은 하찮은 연극같이 느껴지곤 한다.

돌들이 차츰 역광을 받으면서 묘하게도 히죽히죽 웃음을 흘리기 시작한다. 왜 그럴까. 인간 만사가 꿈같고 허깨비 같아서일까. 아니면 거품 같고 그림자 같아서일까. 사람들이 그토록 갈구하는 권세며, 명예며, 재물이며, 지위, 이 모든 가치가 돌 앞에서는 하잘것없는 아침이슬이기 때문일까.

이번에는 돌들이 껄껄 웃어댄다. 인간들의 슬픈 희극이 퍽 재미있는 모양이다. 많은 재물을 쌓아 두고도 음덕 한번 베풀지 못한 채 떠나는 사람, 높은 자리에서 교만하게 굴다가 물러앉았을 때 비로소 벼슬의 허망함을 느끼는 사람, 학문의 연찬보다 신문, 잡지에 이름을 팔기가 더 바쁜 학자라는 사람, 이 안타까운 인간의 몸짓이 우습다는 뜻일까.

무소유를 갈파해서 소유를 성취해 가는 승려, 앓고 있는 이웃을 위해 거리로 뛰쳐나와 자신의 명성 관리에 더 분주한 성직자, 무의(毋意)와 무필(毋必), 무고(毋固)와 무아(毋我)라는 정치 상식에도 익숙지 못한 것 같은 정치인의 작태. 이 또한 돌을 웃기는 모양이다.

돌 언저리에 나의 여러 모습이 언뜻언뜻 명멸하고 있다. 허물어져 가는 나의 육신. 얼룩진 영욕의 흔적과 애환의 자국. 버리지 못한 욕망의 짐. 끊을 수 없는 애착의 사슬. 좌우명이라는 등불을 주렁주렁 달고서도 비틀거리며 걷고 있는 슬픈 나의 자화상. 조금 전 돌들을 껄껄 웃게 한 부끄러운 인간의 모습들이 바로 나의 변신이었던 것을. 심한 자괴를 느끼며 부질없이 떠올렸던 상념들을 지워 나간다.

돌에서는 연신 침묵의 언어가 번져 나오고 있다. 그것들이 어느덧 어두운 나의 영혼의 밤하늘에 별처럼 빛나기 시작한다. 어디서 속삭이듯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다. 분수에 넘치는 말과 글을 삼가라는 뜻 같기도 하고 바보가 되는 공부를 해보라는 말 같기도 하다. 염원과 갈구와 기다림으로 남몰래 가슴을 죄면서도 입으로는 태연히 대우즉대현(大愚則大賢)이니 대우통천(大愚通天)이니 하는 문자를 나는 얼마나 많이 즐겨 써 왔던가.

창 밖에는 땅거미가 깔리고 있다. 오늘따라 왜 자꾸만 흘러 온 삶의 유역이 뒤돌아 보이는 것일까. 기다리고 쟁취하고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허황된 일이었던가. 사랑도 명예도, 귀하다는 모든 것을 자연스레 놓아 보내는 연습도 때로 해봐야 되지 않을까. 독서와 사색으로 머리 속을 채우려고만 하지 말고 머리 속에 들어 있는 것을 하나하나 드러내는 공부도 해야 할 것 같다.

전화벨이 요란하게 들려온다. 홀연히 명상에서 깨어난다. 한갓 돌멩이들이 여전히 내 곁에 뒹굴고 있다. 내일 아침에는 보다 밝은 표정으로 동료들 앞에 서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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