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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년기에 내 시선은 재봉틀에 열중하신 엄마 젖무덤의 흔들림에 멈추곤 했다. 한여름 세모시 적삼을 적시는 엄마의 땀방울보다 젖무덤 사이의 'ㅅ'자를 거꾸로 한 곡선이 내 시선을 끌었던 것일까.

그럴 때면 엄마는 삯바느질 마감으로 분주한 손놀림을 멈추지도 못한 채 물끄러미 서있는 내게 "장승처럼 서 있지 말고 재봉틀 앞에 앉아서 단이나 똑바로 박히게 잡아달라"고 말씀하시곤 하셨다.

어머니는 청상과부가 된 뒤 사십여 년을 살아오셨지만 강골(强骨) 기질로 큰 병은 없으셨다. 그런데 어느 날 환갑잔치를 하느냐 마느냐 하는 중에 왼쪽 가슴에 멍울이 크게 잡힌다며 걱정을 하셨다.

대학병원을 찾은 날 의사는 조직 검사도 할 틈이 없다며 서둘러 제거 수술을 권했다. 나 역시 동의서를 썼다. 이제 어머니의 가슴은 더 이상 훔쳐볼 대상도 아니며 어느 누구도 만지거나 봐줄 대상은 더더욱 아니라는 판단에서였다.

다행히 수술 경과가 좋았다. 책임감을 완수한 아들로서 뿌듯하기까지 했다. 퇴원 후에 나는 어머니의 젖가슴에 대해서 까맣게 잊고 살았다. 가끔 병원에서 예방 차원의 검진 요령 엽서가 날아왔지만, 그 또한 어머니가 혼자 이십여 년을 해결해 오셨다.

어머니는 여름에도 꼭 내의와 겉옷을 갖춰 입으셨다. 어쩌다 옷을 갈아입으실 때면 문을 슬며시 닫았다. 그런 때에는 '연세도 높으신 분이 어지간히 내외하시네' 하면서 혀끝을 차기도 했다. 외아들이지만 어머니의 유방 한쪽이 없다는 것에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채 덤덤하게 살아왔다. 혹여 누가 어머니의 어느 쪽 가슴을 도려냈는지 묻는다해도 기억조차 아리송한 놈이 되는 사이에 나 또한 환갑이 지나갔다.

그런 삶 속에서 어머니는 자주 다니던 대중목욕탕조차 못 가실 정도로 거동이 불편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 오른쪽 팔에 마비가 오고 말았다. 왼손잡이로 간신히 식사를 하던 어느 여름날, 어머니 곁에 서서 반찬을 올려드리다가 나는 기겁을 하고 말았다.

브래지어가 없는 모시적삼 사이로 보이는 오른쪽 젖이 축 처진 것이야 노인이니 그렇다 쳐도, 왼쪽은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는 판자같이 밋밋했고 오히려 안으로 휘어들어간 절벽이었다.

어린 시절 힐긋힐긋 훔쳐본 이후 어머니 젖을 다시 처음 본 그날, 나는 어머니와 도저히 점심을 함께 먹을 수가 없었다. 오랫동안 무심했던 내게 엄청난 자책감이 밀려왔다. '저렇게도 축이 무너진 듯한 빈 가슴에 서늘하고 애잔한 바람은 또 얼마나 불어왔을까.'

혼자 힘으로는 장롱 서랍조차 못 여시게 된 며칠 전, 어머니는 오래된 가방을 꺼내 달라고 하셨다. 아랫단의 핸드백을 꺼내 여니 옛날 돈 몇 장과 우표에다 부적도 나왔다. 그 옛날 지폐가 골동품 가치가 있을 거라며 내게 주셨다.

그런데 그 옆에서 부드럽게 걸려 올라오는 끈이 있었다. 이제는 모두 버릴 것이라며 애써 외면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가슴에 꽂혔다. 못 본 체 한편에 비켜두었다가 그날 밤 나는 몰래 혼자 꺼내 보았다.

그것은 나일론으로 만든 싸구려 브래지어에 빨아서 재활용하는 거즈를 알맞게 접고 또 접어 도톰하게 만든 가짜 브래지어, 속칭 '뽕브라'였다. 돌돌 말면 야구공만 한 그것은 미라에서 꺼낸 것처럼 누런빛에 실밥도 터져 나와 있었다.

어머니의 수제(手製) 뽕브라를 이리저리 만져보는 내 손등 위로 그칠 새 없이 눈물이 떨어졌다. 나는 뽕브라를 움켜쥐고 뼛속까지 눈물이 배어들 만큼 오열했다. 어머니께 살갑게 대해 드리지 못한 세월이 부끄럽고도 한스러웠다.

그것이 A컵인지 C컵인지는 알 바 아니었다. 어머니의 양쪽 유방을 잇는 곡선 가운데의 흰색 리본마저 그동안의 모든 여성성을 죽여 온 상장(喪章)의 머리핀처럼 보였다. 어머니가 단 한 벌의 무릎길이 슈미즈에 손수 만든 뽕브라를 매단 채 가슴 도려낸 상흔을 이십여 년 동안이나 덮어왔던 것을 나는 몰랐던 것이다. 누가 볼세라 혼자 한 땀 한 땀 떠가며 몰래 만든 뭉치를 가슴싸개로 해 오신 어머니의 여름날 외출은 얼마나 더웠을까.

아무리 성(性)이 다른 아들이라 해도 어찌 그토록 무심할 수 있었단 말인가. 그 많은 여성 속옷이 기억형 와이어가 몸매를 잡아준다는 보정형에서 수영복형 뽕브라까지 통신 판매를 하는 세상에 나는 무엇을 보며 살았는가.

수십만 원짜리 고급 상표가 아니더라도, '볼륨 업'까지는 아닐지라도, 그냥 형태만이라도 왼쪽 한편을 채워주는 예쁜 색 브래지어를 주문 제작할 생각을 왜 못했을까. 함께 외출해도 누구의 눈길도 머물지 못하는 무덤덤한 노인이 되어버린 어머니의 가슴이기에 한쪽이 파인들 무슨 걱정이냐고 방치 했던 것은 아닐까.

이제는 홈쇼핑 방송에서 속옷 광고를 하는 러시아계 여인들의 완벽한 유방이 그저 밉다. 죄인이 돼버린 내 시선은 이제는 어떤 여성이라도 그녀의 가슴에 머물지 못한다. 칠십여 년이 되어가는 어머니의 분신 같은 손재봉틀과 내 가슴을 후회로 멍들게 하는 어머니의 수제 뽕브라만 내게 애장품처럼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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