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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배필(配匹) / 목성균

부흐고비 2020. 8. 11. 13:07

강화도 최북단 철산리 뒷산에 있는 180오피는 임진강과 예성강, 한강 하구의 질펀한 해협이 굽어 보이는 돈대 위에 있다. 대원군의 쇄국정책을 위해서 흑색 쾌자를 입고 돼지털 벙거지를 쓴 병졸들이 창을 들고 불란서 함대와 맞서 있었음직한 곳이다. 나는 43년 전, 이곳에서 해병 제1여단 예하의 어느 중대에서 위생병으로 파견 근무를 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서해 낙조만치 아름다운 노을을 나는 그때 이후 보지 못했다.

어느 날 집에서 하서(下書)가 당도했는데, 강원도 귀래라는 곳에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참한 규수가 있어서 네 배필(配匹)로 생각하고 있으니 그리 알라는 내용이었다. 배필이라는 아버님의 굵직한 필적이 젊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평생 같이 뛰게 내 옆에 붙여줄 암말 한 필, 나는 저녁식사 후면 돈대에 앉아서 서해 낙조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참하단 말씀이시지. 꽃처럼 예쁠까, 암말처럼 튼튼할까.’

그러다 노을이 지고 대안의 북괴군 서치라이트가 불을 켜면 놀라서 천막으로 들어갔다. 어느 날은 북괴군의 서치라이트가 켜졌는데도 생각이 깊어서 미처 천막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중대장에게 들켰다.

“뭐해 임마! 형편없이 기압 빠진 위생병아.”

대체로 야전지휘관들은 보병에 비해서 위생병을 경시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중대장의 그런 눈치에 자존심이 상했다.

“무슨 생각이 깊어서 서치라이트 불빛도 의식하지 못하고 앉았어. 빨리 천막으로 돌아 갓!”

그리고 며칠 후 중대장이 불렀다. 그의 천막으로 갔더니 자기 아내가 어린애를 낳는데 영 기운을 못 차리고 미역국도 못 먹는다며, 의무중대에 가서 링거를 구해 다 놓아줄 수 없겠느냐고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지휘관 처지로서 졸병에게 할 수 없는 기압 빠진 부탁이지만, 그때 그의 태도는 중대장이 아니라 딱한 처지의 남편에 불과해 보였다. 나는 중대장이 지휘관의 고압적인 태도를 버리고 기압 빠진 위생병에게 솔직한 부탁을 해준 게 고마워서 선뜻 그런다고 약속했다.

나는 자대(自隊)인 의무중대로 내려갔다. 보급계 선임하사관에게 시집살이 사정하러 친정에 온 딸처럼 파견부대 중대장님 아내의 딱한 사정을 이야기하고, 5프로(링거)를 한 병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임마, 5프로는 사경(死境)의 전우(戰友)에게나 주사하는 군인의 생명 같은 약이야. 어린애 난 중대장 마누라한테 놓는 게 아니야.”

일언지하에 거절을 당했다. 늙은 군인의 완강한 군인정신에 당황해서 나는 하루종일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초조하게 의무중대를 빙빙 돌았다. 그러다 선임하사관 앞에 가서 말없이 서 있곤 했다.

빈손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빈손으로 돌아가서 중대장에게 당할지 모르는 보복이 두려워서도, 또 링거를 들고 가서 얻어질 군대생활의 편의를 바라서도 아니었다. 다만 약속 그 자체가 소중했기 때문이었다.

선임하사는 할 수 없는지 친정어머니처럼 생리식염수(sodium chloride)를 두 병 주었다.

“선임하사관님! 이건 소금물 아닙니까?”

“임마, 같은 용도야…….”

5프로나 생리식염수나 다같이 총상(銃傷) 환자의 탈수증세에 놓는 약품이긴 하다. 5프로는 생리식염수에 포도당 5프로가 희석되어 있다는 말로, 약간의 당분이 첨가된 소금물과 그냥 소금물의 차이다.

더 이상 떼를 쓰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싫으면 그만둬, 임마’ 그러면 그나마도 얻어가지고 올 수 없이 되고 마는 것이다.

막차를 타고 부대로 돌아왔다. 중대장이 노을에 벌겋게 물든 채 돈대에 서 있었다. 나를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 분명하다. 링거라고 할 수도, 안 할 수도 없는 내 실정이 마음을 무겁게 했으나 중대장님이 링거병과 똑같은 소금물 병을 보고 반색을 하는 바람에 마음을 놓았다.

다음 날 아침을 먹고 나자 중대장님은 떠밀듯 나를 철산리 동네로 내려보냈다.

중대장은 어느 농가의 문간방을 얻어서 살림을 하고 있었다. 산모가 핼쑥한 얼굴로 누워 있다가 부스스 일어나서 나를 맞이했다. 방 안 가득한 비릿한 냄새, 아기 냄새인지 아기 엄마 냄새인지 모르지만 내 정신을 몽롱하게 했다. 생전 처음 맡아보는 냄새였다. 처음이 아닐지 모른다. 어머니가 막내동생을 났을 때 내가 새벽에 읍내에 가서 미역을 사왔으니까, 그때도 맡은 냄새일 것이다. 그러나 기억조차 없다. 그때 내 나이 열다섯에 불과했으니까 그 냄새를 의식하지 못했을 수도 있다.

나는 중대장 사모님을 눕혀놓고 주사를 놓았다. 왜 그리 떨렸을까. 핏기없는 하얀 산모의 팔뚝에서 떨리는 손으로 혈관을 찾아 주사바늘을 꼽는 일이, 숙달된 위생병의 평소 솜씨와 달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병사의 팔뚝에 주사바늘을 꽂는 것과는 다른 일이었다. 팔이 너무 투명하고 맑아서 그랬을까, 혈관이 파랗게 비치는데도 불구하고 주사바늘을 혈관에 바르게 꽂느라고 진땀을 흘렸다. 떨리는 손으로 주사바늘을 뺐다 꽂았다 몇 번을 거듭했다.

못미더운 수병의 주사 솜씨를 상 한 번 찡그리지 않고 정온(靜穩)하게 견뎌준 중대장 사모님. 나는 지금도 그녀의 교양을 존경해 마지않는다.

만약 그때 그녀가 불안하거나 불쾌한 표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 보였다면 나는 주사 놓기가 오히려 더 수월했을지는 모르지만, 그러면 그녀의 모습이 아름다운 기억으로 남아 있을 리도 없고, 내가 지킨 약속 또한 그리 소중하게 기억될 리도 없다.

오전에 한 병, 오후에 한 병 소금물 주사를 맞은 중대장 사모님은 딴사람처럼 생기가 돌았다. 굳이 저녁밥까지 해줘서 먹고 왔다. 나는 밥을 먹고, 중대장 사모님은 미역국을 먹고, 우리는 오누이처럼 겸상을 해서 먹었다. 비릿한 냄새 가득한 산모의 방에서 산모가 해준 밥을 마주 앉아 먹는 황홀한 영광 때문인지 밥맛도 몰랐다.

“위생병님, 애인 보고 싶으시지요. 집에 한 번 다녀오세요.”

“애인 없습니다.”

그러면서 아버님이 의중에 두신 내 배필, 전주 이씨 성을 가진 참한 규수를 생각했다. 밥을 먹고 서둘러 오피로 돌아오며 중대장님은 좋은 배필을 두었다고 생각했다.

나는 막 해가 진 바다를 향해서 돈대에 주저앉았다. 흑장미 빛 같은 노을이 해협을 물들이고 있었다. 비로소 손에 든 책표지를 보았다. 『청록집(靑鹿集)』이었다. 책표지가 손때에 곱게 절어 있었다.

“위생병님, 고마워요. 뭐 드릴 게 없어요.”

중대장 댁을 나오는데 사모님이 따라 나와서 내 손에 쥐어준 책이었다. 손을 잡힌 채 바라본 중대장 사모님의 맑고 투명한 얼굴이 처연하리만치 고왔다. 나는 지금도 산모의 얼굴이 배필의 얼굴이라고 생각한다.

대안의 북괴군 서치라이트 섬광이 환도(還刀)를 휘두르듯 흑장미 빛 노을을 가르며 지나가고 땅거미가 졌다. 나는 벌떡 일어나서 천막으로 들어갔다.

며칠 후 중대장님이 특별 휴가를 보내 주어서 전주 이씨 성을 쓰는 참한 규수와 맞선을 보고 왔다. 중대장 사모님의 부탁에 의한 배려였을 것 같아서 찾아뵙고 인사를 드렸다. 그리고 배필을 선본 이야기를 했다. 사모님이 반갑게 손을 잡고 웃어주었다.

노을을 보면 60년대 초, 강화도 철산리 뒷산 돈대에 앉아 있던 상등 수병이 보인다. 파란만장한 해협을 물들이며 지던 장엄한 노을이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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