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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뻐꾹새 울다 / 우희정

부흐고비 2020. 8. 19. 11:16

뻐꾹새가 한나절을 피를 토하듯 운다. 뻐꾹 뻑뻐국 뻐꾹, 그 소리가 온 산을 채우고도 남아 메아리를 만든다.

‘이리 오너라, 네 어미가 여기 있다.’

간절함이 뼈에 사무친다. 어쩔 수 없이 남의 손에 키운 자식이지만 어미 품으로 찾아오라고 애달피 운다.

요사이 나는 햇살이 아까워 주말이면 남의 땅 한 귀퉁이에 씨를 묻고 풀을 매는 재미를 붙였다. 기승을 떨치는 잡초와 실랑이를 하다보면 세상사 복잡한 일이 모두 부질없이 여겨진다. 덥다 싶으면 한줄기 바람이 지나가고, 심심하다 싶으면 새들이 제각각의 노래로 귀를 즐겁게 한다.

오늘도 밭고랑에 앉아 마음밭에 무성히 돋은 잡초를 뽑듯 김을 매는데 뻐꾸기소리가 가슴을 쳤다. 심상치 않은 울음이었다.

어렸을 적 이모와 뙈기밭에 콩잎을 따러 갈 때면 들리던 뻐꾸기소리도 왠지 모르게 어린 가슴을 울렸지만 오늘은 더 유난스럽다. 아닐 것이다. 이제야 그 울음이 새끼를 부르는 애끊는 어미의 언어임을 눈치 챈 내 심장이 먼저 알아들은 것 같다.

몇 해 전 텔레비전에서 뻐꾸기가 개개비의 둥지에 알을 낳는 장면을 방영하였다. 알에서 갓 깬 뻐꾸기새끼도 본능적인 몸짓으로 아직 부화되지 못한 진짜 주인의 알을 밖으로 밀쳐내는 것이었다. 그 이후 뻐꾸기는 나쁜 새라고 낙인이 찍혀버렸다.

하지만 자연의 이치를 인간의 눈으로 평가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몸이 길고 다리가 짧은 뻐꾸기는 구조적으로 알을 품을 수 없단다. 부리조차 남달라 둥우리를 틀지도 못한다니 자신의 알을 남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숙명이다. 그러니 어찌 그를 탓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한때 자기 자식을 거두지 못하는 어미를 나무랐다. 상황이 어떻든 제 속으로 낳은 아이를 스스로 책임져야 할 것이 아니냐고 핏대를 세웠다. 어쩔 수 없이 떼어놓고 피눈물로 지새우는 그 심정을 헤아리려 하지 않았다. 누군들 자식을 제 손으로 키우고 싶지 않은 이가 있으랴. 나의 잣대로 남의 인생을 잴 일이 아님을 그때는 미처 깨닫지 못한 탓이다.

알고 보면 뻐꾹새는 그토록 염치가 없지 않다. 그는 자연의 순환에 꼭 필요한 일을 한다. 개개비 등 번식력이 강한 새의 둥지에만 알을 맡김으로써 일방적으로 한 종류가 불어나는 것을 조절한단다. 그러니 조물주의 깊은 뜻을 인간의 관점으로 판단해 미워하고 분개할 일이 아닌 것이다. 도리어 새끼가 어미를 찾아오지 못할까봐 노심초사하며 피를 토하듯 울어대는 그 조바심에 동정을 해야 좋으리.

출생한 지 사흘 만에 부모에게 버림받은 한 목숨이 청년으로 성장하였다. 그의 이름은 드니 성호. 첫돌도 안 되어 ‘좋아하는 것은 우유, 신체적 특징은 없다’는 문서 한 장으로 벨기에의 가정에 입양된 그가 31살 늠름한 장부의 모습으로 조국을 찾아 왔다. 자신을 버린 어머니에 대한 분노로 한때 방황하기도 했다는 그. 하지만 이제는 유럽 음악계의 떠오르는 별이 되어 재외동포재단의 초청을 받아 당당히 기타를 메고 온 것이다. 그리고는 자신의 생모를 찾고 있다.

“엄마, 제 노래가 들리세요?”

뿌리치려고 해도 뿌리칠 수 없는 핏줄의 당김에 끌려 북극의 동토를 건너온 그, 양부모의 사랑만으로는 채워지지 않는 허기를 채우기 위해 모국을 찾은 그, 자신을 버린 제 나라를 찾아온 그도 혹시 뻐꾹새 울음소리를 들었던 게 아닐까.

뻐꾸기어미를 찾아 태평양을 건너온 또 한 사람이 있다. 엊그제 아메리칸발레시어터의 단원으로 한국을 찾은 어여쁜 처녀의 한마디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뭉클하게 했다.

“엄마, 어디 계세요… 저랑 닮았나요?”

피를 속일 수 없듯 돌솥비빔밥과 김치를 좋아한다는 그녀도 외국인 가정에 입양되어 자랐다. 좌절했을 때 용기를 불어넣어준 양부모에게 감사하는 그녀지만 생모에 대한 간절함은 외면할 수 없는 사실이다.

숨기고 싶은 자신의 과거가 알려질까, 죄책감 등 이런저런 이유로 울음을 멈추어버린 뻐꾸기어미.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운명적으로 남의 둥지에서 자란 새끼들은 입을 모아 그 어미를 향해 나직하게 속삭인다.

“엄마! 보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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