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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집만 세다 / 신재기

부흐고비 2020. 8. 19. 11:19

절벽 앞에 서고 말았다. 만약 한두 걸음만 앞으로 옮기면 수십 길 낭떠러지로 추락하고 만다. 그 뒤는 생각만 해도 아찔했다. 절벽의 높이를 가늠하고 우회할 길을 찾자면 앞으로 더 나아가야 하는데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 낭패감과 당혹스러움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오직 물러나 되돌아가는 방법밖에 없었다. 앞으로 더 가지 말라는 신호가 몇 번이나 있었다. 아내와 딸이 뭔가 낌새가 이상하다고 가볍게 말했다. 그때마다 너무 작은 데까지 쓸데없는 신경을 쓴다고 핀잔을 주었다.

봄기운이 대지에 퍼지기 시작하는 2월 말 어느 날 세 사람이 동네 인접한 곳으로 산행을 나섰다. 목표 지점을 좀 길게 잡았다. 중간에 한 번 쉬었으나 두 시간 정도 산길을 걸으니 얼마간 힘들기도 했다. 거의 목적지 가까이에 왔을 무렵이었다. 등산로 한가운데 소나무 등걸이 가로로 걸쳐 있었다. 몇 번이나 그랬다. 앞서가면서 나무가 그냥 쓰러져 그렇게 되었나 보다 하며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런데 아내와 딸은 같은 상황이 반복되는 것을 보니 앞으로 더 가지 말라는 신호인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무시했다. 결국 벼랑 끝에 서고 말았다. 도로를 낸다고 산을 절개해 절벽이 생긴 것이다. 길이 끊긴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표시하지 않고 나무 몇 그루를 베어 몇 군데 걸쳐 놓았던 모양이다. 공사 담당자는 그 정도로 충분하다고 생각했고 그것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해 생긴 일이다.

난감한 상황을 별것 아닌 듯이 툭툭 털어버릴 수 있는 묘책이 없었다. 앞으로 갈 수도 없고, 둘러 갈 길도 보이지 않았다. 결국 눈앞에 저만치 목적지를 두고 발길을 되돌릴 수밖에 없었다. 아내와 딸아이의 조언과 경고를 무시하고 내 뜻대로 밀어붙였던 결과가 그 지경이 되고 말았다. 내 오판이 분명해진 터라 변명의 틈도 없었다. 마치 무능한 가장이 된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두 사람에게 미안하고 민망했다. 그런데도 입 밖으로 뱉은 말은 "미안하다"가 아니었다. "살다 보면 누구나 잘못 판단할 수 있다"라며 구겨진 자존심을 만회하려고 했다. 그리고는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가끔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살아오면서 내 주장을 강하게 내세운 편인지 아니면 남의 이야기나 충고를 귀담아듣는 편인지를 말이다. 경계 분명한 답을 얻지 못했다. 우유부단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결단성이 강한 것도 아닌 듯했다. 이런 생각이 깊어질수록 나 자신이 낯설기까지 했다. 내 유년 시절을 지켜본 한 분뿐인 형수는 과거를 회상하면서 나를 두고 '잔망스러웠다'라고 한다. 어떤 뜻으로 이 말을 사용했는지는 정확하게 모르지만, 짐작건대 '가볍고 예민하고 꾀 많다'라는 뜻이 조금씩 섞인 것 같다. 그런데 육십 대 중반의 지금 나를 두고 어떤 사람은 '공감력이 부족하다'라고 한다. 아내는 가끔 나한테 '이기적이고 냉정하다'라고 말한다. 예민하고, 꾀 많고, 감정이 메마르고, 이기적이라니 말도 안 된다. 나를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이런 평가가 부분적으로 내 단점을 건드려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여기에 나는 절대 동의할 수 없다.

그런데 내 앞을 지나가는 사람이 모두 저쪽에 구름다리를 건너왔다고 한다면, 내가 그 다리를 건너본 적이 없더라도 그곳에 다리가 있는 것은 진실이 아니겠는가? 물론 다른 사람이 말하는 나도 진짜 '나'가 아니고 내가 생각하는 '나'도 진짜가 아닐 수 있다. 불교에서 '무아'라고 하지 않던가. 변하지 않고 고정된 나는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 사람에 대한 평가는 대부분이 특별한 순간 스쳐 가는 것이기에 허상에 불과하다. 하지만 '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떤 모습으로든 나는 존재한다. 그것이 진상이든 허상이든 관계없이,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으면서 나는 존재한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지점에서 사실 나 자신이 두렵다. 남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지금까지 살아온 세월의 부피만을 내세워 나 자신의 관성대로만 판단하는, 꽉 막힌 고집이 겁난다. 이런 고집은 나 자신을 바꾸지 않겠다는 자기 폐쇄이다. 움직이지 않고 변화하지 않는 것은 생명이 다한 것이나 마찬가지이다. 고집은 주체의 확립이기보다는 존재의 소멸에 가깝다. 많이 남지 않은 인생이란 말을 사용할 나이다. 앞으로 "쥐뿔, 가진 것도 없고 머리에 든 것도 없는 주제에 고집만 세다"라는 소리는 듣지 않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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