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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안동 칼국시 / 김원

부흐고비 2020. 9. 24. 14:05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로부터 길들어온 전통 안동칼국시를 어디서 맛볼 수가 있을까.

경북 북부지방 사람들은 칼국수를 굳이 ‘칼국시’ 하고 부른다. 왜 그럴까. 물론 그 지방사투리겠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더 웃기는 사연이 없지 않다.

칼국수는 밀가루로 빚은 것이지만 칼국시는 밀가리로 빚은 것이다. 밀가루는 봉투에 담지만 밀가리는 봉지에 담는다, 봉투는 종이로 만든 것이고 봉지는 신문지로 만든 것이다. 봉투는 풀로 붙이지만 봉지는 밥풀로 붙인다. 밀가루는 가게에서 팔지만 밀가리는 점방에서 판다.

여기서 우리는 안동칼국시가 갖는 그 지방의 고유한 고집을 짐작할만하다. 그쯤 되면 타지방의 국수와 구별되는 고집과 배짱을 가질 만도 하다. 요즘 시쳇말로는 안동칼국시가 차별화로 경쟁력을 갖겠다는 것이다.

이런 칼국시가 서울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70년대의 궁색했던 살림살이와 무관하지 않다. 쌀을 절약하자는 정책과 칼국시맛의 옛 향수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칼국시를 얻어먹자면 밥하기보다 더 번잡하고 정성이 깃든 과정을 보았다. 우선 어머니는 육수를 만든다. 소뼈다귀를 오랫동안 고면 진국이 나오는데, 그것을 식힌 후 기름을 뜨면 국시육수로는 진짜배기다. 하지만 당시 어려웠던 살림살이로 고기뼈 구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다. 대게는 멸치로 감칠맛 나는 국물을 우려내는 경우가 많았다.

안동칼국시에는 양념과 꾸미가 국수 맛을 한 단계 더 높여 놓는다. 이것을 장만하는 데는 손도 많이 가고, 지혜도 요구된다. 아녀자의 요리솜씨가 여기에 필요하다. 계란을 프라이 해서 가늘게 썬 계란지단을 만들고, 호박 채친 것을 장만하고, 그리고 소고기를 가늘게 썬 꾸미를 준비해야 한다. 밀가루 반죽은 약간의 콩가루를 섞어 만든다. 콩의 프로테인 영양가를 섭취하기 위해 고안해 낸 안동부녀자들의 지혜다. 요즘 시중에 떠도는 안동국시는 모두 밀가루로 만든 것뿐이다.

칼로 국수를 썰 때의 묘기는 기가 막힌다. 안채 대청마루에 앉아서 둔탁한 식칼로 써는 모습은 하나의 예술이다. 손놀림도 빠르지만 국시결도 일정한 게 신기하기만 하다. 처음엔 아주 가늘게 썰어낸다. 그것은 할아버지 상에 올리는 ‘고급’국시인 것이고, 다음에 중간치 크기로 썬 것은 아버지 상에 올리는 중급 칼국시다. 나머지는 적당히 뭉텅뭉텅 썰어낸 게 아녀자와 아이들 차례다. 남녀노소가 차별되는 안동 양반의 유교적 음식문화인 셈이다.

안동칼국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다. 양념간장을 만들어야 한다. 파를 굵게 썰고 고춧가루와 마늘을 갈아서 참기름과 섞어 만들어 내 놓으면 일품이다. 밑반찬으로는 김치와 멸치로 절인 정구지가 원래 정 코스이나, 품위 있는 집안에서는 메밀묵 한 접시와 안동 문어도 곁들여 내놓는다.

동해안에서 잡아 온 문어를 굳이 ‘안동문어’라고 부르는 것은 산 놈을 그대로 내놓는 게 아니고 안동지방 특유의 요리를 해서 내놓기 때문이다. 마치 동해안의 산 고등어가 안동에 와서 안동 간고등어로 둔갑하는 것처럼 부가가치를 높여 지방 브랜드화 한 것이다. 옛 안동 선비들이 세상물정모르고 과거공부만 하는 줄 알았더니 부가가치를 높이는 상술에도 한수 위로 보인다.

울진 앞바다에서 잡은 게를 영덕에서 팔다 보니 영덕대게가 되어 있는데, 이 때문에 울진과 영덕간에는 옥신각신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영문인지 동해안 지방에서는 아무도 안동 간고등어와 안동문어에 대해서 시비를 거는 이가 없다. 아마도 안동 양반들의 텃세가 그쪽까지 미친 모양이다. 하기야 그 당시 그쪽 사람들이 안동의 양반과 혼사 맺는 게 꿈이었으니까.

길거리 포장마차에서 내놓는 즉석국수나, 기차역에서 먹는 가락국수와 라면 등에 익숙해진 젊은 세대들을 따라 가다 보니 세월도 변하고 입맛도 변했다. 그래도 간혹 어떤 곳에서는 주방 옆 유리방을 만들어 놓고 할머니가 품위 있게 단정히 앉아서 홍두깨로 안동칼국시를 밀고, 칼로 써는 모습을 재현시켜 놓은 것을 본다. 관광용이거나 홍보용일 것이다. 정작 손님들은 기계로 빼낸 것을 앞에 놓고도 속고 먹는다.

내가 맛본 안동칼국시로는 성북동 국시집, 압구정동 안동국시집, 송파구 예구청 뒤편의 안동국시집 등이 그래도 옛 맛이 살아있는 곳이다. 성북동은 돈을 많이 벌어서 그런지 몰라도 주인은 코빼기도 안 보이고 종업원들만 설치며 서빙하다 보니 손님이 손님대접 받기 어렵다. 사전 예약 없이 허기진 배를 안고 식당을 찾았다가는 허탕 치는 수가 많다.

압구정동의 안동칼국시집은 그래도 일제 때 안동여중을 나온 본토박이 인텔리 할머니가 구석구석을 챙겨주니 맛깔도 유지되고 서비스도 만족할 만하다. 지난 20여년을 생쥐 고방 드나들듯이 부지런히 다녔건만 얼마 전에 가게를 넘기고, 포이동에서 소호정이란 간판을 달고, 인사동에서는 소람이란 이름으로 안동칼국시를 팔고 있다. 거리가 멀어 다닐 수가 없어 포기하고 가까운 곳을 찾아냈다.

송파구 옛 구청 뒷골목에 보일 듯 말듯 한 손바닥만 한 간판이 보인다. 안동칼국시집이다. 규모는 많아야 십여 명의 손님을 받을 수 있는 공간이지만 홀에도 방에도 앉을 수 있게 좌석선택이 가능해서 좋다. 안주인은 경북 예천 분이고, 홀서빙 남편은 경북 봉화분이다. 원래 경북북부지방은 예부터 안동 문화권에 속해 있어서 혼사, 예절, 언어, 제례풍습, 음식문화 등이 같다. 주방을 안주인이 직접 관리하면서 요리를 하다 보니 진짜배기 안동칼국시는 물론이요, 곁들여 나오는 파전, 안동문어, 묵등이 일품이다. 정갈한 정성이 엿보이고 감칠맛 나는 국시가 나로 하여금 어머니의 옛 솜씨를 떠올리게 한다.

어머님이 빚어 주시던 옛 칼국시가 생각나던가, 쌀쌀한 날씨가 옷깃을 스밀 땐 문을 밀치고 예고 없이 들어가 육수로 우려낸 칼국시를 앞에 놓고 소주 한 잔에 문어 한 점 걸치고 나오면 온 세상을 혼자 가진 듯 흐뭇하다. 어머니는 하늘나라에 가셨지만 당신이 남겨 주신 그 맛을 예나 지금이나 그대로 맛볼 수 있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가. 친한 친구 만나면 그곳으로 가서 진짜배기 안동칼국시를 먹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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