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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천상병이라는 풍경 / 김훈

부흐고비 2020. 10. 20. 11:23

​천상병의 마음이나 체취의 조각들에 관하여 말해야 하는 것은 지극한 고통이다. 그의 표정이나 목소리, 그의 어법, 그의 걸음걸이, 그의 웃음, 그의 음색, 그의 밥 먹는 모습, 그의 조는 모습, 그의 집, 그의 음악, 그의 신발, 그의 옷, 그의 얼굴, 그의 눈곱, 그의 입가의 침버캐, 그의 주머니 속의 천 원짜리 두 장, 그의 선글라스에 관하여 말하는 것은 그의 시에 관하여 말하는 것보다 훨씬 고통스럽다.

무구한 것들은 인간의 말에 의하여 훼손되거나 엉터리로 규정되지 않는 지복(至福)을 누릴 권리가 잇을 터인데, 천상병의 웃음소리와 그의 입가의 침버캐와 그의 주머니 속의 천 원짜리 두 장이 그러하다. 그것들이 모두 합쳐져서 이루어지는 천상병은 ‘백치 같은’이라고나 말해야 할 무구함과, 이 세상을 향해 자기 자신을 완벽하게도 열어버리는 놀라운 개방성 위의 자유인이다. 그는 그 개방성과 무구함 위에서 다만 자유롭지만 바라보는 나에게는 그 자유는 멸종위기의 자유이고 멸종 위기의 슬픔이다.

그의 주저앉은 눈꼬리와 비틀린 입술, 똑같은 말을 고래고래 소리 질러 거듭 되풀이되는 그의 어법은, 때로는 고도로 집중된 정신의 힘을 느끼게 하지만 그는 집중과 동시에 그 집중을 완벽하게 풀어헤쳐 버린다. 그의 표정이나 말투뿐만 아니라 그의 어떤 시들 속에서도 집중과 풀어짐은 동시에 발생하고 있다. 나는 그처럼 시와 인간이 일치하는 시인을 본 적이 없다.

내가 일하던 회사에서 천상병 부인 목여사가 경영하는 인사동의 ‘귀천’ 카페까지는 걸어서 10여분쯤 걸린다. 점심이 지난 오후 시간에 그 카페에 가면 거기서 가끔 천상병을 만날 수 있었다. 나는 한 큰 시인의 표정을 곁눈질하려는 천박한 저널리즘의 호기심이나 직업근성으로 그 카페에 가지는 않는다. 별 볼일 없이 다 떨어진 삶이 이다지도 피로할 수가 있을까.

이 피로는 무슨 잘난 지향성을 위한 피로인가- 그런 막막함을 감당하기 어려울 때나 때때로 그 카페에 가서 천상병을 만났다. 아니 다만 그를 쳐다보기만 하고 돌아올 때도 있었다. 천상병의 웃음소리는 늘 지향점조차 불분명한 내 피로를 향해 ‘헤쳐 버려라’고 말하는 듯싶었다.

그의 웃음은 나의 피로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무화(無化)시켜버리는 것이었다. 그는 미리 설정된 아무런 장치가 없이 세상을 바라본다. 그가 그렇게 세상을 바라보는 눈의 꼬리에 한 점의 눈곱이 끼어 있다. 천상병 풍으로 말한다면 천상병에게 그 눈곱의 의미를 물어도 절대로 대답하지 못한다. ‘똥 걸레 같은 지성은 썩어버려도’ 세계와 천상병의 눈 사이에 낀, 이 한 점 섬과도 같은 눈꼽은 어떻게 좀 안될지 모르겠다.(문장 중 인용부분은 그의 시 <한 가지 소원. 중에서>. 세계가 운명적으로 내포하고 있는 울음과 한 생애의 가난에 대하여 그가 얼마나 단말마의 신음과 절규로 대항해왔던 것인가를 나는 안다.

누가 나에게 집을 사주지 않겠는가? 하늘을 우러러 목 터지게 외친다. 들려다오 세계가 끝날 때까지 나는 결혼식을 몇 주 전에 마쳤으니 어찌 이렇게 부르짖지 못하겠는가? 집은 보물이다. 전 세계가 허물어져도 내 집은 남겠다.
-천상병, 「내 집」 중에서

나는 이런 시행들을 자본주의의 논리로도 사회주의 논리로도 해석할 수 없다. 나는 다만 천상병 눈가의 눈곱을 통해서만 이 시에 가까이 갈 수 있다. 그 눈꼽은 무구한 것들의 힘으로 절규하거나 절규 받아야할 대상을 무구한 것들의 힘으로 찍어버린다.

얼마 전에 나는 돈 좀 있어 보이는 한 출판업자의 술값으로 천상병과 함께 향기로운 미녀들이 우글거리는 요정에 간 적이 있었다. 내 운명감정에 따르면 그것은 그에게나 나에게 팔자에 없는 노릇이었다. 요정으로 가는 뒷골목에서 나는 요정과 팔자 사이의 무관계성을 천상병에게 말했다. 그는 무척이나 서운하고 분했던 모양이었다.

“야, 이놈아, 요정이 네 팔자에나 없지 왜 내 팔자에 없겠느냐? 있다! 있다! 있다!”라고 천상병은 요정 입구에서 소리소리 질렀다. 소리치는 그의 입가에 침버캐가 매달려 있었다. 그와 내가 신선로를 사이에 두고 마주 앉았고, 향기로운 두 미희가 우리들 곁에 하나씩 차고 앉았다.

요정이 평생 처음이라고 소리치는 천상병은 그러나 한평생 요정에서 굴러먹은 자들도 감히 넘볼 수 없는 호탕함으로 잘 놀았다. 그는 그의 야윈 어깨를 수그려 머리를 여자에게로 가까이 하고 지극한 정성으로 떨리는 손길을 뻗어 여자의 손을 잡았다. 여자들은 초장부터 천상병의 표정과 체취와 말투에 질려 있었다. 천상병은 침버캐가 매달린 입술을 내밀어 여자의 손등에 입 맞추었다. 그는 경이에 찬 눈으로 여자를 들여다보았고, 그의 삭정이 같은 손을 뻗어 요정 여자의 고데한 머리를 만졌다.

여자는 질겁하면서 엉덩이를 움츠려 물러났다. 천상병도 엉덩이를 움츠려 여자를 따랐다. ‘요놈! 요놈! 요놈! 요 예쁜 놈!’ 천상병은 여자를 들여다보면서, 앙천대소하면서, 그렇게 소리소리 질렀다. ‘요놈! 요놈! 요놈!’ 이, 외마디 비명 세 토막이야말로 아름다운 것들, 또 무구한 것들, 스스로 저 자신일 뿐 다른 아무것도 아닌 것들, 살아서 움직거리는 것들을 향해 내뱉는 천상병의 마지막 절규다. 이 절규 앞에서 요정의 사회경제학과 자본주의의 부도덕은 함께 무너져야 싸리라.

천상병의 ‘요놈! 요놈! 요놈!’은 세상이 앗 할 사이를 주지 않고 세상의 아름다움을 정조준으로 겨누어 그대로 찍어버린다. 그는 술을 마시지 않았다. “나에게 술을 마시게 하려면 내 마누라의 결재를 받아오라. 그러나 맥주 두 잔은 마시겠다. 맥주 두 잔은 이미 결재된 주량이다.”라고 그는 말했다.

지난해 그가 간 질환으로 춘천도립병원에서 입원치료를 받은 후, 그의 부인 목여사가 그의 하루 주량을 맥주 두 잔으로 언도했는데, 그는 단 한 번도 그 언도 량을 위반한 일이 없었다. 술은 나 혼자서 마셨다. 내가 아주 알맞은 취기에 젖어 있을 무렵, 천상병의 ‘요놈! 요놈! 요놈!은 요정의 술판을 완전히 재패하고 있었다. 그는 그 자리에서 또 자신의 선글라스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나로서는 그 이야기를 열 번쯤은 들은 이야기였다.

그러나 천상병에게는 지나간 열 번의 이야기는 늘 무효였으며 그것은 언제나 새로운 이야기였고 나는 앞으로도 열 번 이상이라도 더 그 같은 이야기를 새롭게 경청하지 않으면 안 되리라. 그가 지난 봄날 선글라스를 장만했다. 그를 따르는 한 시 지망생이 사다준 싸구려 선글라스였다. 그 선글라스를 말하는 천상병의 얼굴은 늘 지복, 그것이었다. 여름에 선글라스를 끼어보니까, 머리를 뚫어버릴 것처럼 맹렬하던 그 잔혹한 햇빛이 본 날의 아지랑이처럼 순해지고, 이 세상이 살기에 알맞은 온도와 습도 속에서 부드러워지더라는 것이 그의 행복의 내용이었다. “너도 선글라스 하나 장만해라. 참 좋다. 선글라스 참 좋다! 참 좋다! 참 좋다!” 이것이 언제나 되풀이 되는 그의 선글라스 이야기의 종결구이다. ‘참 좋다’를 세 번 되풀이 할 때 그의 입가에는 ‘요놈!’ 을 세 번 되풀이 할 때처럼 늘 침버캐가 매달려 있었다. 그의 부인 목여사가 함께 있는 자리라면 목여사가 손수건을 꺼내서 어린 아이의 코를 닦아주듯이 그것을 닦아주지만, 부인이 없는 자리에선 부인이 아닌 나는 그의 침버캐를 닦아 줄 수가 없다. 나는 다만 한 장의 휴지를 그의 앞에 내밀 뿐이다. 그러면 그는 또 외친다. ‘괜찮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세상의 사랑에 대한 그의 긍정이 시가 될 수 없는 몇 토막의 외마디 절규로 처리되고 끝나버리는 것은, 진실로 ‘괜찮은’ 일인가. 나는 거기에 대답하지 못한다. 아마도 천상병도, 당신들도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속된 저널리스트의 눈으로 보기에는 이미 돌이키기 어렵게, 한 부분이 망가져 있는, 내 사랑하는 저 시인이 다시 시의 긴장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질문 자체를 거두지 않으면 안 되리라.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 뒷골을 천상병의 천둥 같은 고함이 찍는다.

‘괜찮다! 괜찮다! 다 괜찮다!’ 천상병의 얼굴에서 그의 눈곱과 침버캐는 아름답게도 퍼져 있다. 그것이 그의 운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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