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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구멍 / 엄옥례

by 부흐고비 2020. 11. 9.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솟을대문의 빗장을 푼다. 삐거덕 소리를 내며 대문이 스르르 열린다. 오수에 잠겼던 고택이 기지개를 켜며 낯선 이에게 품을 내어준다.

천하의 길지, 운문산 시루봉 기스락에 자리 잡은 내시 종택이다. 조선 마지막 내시로서 정3품 통정대부를 지낸 김일준의 집이다. 국가 민속 문화재 제245호로 지정되었으며 운림고택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대문에 들어서니 왼쪽 편 큰 사랑채가 안채를 향해 날아갈 듯 서 있다. 대문 맞은편으로는 중 사랑채가 안채를 지키는 호위무사인 것처럼 가로로 앉았다. 아니나 다를까. 중 사랑채 마지막 칸에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유일한 문인 중문을 달았다. 큰 사랑채와 중 사랑채에서 안채로 출입하는 모든 사람을 볼 수 있는 구조다.

내시 고택에 어째서 아녀자들이 기거하는 안채가 있을까. 남성성이 거세된 남자들만 모여 살았던 집 아닌가. 알고 보니 벼슬한 내시들은 부인과 양자를 들여 대대로 가정을 이루며 살았다. 조선 시대 내시는 고환만 잘랐기에 2세를 볼 수 없을 뿐, 부부생활이 가능했다. 남성호르몬이 말라서 음경의 강직도와 지속력이 떨어졌지만 잠자리를 가질 수 있었다.

담 속에 담이 겹으로 둘러진 안채의 풍경이 궁금하여 중문을 기웃거린다. 문턱을 넘으려는 찰나, 중 사랑채를 가린 나무판의 구멍이 눈길을 붙잡는다. 구멍은 그저 둥글기만 한 것이 아니라 심장 모양이다. 아기자기하게 꾸밀 줄 아는 주인의 감각이 돋보인다. 아내를 향한 사랑의 표식인가. 남성성은 잃었지만 마음속에서 피어나는 사랑만은 어쩔 수 없었던가 보다.

구멍은 모두 세 개다. 오른쪽, 정면, 왼쪽을 볼 수 있게 되어있다. 그 구멍을 통해 드나드는 사람을 살폈다는데, 7세 이상 외간 남자의 출입을 막았단다. 사내 노릇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랑채 주인의 초조함과 무력함이 적나라하게 표출된 구멍이다. 여자를 후리지 못하는 남자의 비애가 느껴진다. 아내가 오직 자신만의 여자로 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이야 내시인들 다를까. 극도로 소심한 방법이지만 사달이 날 빌미를 애초에 방지하려고 마련한 창이었다.

안채 마당에는 잡초가 빈틈없이 자리를 잡고 바람이 불자 서로의 몸을 비비댄다. 내시 가에 시집온 안주인의 한을 닮았는가. 풀은 뽑아도 뽑아도 새로 나는 모양새다. 큰 사랑채 앞의 가슬가슬한 모래 마당에 비해 축축한 기운이 발아래 감돈다. 습한 기운에 양팔을 감싸며 안채를 올려다보니 웬일인지 북향이다. 안채를 향하고 있는 큰 사랑채와 마주 본다. 특별한 이유가 없는 한 집은 남향을 보기 마련인데 어찌하여 북향으로 지었단 말인가. 아내 바라기 사랑채 주인이 한시도 안주인에게서 눈을 떼지 않으려고 마주 보게 지었을까. 어쩌면 안주인의 음기를 감당하지 못해 그 기운을 누르려고 북향으로 지었을지도 모른다.

안채에는 규모가 제법 큰 곳간 두 채가 떡하니 버티고 섰다. 이 가문은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 전까지 18대 400년 동안 만석꾼의 부를 누렸다. 집터가 천하의 명당이라서 부를 이어갈 수도 있었을 테지만 아마 다른 이유도 있을 것이다. 남자로는 부족하지만 재산으로나마 아내 마음을 잡으려고 죽도록 애를 썼기에 3대를 잇기 어렵다는 부를 그 긴 세월 동안 유지했으리라.

하마터면 벌렁 자빠질 뻔했다. 안채에 딸린 커다란 부엌문에 또 구멍이 있다. 앞문과 뒷문에 두 개씩 방형으로 뚫렸다. 사랑채와 가장 먼 곳, 그곳은 금남의 처소다. 중 사랑채의 구멍이 안채의 출입을 통제하는 기능이었다면 부엌의 구멍은 도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내외가 엄격하던 시절에 사랑채 주인이 금남의 처소에 와서도 사람들의 동정을 살폈을까.

혼란스러운 머릿속을 정리하려고 부뚜막에 걸터앉아 곰곰이 생각에 빠져든다. 만석 채우는 곳간 일을 아녀자들만 매달렸을 수는 없지 않은가. 아마도 어깨가 떡 벌어지고 가슴에 털이 난 장정들이 웃통을 벗은 채 땀을 뻘뻘 흘리며 곡식을 나르지 않았을까. 구멍으로 그 모습을 훔쳐본 안주인은 탄탄한 근육질의 수컷을 불러들여 죽어도 좋을 만큼 극치감을 느낄 수 있는 정사를 꿈꿀 수도 있지 않겠나. 가난한 친정을 위해 팔려 오다시피 한 결혼이지만 억눌려 있던 욕구는 진정한 남자를 보면서 살아날 수도 있지 않을까.

전해오는 이야기에 친정아버지가 딸을 보러 오면, 딸은 온갖 반찬을 장만해서 상을 차렸다. 하지만 밥그릇에는 내시에게 시집보낸 아버지가 원망스러워 동전을 수북하게 담고 밥은 위에만 살짝 얹었단다.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오는 것을 보면, 멀쩡한 사내와 한바탕 질펀한 사랑을 나누면서 아랫것에게 망을 보게 한 구멍이었는지도 모른다.

오호통재라. 큰 사랑채와 중 사랑채의 시선은 부엌까지는 미치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가 바람둥이 남편 제우스를 감시하려고 눈이 백 개 달린 아르고스에게 밤낮 보초 세웠다는데 사랑채 주인에게도 그런 신이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니다. 못된 상상은 나 혼자만의 생각일 뿐이다. 안주인은 내시 문중에 시집오면서 성생활은 애초에 포기하지 않았을까. 세상 구경은 부모상 때나 가능하다는 소리도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을 것이다. 친정 위해 희생할 만큼 어진 마음을 지녔으니 남편 받들고 자식 키우며 집안일에만 전념했으리라. 여자로서의 삶이 만족스럽지 않아도 그 시대 뭇 양반들과는 달리 자신만을 바라보는 남편의 순정을 알기에 불순한 생각은 손톱만큼도 품지 않았으리. 부엌에 난 구멍은 안주인의 숨구멍이었을 것이다. 사랑채 주인이 갇혀 지내는 아내가 안쓰러워 작은 구멍을 통해서라도 바깥세상을 보라고 뚫어 준 창이리라.

한나절, 고택과 호흡하다가 돌아간다. 시대의 희생양이 된 내시 부부의 삶에 비애를 느끼며 솟을대문을 향하는데 왼쪽으로 아담한 연못이 보인다. 연못에는 금붕어가 노닐고, 못 가에는 풀꽃들이 제 세상을 만나 만화방창이다. 벌이 잉잉 소리를 내며 꽃잎을 간질인다. 내시 부부도 천상에서는 저 연못의 빨간 붕어처럼, 꽃과 벌처럼 온전한 사랑 누릴 수 있기를…. 내시 고택의 구멍은 부부의 결핍을 해소하는 창이었다.

 

 

수 상 소 감


대구일보에서 주최하는 ‘제11회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에 응모했다. 작품을 쓰기 위해 문화재를 탐방하는 시간이 즐거웠고, 작품을 쓰면서는 그 문화재에 대해 깊이 알게 되는 기회를 가지기도 했다. 작품을 출품하고 발표를 기다리는 시간이 행복했다. 다행히 선정돼서 내가 소개한 문화재가 널리 알려지게 된 점을 의미 있게 생각한다. 작품을 통해서 부디 경북에 관광객이 몰려오기를 기대한다.
경북문화체험수필대전은 경북의 문화를 알리는 지렛대 역할이 되는 것 같다. 작품을 쓰기 위해서도 관광을 해야 되고, 작품으로 문화재가 알려져서 관광객이 늘어날 수도 있으니 이래저래 문화재를 알리는데 큰 공헌을 한다고 본다.
△대구수필가협회 회원 △대구문인협회 회원 △수필집 ‘타법’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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