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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무화과가 익는 밤 / 박금아

부흐고비 2020. 11. 12. 13:08

가을에 들면 달빛은 마방(馬房)에 들어와 앉았다. 어린 말이 벌레를 쫓느라 꼬리로 간간이 제 몸을 치는 소리가 적막하기만 하다. 잔등을 쓰다듬노라면 말은 제 어미를 부르듯 큰 눈망울을 들어 저편 하늘로 “히힝!” 소리를 날려 보냈다.

그곳 말 울음소리가 닿는 곳에서는 무화과나무가 자라고 있었다. 나무 아래에 서면 푸르레한 공기 속으로 철새가 날개를 퍼득이며 밤하늘을 날았다. 새가 날아간 자리에는 오래도록 울음소리가 남았다. 을음은 밤의 젖줄을 자극이라고 한 모양이어서 유선(乳腺)이 탱탱해진 밤은 젖꼭지를 열었다. 무화과의 발그레한 젖꼭지에서 ‘젖물’이 비쳤다.

태어나서부터 젖이 고팠다. 어머니는 집안일에 어장 일에 젖먹이에게 젖 먹일 시간조차 없었던 것 같다. 고픈 젖을 쌀죽과 원기소로 채우며 자랐다고 했다. 아기 입네는 증조할머니의 쪼글쪼글한 젖이 물려 있었단다. 빈 젖이었으므로 헛헛증을 앓았다. 동생이 태어나면서부터는 바쁜 어머니를 위해 집을 떠나 외가와 친가를 오가며 살았다.

가족과 함께 사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동기간과 싸워서 어른들에게 매를 맞는 것조차 부러웠다. 앞집 말 ‘구루마’ 집 딸 향란이는 제일 부러운 아이였다. 언니가 우리 집의 일을 도와주고 있어서 그 집엘 자주 드나들었다. 작은 방에 식구들이 모두 배를 깔고 누워서 발장난을 치며 만화책을 읽는 모습이 너무 좋아 나도 식구가 되고 싶었다.

밤이 되어 집으로 올 때면 언제나 무화과나무 아래로 들아왔다. 어린아이라곤 나뿐이어서 어른들은 더없이 귀애해부었지만 내내 엄마와 동생들이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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