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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매듭 없는 맺음 / 이춘희

by 부흐고비 2020. 11. 16.

2020 경북문화체험 전국수필대전 입선

잠을 앗아 간 더위와 싸우다 문득 오래전 어머님이 장만해 주신 삼베 홑이불이 생각났다. 이제는 낡아서 군데군데 구멍이 뚫렸지만, 침대 위에 깔아 놓으니 등으로 서늘한 바람이 일렁인다. 며느리 여름나기까지 자상하게 살피던 어머님을 회상하며 안동시 임하면 금소리 안동포 마을을 찾았다.

시골 동네는 겉보기에 고요한 듯하다. 가만히 서 있는 나무줄기 속에 물과 양분이 끊임없이 이동하듯 내면에는 끈끈한 전통이 흐르는 기운을 느낀다. 마을을 안은 비봉산 산봉우리는 봉황이 날개를 펴고 있는 듯하다. 산 아래로 비단 폭을 펼쳐놓은 것 같은 길안천이 너른 들판을 적시며 여유롭게 흐른다.

거리에는 인적이 뜸하다. 한낮의 맑고 투명한 햇살이 부담스러운가 보다. 농가의 이끼 낀 기와만이 오래된 이야기를 간직하고 방문객을 맞이한다. 돌과 흙이 어우러진 담벼락은 옛 정취를 돋운다. 흙벽을 따라 채송화가 오종종하게 핀 좁은 길을 걸으니 어릴 적 놀던 골목길이 생각난다.

반쯤 열려있는 대문들이 지나가는 나그네에게 손짓을 보낸다. 언제든 우리네 삶을 들여다보아도 좋단다. 집마다 바지랑대에 의지한 빨랫줄에는 마른 풀 다발이 걸려있다. 누런 삼껍질은 온 동네가 삼베를 짠다고 뽐내는 듯하다.

대마 씨는 4월에 포근한 땅을 만나 싹을 틔워 올린다. 줄기가 어른 키만큼 자라고, 푸르던 색깔이 누렇게 변하는 7월이면 수확을 한다. 낫으로 자른 줄기는 삼굿에서 찐 다음 하루 햇빛에 말린다. 다시 물에 불려 껍질을 벗기고 빛을 쬔다. 다음에는 삼톱을 잡고 겉껍질을 벗겨낸다. 남은 속껍질을 ‘계추리’라고 한다. 이것을 일일이 여인의 손톱으로 째고 훑어내려 가닥을 낸다. 찢은 속껍질의 섬세함에 따라 구분하여 ‘삼뚜까치’에 삼실을 건다.

‘안동포 짜기’는 경상북도 무형문화재 제1호다. 마을 청년의 친절한 안내를 받으며 좁은 골목길을 따라가 기와의 색깔마저 풍화된 집에 들어선다. 시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꺼진 구들로 사랑채 문간방 바닥은 굴곡이 심하다. 안동포 짜기 무형문화재 제1호 기능보유자이신 우복인 할머니가 나이보다 오래된 베틀에 앉으신다.

수확할 때 대마의 길이는 2m 정도인데 삼베 한 필의 길이는 22m이다. 결국, 삼실은 잇고 이어야 베를 짤 수 있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실을 잇는 삼삼기 과정을 몸소 보여주신다. 삼실 한쪽 끝을 입으로 찢어 두 가닥으로 만든다. 또 하나의 실은 침을 발라 뾰족하게 만든다. 쪼갠 한 가닥과 침 바른 실을 오른쪽 무릎 위에 놓고 비벼서 꼰다. 남은 한 가닥을 꼰 실과 합쳐서 다시 비벼 잇기를 완성한다.

두 줄의 실이 매듭도 없이 한 몸이 된다. 실을 이을 때는 묶은 부분에 반드시 동그란 마디가 생기는 줄만 알았다. 마디를 만들지 않고도 묶이는 맺음이 신기하다. 삼실이 길고 길게 이어지듯 베 짜기도 대를 이으며 자연스레 연결되지 않았을까.

며느리를 맞는 시어머니의 마음도 찢어진 삼처럼 두 갈래가 아니었을까. 자기의 일을 이어줄 후계자로서 염려와 기대가 있었을 게다. 일이 서툴러서, 음식을 맛나게 하지 못해서, 때로는 젊다는 자체가 경계의 대상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며느리 또한 늘 따라다니는 시어머니의 눈빛을 벗어나고 싶었으리라.

갈등하는 두 마음은 서로 자리를 내어주었다가 다시 뺏기를 반복했을 게다. 꼰다는 것은 맞댄 두 실이 앞으로 혹은 뒤로 가며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닌가. 서로 꼬고 꼬이는 오랜 시간을 보내며 시어머니인들 딸 같은 며느리가 밉게만 보였을까. 삼을 찢느라 여리디여린 입술에 피가 맺히고, 보드라운 허벅지에 푸른 멍이 번지는 것을 보며 애처로운 마음도 들지 않았을까.

남겨져 기다리던 가닥이 꼬인 실과 다시 합쳐지며 맺음이 완성된다. 세월이 지나며 미운 정, 고운 정이 든 시어머니와 며느리는 이번에는 서로 자리를 양보하느라 꼬임이 생겼을 것 같다. 돌려서 꽁꽁 묶은 매듭은 살아생전 만들지 않았지 싶다. 침 속에 든 효소가 영양소를 잘게 부수어 소화를 돕듯 닮은 유전자를 가진 자손을 생산한다는 것이 거친 ‘계추리’를 부드럽게 하여 맺음을 도왔으리라.

신라 시대부터 천년을 이어온 우리의 옷감 안동포. 베 짜기의 기능이 이어지듯 조용한 마을에 고부간의 은은한 정이 흐르고 있다. 우복인 할머니는 시어머니에게 베 짜기 기능을 이어받아 며느리에게 전수했다고 한다. 대를 잇고자 시집살이의 어려움과 일상의 고통을 길쌈노래에 실어 날려 보낸 여인들의 한 많은 삶은 날실과 씨실이 되어 전통으로 승화한 것이 아닐까.

매듭 없는 맺음이 안동포에 숨어 있다.

 

수 상 소 감


태어나고 자란 고장을 바쁘다는 핑계로 무심하게 보고 지냈습니다. 잠시라도 사라지면 생명이 위험한 공기의 소중함에 감사하는 시간은 많지 않습니다. 이제야 철이 들었는지 먹거리를 얻고 부대끼며 살아온 대구·경북 지역에 고마운 눈길이 갑니다. 처음으로 마음이 머문 곳은 천년의 숨길이 이어진 안동포였습니다. 은근한 마음으로 며느리에게 사랑을 베푸신 시어머니의 생각이 가슴 속에 남아있었던 까닭이라 생각합니다. 그동안 소홀히 했던 것을 반성하는 심정으로 아름다운 곳과 따뜻한 이야기를 찾아보겠습니다. 우리 고장을 위해 좋은 일을 하시는 대구일보에 감사드립니다.
서툰 글을 뽑아주신 심사위원들께 감사드립니다. 글쓰기 공부를 하며 용기를 북돋아 주신 선생님들과 문우들에게 아울러 고맙다는 인사를 드립니다.
△ 문장 신인상 수상(2019) △ 고모령효예술제 수상(2018) △ 동서커피문학상 수상(2018) △ 문장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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