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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오동나무, 울다 / 배문경

부흐고비 2020. 12. 24. 08:45

나무가 쓰러졌다. 지난 태풍에 쓰러진 나무는 조립식 건물위에 걸쳐졌다. 넘어지며 몸통에서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와 가지 그리고 푸른 이파리들이 바닥에 흥건하다. 햇빛에 나무는 죽었는지 검게 변하고 있다.

어머니는 시장입구에서 국밥집을 했다. 국밥집에는 과년한 딸이 둘 있었는데 예쁘다는 소문이 돌았다. 때문에 인근 부대에서 군인들이 휴가를 나오면 먼저 들렀다. 어머니가 군인들을 친자식처럼 아껴주고 공짜로 음식을 준다는 소문은 입에서 입으로 번졌다. 어머니라고 부르는 아들 같은 군인들이 많았다. 은근슬쩍 처자들 보는 재미까지 쏠쏠했다.

군인들은 돼지국밥 한 그릇에 소주 한잔을 마시면서 고향생각에 눈물을 지었다. 그들이 안타까운 어머니는 용돈을 아끼지 않고 주었다. 군인들이 가득했지만 국밥집은 가난했다. 늘 퍼주는 장사에 이력이 난 딸들은 적자라며 어머니의 손을 막았다. 저녁이면 나간 돈 보다 들어오는 돈이 늘 모자랐다.

“내 자식 같은 군인들이 얼매나 힘들겠노”

하루가 멀다 하고 라디오와 텔레비전에서는 젊은이들이 월맹과 싸우는 장면을 내보냈다. 싸워 승리하리라는 각오를 힘주어 외치고 있었다. 아무도 죽지 않고 불사신처럼 살아 돌아오리라는 확신 속에서 그들이 떠나기로 마음먹었다. 한몫 잡아 오겠다는 젊은 혈기를 꺾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어머니는 자식 세 명을 월남에 보냈다.

어머니는 월남으로 떠나는 그들에게 기도 같은 반지를 끼워줬다. 금반지 석 돈짜리가 그들의 손가락에서 반짝였다. 어머니의 주문은 살아서 돌아오라는 눈물의 염원이었다. 그들은 어머니의 가슴팍에 안겨 살아 돌아오면 제일 먼저 어머니를 찾겠노라 다짐을 했다. 돈 많이 벌어 와서 어머니한테 받은 것의 몇 배를 갚겠다며 눈물을 흘렸다.

오동나무는 초여름이면 연보라색 꽃을 피웠다. 나무는 키가 컸고 보라색의 통꽃이 자기 끝에 모여 핀 후 열매가 맺혔다. 달걀 모양으로 가을에 익었다. 오동나무는 예부터 딸이 있는 집에 한 그루씩 심어 혼수 밑천으로 썼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쓰임이 많다. 머릿장이며 소반을 만들고 경첩을 붙인 반다지를 만들었다. 언니가 시집갈 때 어머니는 오동나무로 된 화장경대를 딸려 보냈다.

오동나무에는 소리가 산다. 거문고의 앞판은 오동나무를 사용한다. 목재의 재질이 부드럽고 습기와 불에 잘 견디며 가벼우면서도 마찰에 강하기 때문이다. 보름달이 대청을 비추면 거문고를 무릎에 얹고 두 손으로 줄을 켜고 누르며 소리를 낸다. 소리는 정적을 뚫고 둥글게 진동하며 널리 퍼진다. 꽃 위에 앉는 나비 같다가 말발굽소리를 내다가 자갈길을 달리는 고무신 같다. 소리는 소리로 거듭나며 진하고 옅게 퍼졌다 오므리기를 수없이 반복한다.

어둠이 밝아지고 느슨한 것이 빨라졌다. 거문고며 가야금은 빈 공간을 탁월하게 자신의 색으로 채워나가는 현악기다. 어머니는 자신이 몸통이 되어 악기가 되었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아들 셋을 젖 물려 키우다 냉혹한 마마 호환에게 아이를 뺏겼기 때문이고, 설사병에 아들을 잃었기 때문이었다. 전쟁을 겪고 난 자리에 파묻혀있던 터지지 않았던 폭탄이 생명을 앗아가기도 했다. 소리는 빈 하늘을 울음으로 채웠다. 온 방을 돌며 가슴을 쥐어뜯으며 울음으로 날을 새운 시간들은 나무의 무늬가 되었다.

전쟁은 끝났다. 세 명의 아들은 어머니의 기원 덕택에 무사히 귀환했다. 그들 누구도 어머니를 찾아오지 않았다. 전쟁이 사람을 바꾸어 놓았는지 원래 그런 사람을 알아보지 못한 어머니 탓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분명한 것은 어머니의 가슴은 텅 비어버렸다는 사실이었다.

어머니는 친 아들을 셋이나 엄동설한에 파묻었다. 밤새 자신을 지하 감옥 속에 가두었을 어머니는 죽은 아들을 대신할 살아있는 자식이 필요했다. “어머니, 어머니”라고 불러줄 아들. 하지만 새로운 아들들도 살갑게 어머니를 진정한 모정으로 대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홀로 그 아픔을 속으로 삭였다. 옛 울음은 새로운 울음으로 소리가 되어 나무에 쌓였다.

홀로 서 있지도 못한 오동나무는 영영 잎을 달지 못했다. 속은 시커멓게 썩어 헝겊처럼 너덜너덜해져 나무는 뿌리째 뽑혀 버렸다. 속울음은 달래고 달래도 안에서 밖으로 뿜어져 나오는 것임을 내가 어른이 되고서야 알 것 같다.

아들을 잃고, 아들이라 생각했던 아들조차 자신을 배신했을 때, ‘머리 검은 짐승은 거두지 마라’는 어머니의 유언이 되었다. 여자가 되고 엄마가 되고서야 알게 된 어머니의 심정. 넘치던 사랑도 베여 상처가 되고 나니 앙다문 입술로 앙칼진 말도 나올 수 있는 모양이다. 모든 것을 지독스레 아끼던 어머니가 넉넉히 베푼 인정이 버림받았을 때 한恨이 되지 않았을까.

자식 하나 키우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것을 시간이 지날수록 느낀다. 산 자식이 이러할진대 어머니의 잃은 자식은 가슴속에 종소리무늬로 똬리를 튼 슬픔의 푸른 못池이었으리라. 바람이 불때마다 출렁거렸을 물결, 어머니가 되어보니 알겠다. 나무 속 울음이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석탄나무가 된 오동나무는 시커멓게 속을 다 태운 채 바닥으로 몸을 쓰러뜨렸다. 꽃을 피워 올릴 때나 동글한 무녀의 방울 같은 열매가 기도처럼 흔들렸을 때도 나무만큼은 홀로 칼로 도려낸 것 같은 아픔을 가슴에 켜켜이 새겼던 모양이다.

바람이 불어오자 허옇게 배를 드러낸 뿌리에서 거문고 소리가 번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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