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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어머니 / 이헌구

부흐고비 2021. 2. 7. 20:13

어머니의 사랑, 그 지극하신 사랑! 사랑의 참뜻을 처음으로, 그리고 가장 깊이 가르쳐 주신 어머니….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처음으로 입을 열었을 때, 그 때 우리 입에서 나온 최초의 언어는 '엄마', 곧 어머니가 아니었던가!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를 외치며 우리는 인간임을 알았고, 그런 인간이기 때문에 우리는 무시로 어디서나 어머니를 부르고 어머니를 외쳤다. 기쁠 때나 슬플 때나, 즐거운 곳에서나 괴로운 곳에서나, 마음이 아프거나 몸이 아프거나, 우리는 언제나 어디서나 어머니를 찾으며 이렇게 자라 왔다.

어머니는 온통 우리를 보호해 주시는, 무너짐 없는 성이었다. 어느 누구든지, 어머니의 품속에서는 이 세상에 무서워할 것도 없는 똑같은 왕자요 공주였다. 거기서는 항상 다사로움과 밝음과 꿈과 노래마저 숨어서 빛나는 것이었다. 이렇게 엄마, 어머니를 생각하매, 나의 머릿속에는 문득 세 가지의 어머니의 상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 하나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니오베이다. 자기만이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누리는 듯이 안하무인으로 오만했던 왕비 니오베가, 아폴로의 노염을 사서 열넷이나 되는 아들딸들을 다 잃자, 그의 눈에서는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려 마침내는 '니오베의 샘'이 되었다는 그 이야기. 아무리 현실적인 영화나 높은 지위를 차지했다 할지라도, 그 아들딸을 잃어버린 한 여인, 한 어머니로 돌아왔을 때의 그의 슬픔은 결코 끝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사랑임을 깊이 깨달은 니오베의, 그 끊임없이 흘러내리던 희한과 비통의 눈물….

다음은,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하고 십자가에 달려 숨진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비탄에 잠긴 마리아의 모습, 한 소박한 여인으로서, 그 아들이 부활할 것과 그 아들이 인류 역사를 꿰뚫은 거룩한 존재임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항상 가난하고 헐벗었으며 하루도 평안한 날이 없었던 그리고 마침내 극형으로 숨진 그 아들의 주검을 본 마리아의 슬픔. 누구의 위로도 없던,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롭고 불행했던 그 어머니. 그러나,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로 새겨진 그 모자의 상, 숨져서 고요히 그 어머니의 무릎 위에 안긴 예수의 모습, 그 아들과 그 어머니의 무언의 무한한 대화, 삶과 죽음을 초월한 곳에서 영원히 빛날 그 어머니의 사랑….

끝으로, 한 젊은 아들을 형장에 보낸, 우리나라의 어느 가난한 어머니의 모습. 북악산에서 몰아치는, 거세고 매서운 찬바람을 무릅쓰고 매일같이 교도소를 찾은 그 가엾은 어머니. 어느 날, 그는 품속에서 우윳병을 꺼내 그 아들에게 주었다. 일찍이 그 아들을 안고 젖을 먹여 주었던 어머니. 그러나, 이제는 늙고 만 어머니가, 식을세라 차질세라 하고 품속에다 품어 온 우윳병, 체온과 더불어 그 뜨거운 사랑으로 더워졌을 우윳병을 꺼내 준 그 어머니의 손길, 그 큰 사랑이 마침내 그 아들로 하여금 그 사실을 수기로 쓰게 했고, 그리고 그 수기를 읽으며 목메던 필자….

모든 어머니가 다 불행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러나, 많은 어머니들이, 견딜 수 없는 가지가지의 현실적 불행과 고난과 경멸과 모욕을 달게 받으며, 그 아들과 딸을 위해 한 몸을 온전히 바쳐 왔다. 당신의 어머니도 나의 어머니도 그런 상황 속에 살고 계시고 혹은 살다가 가셨다. 아무 보상도 없이….

이런 생각을 하는 순간, 나는 온몸에 심한 오한을 느꼈다. 내 어머니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셨기 때문이다. 주름이 잡히고 조금도 미인이 아니신, 얼굴에 약간 자국마저 가지신 내 어머니의 모습. 한평생 그리움과 삶의 고됨에 시달리다 가신 나의 어머니..

우리의 어머니들에게도 좀 더 자유롭고 인간적인 삶을 향유할 수 있는, 그런 자리를 마련해 드려야겠다. 우리의 어머니는 영원히 웃으시고 기뻐하시고 자유로우셔야 한다. 그리고, 어머니의 그 한없는 사랑에 대한 우리들의 대답이 선명해야 할 것이다.

'우리들 머리 위에 얹으신 그 손길의 따사로움이 영원하소서.'

 



[중앙선데이] 김광섭과 이헌구(2009.10.25.)

 

김광섭과 이헌구

담소를 나누는 김광섭 (사진 오른쪽)과 이헌구 김광섭 시인의 삶과 문학을 이야기하자면 빼놓을 수 없는 한 사람이 있다. 불문학자이자 평론가인 이헌구다. 김광섭과 이헌구와의 반세기에 걸친

news.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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