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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모색暮色 / 이영도

부흐고비 2021. 2. 7. 02:53

지극히 그리운 이를 생각할 때 모르는 사이에 눈물이 돌듯, 나는 모색 앞에 설 때마다 그러한 감정에 젖어들게 된다.

사람의 마음이 가장 순수해질 때는 아마도 모색과 같은 심색일는지 모른다. 은은히 울려오는 종소리 같은 빛, 모색은 참회의 표정이요, 기도의 자세다. 하루 동안을 겪어 낸 번잡한 과정 다음에 밀려드는 영육의 피로와 허황한 감회는 마치 한낮의 강렬했던 연소의 여운이 먼 멧등에 서리듯 외로움이 감겨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저 유명한 화가 밀레도 한 가족의 경건한 기도의 모습을 모색 앞에 세우고 그림의 제목을 만종이라 붙였는지도 모른다. 황혼이 기울 무렵, 산 그림자 내리는 들녘에 서면 슬프디 슬픈 보랏빛 향수에 싸여 신의 음성은 사랑하라고만 들려오고, 원수 같은 것 미움 같은 것에 멍든 자국마저 밀물에 모래알 가셔지듯 곱기 씻겨 가는 빛깔... 어쩌면 내 인생의 고달픈 종언도 이같이 고울 수 있을 것만 같아진다.

가끔 나는 해질 무렵에 경복궁 뒷담을 끼고 효자동 종점까지 혼자 거닐 때가 있다. 이 거리에 석양이 내릴 때 가로수에 서리는 빛깔을 보기 위해서다. 봄여름은 너울거리는 푸르름이 마음을 축여 주어 조용한 생기를 얻을 수 있지만 만추에서 초봄까지의 낙목일 경우엔 말할 수 없는 눈물겨운 빛이 된다.

가물가물 일직선으로 열 지은 나목들이 암회색 높은 궁창을 배경하고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는 하늘에 비춰 선 정취는 바로 그윽이 여울져 내리는 거문고의 음률이다. 이 음색에 취하여 혼자 걷노라면 내 마음은 고운 고독에 법열이 느껴지고 어쩌면 이 길이 서역 만리, 그보다 더 먼 영겁과 통한 것 같은 아득함에 젖어진다.

그 무수히 소용 돌던 역사의 핏자국도 젊은 포효도 창연히 연륜 위에 감기는 애상일 뿐, 그 날에 절박하던 목숨의 상채기마저 사위어져 가는 낙조처럼 아물어 드는 손길! 모색은 진정 나의 영혼에 슬픔과 정화를 주고 그리움과 사랑을 배게 하고 겸허를 가르치고, 철학과 종교와 체념과 또 내일에의 새로움과 아름다움과... 일체의 뜻과 말씀을 있게 하는 가멸음의 빛이 아닐 수 없다.

모색 앞에 서면 나는 언제나 그윽한 거문고의 음률 같은 애상에 마음은 우울을 씻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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