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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행복한 사람 / 최원현

부흐고비 2021. 2. 9. 09:14

내가 아는 그는 참으로 아름다운 사람이다. 내가 아는 그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면서 '내가 행복한 사람이다'라고 느끼는 사람이 과연 얼마나 될까.

가지면 더 갖고싶고, 오르면 더 높이 올라가고 싶고, 한 번 갖게 되면 내놓기 싫고, 한 번 올라가면 내려오기 싫은 것이 인간의 본성이요 생리가 아니던가.

그런데 그는 그렇지 않았다. 생각은 지극히 대중적이면서도 바른 소신을 가진 이로 자신의 이익을 탐하지 않고, 정작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이며 그것은 어떻게 해야 할 지를 알았다.

그는 가지지 못한 자의 안타까움을 알고, 힘없고 약한 자의 슬픔을 알고, 약하기 때문에 손해를 보고 피해를 당하는 아픔을 아는 사람이다. 그가 그런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자신 때문에 그런 일이 생기는 것을 원치 않으며, 자신이 그런 사람의 힘이 될 수 있기를 원했다.

그는 자신의 약한 부분을 너무나 잘 안다. 대개의 경우 자신의 약점은 숨기려 하기 때문에 남에게 그것을 들켜 난처해지는 경우가 많지만 그는 먼저 자신의 약점을 스스럼없이 내놓아 버리기에 오히려 이해를 받고 동정까지도 받게 된다.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벽을 먼저 허물어 버리는 그만의 생활법이다.

그는 자신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남들이 못 해 본 것을 해 보았고, 하고싶은 것도 해 보았고, 힘든 일도 해 보았고, 많은 보람도 느꼈다고 말한다. 아직도 많은 일을 할 수 있고, 더 큰 일도 할 수 있고, 그가 맘만 먹으면 더 할 수 있는 조건도 갖춰져 있지만 이만큼에서 그의 자리에서 일어나겠노라고 했다.

그는 8할의 만족론을 말한다. 8할이란 분수라는 것이다. 분수를 아는 것이 현명한 사람이고, 아름다운 사람이라고 말한다. 그는 그 2할을 마저 채우지 않고 다음 사람에게 120%로 여유를 만들어 주는 것이야말로 앞사람의 몫이라고 말한다.

그는 키가 작다. 그러나 그의 그림자는 키가 큰 어느 누구보다도 더 길다. 보이는 키보다 숨어있는 키가 보이는 큰 키의 여늬 사람보다 훨씬 크다. 그야말로 작은 거인이다. 그는 무리한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욕심을 낼만한 때에 분수를 생각한다. 스스로 8할의 곳이 어디 만큼인 지를 잘 살핀다. 그는 자신보다 훌륭한 사람이나 자신보다 못한 사람에게 똑같이 공평하다. 같은 마음으로 베풀고 공경한다. 그것은 그의 삶의 방식이요 철학이다. 그가 그렇게 한 것에 대해선 당연히 해야 할 일이었다고 말한다. 아주 적당히 욕심을 낼 줄 아는 사람, 아주 적당히 포기하고 버릴 줄을 아는 사람, 그래서 스스로가 행복해 질 수 있는 방법을 스스로 찾아낸다.

나는 그를 보면서 늘 감사한 마음이 된다. 아름다운 꽃을 바라보는 사람이 행복해 지는 것처럼 그런 그를 내가 알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는 행복해 진다.

그는 재선의 현역 시장이다. 그의 집무실에서 나는 또 한 번 놀랐다. 너무나 초라해 보이는(?) 것도 놀라움이다. 그의 의자는 아주 작은 의자였다. 금박의 명패 같은 것도 없었다. 언제든 책상에 앉은 채로 자연스럽게 회의를 할 수 있도록 회의 탁자가 맞닿아 있고, 결재를 올리는 사람은 편히 옆에 앉아 자연스레 설명을 할 수 있도록 자신과 똑같은 의자를 놓았다. 책상의 막힌 부분을 뚫어 결재를 올린 사람의 무릎이 그 구멍으로 나올 수 있게 하여 다리를 펴고 앉아 설명을 할 수 있도록 한 것은 말단 공무원으로부터 출발했던 그만이 할 수 있는 아름다운 배려이기도 했다.

만 40년을 공무원으로 평생을 봉사하며 산 그, 지방이긴 하지만 그는 관운도 있어서 지방 도시의 행정 책임자로 상당히 오랜 동안을 봉직했다. 소신껏 한다는 것이 때론 다른 사람의 눈엔 거슬리기도 하여 오해와 모함을 받을 때도 있었고, 심혈을 기울여 해 놓았던 일들이 다른 곳으로 발령이 났다 다시 돌아왔을 땐 모두 없어져 버려 너무나 가슴이 아팠던 때도 있었다.

그에게선 전혀 나이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와 15년여를 같이 하면서도 한 번도 그의 실제 나이를 생각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그만큼 젊게 살았다는 말이리라.

나는 오늘 그의 퇴임식에 참석하고 있다. 한 번 더 확실히 당선될 수 있음에도 그것을 포기한다는 것은 당사자에겐 특히 어려운 일이다. 그는 교회의 장로다. 밤 낮 없이 너무 바쁜 일들 속에서 장로의 책임을 제대로 못 한 것 같다며 늘 안타까워하고 죄스러워했다. 그러나 그가 외국이 아닌 국내의 어디에 있건 주일 예배를 꼭 본 교회에 가서 드리는 걸 여러 번 보았다. 천리 서울에 와서도 새벽 첫 비행기로 내려가 본 교회의 주일 예배에 꼭 참석하는 그를 보며 나는 너무나 편하게, 너무나 내 위주로 살고 있구나 부끄러움 가득 반성을 하곤 했다.

사람은 적당한 명분이 있어주면 쉽게 그 명분을 이용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그는 그렇지 않는다. 참으로 고지식할 만큼 원칙을 준수한다. 그러나 그 원칙 준수가 아주 자연스럽다. 물이 흐르듯 순리를 좇아 행한다.

그의 수필을 통해 시장 취임식 때의 일을 떠올리며 오늘은 공직 생활을 아주 떠나는 퇴임식의 그를 바라본다. 퇴임식에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재임 기간의 업적 소개를 생략케 한 그, 그 이유가 그건 모두의 힘이요 공이지 혼자의 공이 아니라는 것, 떠나는 그에게 바쳐지는 직원들의 헌시는 그래서 더욱 감동적이었던 것 같다.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당신의 뒷모습, 당신은 작은 거인, 당신의 선택이 참으로 현명한 선택이었다고 입들을 모읍니다, 책임자의 고독으로부터 해방되어서 제2의 인생을 꿈꾸라는 내용의 헌시 낭송 뒤의 그의 퇴임사에선 일생 중 가장 행복한 날이 언제냐고 하면 평생 공직의 마침표를 찍는 날인 바로 오늘로 40년간 최선을 다하고 작업을 마치는 날이기에 더욱 애정을 갖고 바라본다고 했다.

그가 직접 만든 소년소녀합창단과 여성합창단이 그가 노랫말을 만든 '통영의 노래'를 부를 때 노래하는 그들과 함께 선 그는 참으로 키 작은 거인이었다. 그를 보며 행복이란 스스로 만들어 가며 스스로 필요한 만큼 소유하는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필요 이상으로 탐내지 않고, 조금은 무리다 싶게 최선을 다하여 이룰 수 있는 것까지만 계획하고 실천에 옮기는 자세, 그렇게 이뤄낸 것도 자신의 힘이라 하지 않고 함께 이루어 낸 결과라고 공을 같이 나누는 겸손에 혼자의 보람이 수많은 사람의 보람으로 더 커졌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를 보며 한없이 초라해져 버린 나를 본다. 소신껏 해 온 것이 내게도 있던가. 그저 틀에 묶이고 갇혀 거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수동적으로만 살아왔던 '나'가 아니었던가. 행복해 하기보다 늘 불만스러워 하며 내가 하려 하기보다 남이 해 주기만을 바라고 험한 일에는 슬그머니 뒤로 빠지던 나는 아녔던가.

'행복한 사람'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하는 그, 할 일을 다 마친 후 아름다운 마침표를 찍고 평범한 시민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그의 여유있고 행복한 표정을 보며 그런 그를 알고 있는 나도 행복한 사람이 된다. 나도 그의 행복병에 기쁜 마음으로 전염되고싶다.

오늘 나는 참으로 행복한 사람을 본다. 그리고 그를 보며 나도 행복한 사람을 꿈꿔본다. 식장을 나서는데 갑자기 큰 소리가 들린다. 뒤돌아보니 노동조합원과 직원이 하나되어 그를 향해 빵빠레를 울려주고 있었다. 소년처럼 상기된 그의 얼굴 위 하늘에선 하얀 구름이 한가로이 떠가고 있다.

※ [여세주의 문학포럼] 최원현의 수필세계 / 정서적 동일화와 논리적 유추

 

최원현의 수필세계 / 정서적 동일화와 논리적 유추

정서적 동일화와 논리적 유추-최원현의 수필 쓰기- 최원현수필론.hwp여세주essaytown@daum.net 1.시작하며 최원현은 1987년 《한국수필》을 통해 등단한 수필가로서 매우 왕성한 활동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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