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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고자바리 / 최원현

부흐고비 2021. 2. 8. 21:04

고자바리(최원현) 소리로 듣기

 

할머니는 늘 왼손을 허리 뒤춤에 댄 체 오른손만 저으며 걷곤 하셨다. 그게 언제부터였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기억나는 것은 앉았다 일어나려면 ‘아고고고’ 하시며 허리가 아픈 증상을 아주 많이 호소하셨고 길을 가다가도 한참씩 걸음을 멈추곤 허리를 펴며 받치고 있던 왼손으로 허리를 툭툭 치다가 다시 가곤 하셨다. 그런 할머니의 허리가 언제부턴가 조금씩 더 구부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그걸 바라보는 어린 내 마음은 더욱 편치 않았다.

할아버지는 하얀 수염으로 늙음이 나타났지만 할머니는 그렇게 허리가 굽어지는 걸로 나타났다. 기역자처럼 거의 직각으로 굽어진 허리를 똑바로 보는 것만으로도 괜히 서글퍼지고 안타깝고 민망했다.

오랜만에 뒷산엘 올랐다. 그새 나무계단이 하나 더 생겼고 오르는 사람도 더 많아진 것 같다. 헌데 길목에 뿌리가 다 드러난 나무 한 그루가 위태롭게 버티고 있다. 사람들의 발걸음으로 길이 되어버린 곳에서 덩그마니 뿌리를 다 드러낸 체 서있는 나무가 할머니의 굽어버린 등을 보는 것처럼 안쓰러워 보인다.

이미 몸통이 잘려나가 버린 길옆 다른 그루터기들을 보며 이 나무도 얼마 못 가 저렇게 잘려지는 신세가 되는 것 아닌가 생각이 들어선지 서있는 모습조차 떨고 있는 것 같아 보인다. 그런데 길옆 말라버린 그루터기 하나가 눈을 사로잡았다. 언제부터 거기 있었는지 모를, 하얗게 곰팡이가 피어난 오래된 그 그루터기가 내게 한마디를 던졌다: ‘다들 이리 되어가는 거여’

조심스레 둥그런 모양을 따라 그루터기를 만져보았다. 곰팡이인 줄 알았던 것은 이름 모를 작은 버섯들이었다. 그루터기는 이미 생명의 기운을 모두 잃고 있었는데도 그런 곳에서 버섯이 돋아났었고 이젠 그 버섯마저 말라버리고 만 것이다. 눈으로 보기에는 아직 단단해 보인다. 일어나 발로 툭 차봤다. 헌데 힘을 받은 한쪽이 맥없이 깨져나간다. 오랜 세월에 삭아버린 것이다. 마른버섯도 건들자마자 부서져버린다.

어린 날 시골에서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가면 작은 삭정이 그루터기가 제일 반가웠다. 보이는 대로 발로 차서 부러뜨리거나 뽑아내어 땔나무로 모았다. 불담이 좋기로는 그만한 땔감이 없었기 때문이다. 날씨가 추울 때는 말라있는 오래된 큰 그루터기를 찾아내어 발로 차거나 돌로 때려 조각을 떼어냈다. 그걸 모아다 놓고 불을 피우면 불담 좋은 작은 모닥불이 되었다. 뿌리가 살아있는 동안엔 그루터기도 마르거나 썩지 않는다. 그러나 위부터건 아래로부터건 생명의 기운이 떠나기 시작하여 시간이 흐르면 이내 마르거나 썩고 만다. 그렇게 된 것을 고자바리라고도 하고 고자방치라고도 했다.

할머니는 허리가 굽어가면서 점점 운신의 폭이 좁아졌다. 무엇을 들어 올리는 것도 옮기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가끔씩 밭에는 나가셨다. 어느 날 밭에 가신 할머니를 마중하러 나갔더니 길가 나무 그루터기에 앉아 쉬고 계셨다. 오가는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오래 전에 베어버려 말라버린 참나무 그루터기였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이렇게 밭에 오가는 길에 이 그루터기에 앉아 쉬곤 하셨던가 보다. 할머니에겐 몸통 없는 이 그루터기가 살아있을 때보다도 더 요긴하게 쓰이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할머니의 마중 길은 거기까지였다. 할머니를 마중 나가면 꼭 그곳에서 쉬고 계셨다. 그냥 쉬신다는 것이 거기쯤이 되었는지, 내가 오기를 그곳에서 기다리고 계셨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어스름 속에 앉아있는 할머니와 그루터기가 하나였다. 그루터기에 앉으신 것이라기 보단 그루터기에 합체되었다. 그렇게 보였다. 그래선지 더없이 편안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할머니는 내 그루터기였다. 나는 언제든 할머니의 그늘이건 이런 앉음자리이건 내가 원할 때면 어느 때던지 거기 앉거나 의지하곤 했다. 그런 할머니가 내가 어찌 할 수도 없이 고자바리가 되어간다고 생각이 들자 어린 마음에도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저렇게 얼마만 지나면 내가 미칠 수 없는 곳으로 가실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안타까움의 생각에 할머니께 다가가지도 못하고 서성이다 애꿎은 돌멩이만 걷어찼는데 그런 내 인기척을 눈치채셨나보다. “원현이냐?” 나는 내친 김에 큰 소리로 “할머니!“ 하고 불렀다.

할머니가 가신 지도 20년이 넘었다. 가신 후에도 할머니란 그루터기에 수없이 앉고 기대곤 했던 세월이다. 그런 내가 이만큼에서 그때의 할머니를 닮아간다. 할머니가 앉아 쉬시던 길가의 나무 그루터기처럼 나 또한 내 아이들의 앉음 터가 되었고, 허리는 굽지 않았지만 다리에 힘이 빠져 먼 거리를 걷는 것도 힘들다. 보기에는 멀쩡했던 고자바리를 발로 툭 치자 힘없이 부서지던 것처럼 나 또한 그리 되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그 무엇도 세월을 비켜가진 못 하나보다. 그게 자연현상이요 순리일 것이다. 고자바리는 그런 자연 순리의 모습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일 뿐이다.

내려오는 길에 아까 보았던 그 고자바리에 눈길을 준다. 뿌리가 드러난 나무도 본다. 잘려진 나무의 그루터기도 본다. 고자바리에 다가가 발로 툭툭 흙을 차 덮어준다. 이들 또한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감 아닌가. 삶과 죽음은 모든 살아있는 것들에 공정하게 적용된다. 소멸되는 것이 아니라 돌아가는 것이다. 그냥 이름 없이. 그런데 사람은 그것조차 자연스럽지 못한 것 같다. 아마 이름값 때문일까. 나무의 그루터기처럼 사람은 이름을 남긴다. 그러나 사람의 이름은 고자바리처럼 그냥 자연으로 돌아가진 못한다. 살아온 가치만큼 값이 매겨지고 평가도 된다. 그러나 사후의 그런 평가는 좋게만 되는 것은 아니다.

저만치서 할머니가 허리 뒤춤에 손을 받치고 걸어와 늘 쉬어가던 그루터기에 앉으신다. 어스름에 묻혀가는 할머니의 모습, 한참 보고 있자니 할머니는 없고 그루터기만이다. 아니다. 할머니가 아니고 나였다. 나도 그렇게 고자바리를 향하여 가고 있는 거였다. 누군가가 앉아 쉴 내 인생의 그루터기 고자바리로. 나뭇잎 두 잎이 팔랑팔랑 나비처럼 팔랑이다 그가 태어난 나무의 뿌리 위 땅으로 살그머니 내려앉는다. 비로소 그도 편안해 보인다.

* 고자바리: 고자방치. 나무 밑둥치만 남아서 썩은 그루터기로 전라도 방언(땔감으로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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