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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꿈꾸는 능 / 김도우

부흐고비 2021. 3. 26. 14:24

살아서 왕은, 죽어서도 천년을 살아가는 왕이지 않겠는가. 저 세상에서도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 같은 능은 편안해 보인다. 절대자도 죽음 앞에서는 역사의 강물 되어 부드러워지는가 보다. 삶과 죽음이 시공을 초월한 무한의 세상이라지만 그 차이는 파도에 쓸려 가는 모래탑과 무엇이 다를까.

부드러운 곡선을 타고 있는 능은 작은 산을 이루고 있다. 능의 완만한 곡선은 삶과 죽음이 조우하는 우리네 인생길과 같은 것인지 모르겠다. 그래서 능은 둥글둥글 한세상 살아가라고 이르는 것 같다. 사람이나 가축, 무구류나 장신구를 함께 매장하는 순장은 생전의 삶을 저승에서도 지속하며 살라는 남은 자의 배려일 것이다.

비가 내리면 봉분에 습기가 축축이 배어든다. 틈새로 바람과 햇빛도 나누어 받을 것 같다.

이세상과 저 세상이 잠시 자리만 바꾸어 앉은 듯 하다. 무덤은 새로운 삶의 시작이며 환생을 의미하였다. 그럼으로 부장품을 넣어주는 일은 저승이란 곳에 살림을 내어주는 일이었다. 동시에 죽음도 하나? 삶이라 여겨진다. 저승은 현세의 연속이며 그들은 이 세상에서 누리던 영화를 무덤에서도 영위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던 것이다.

흐드러진 쑥부쟁이와 갈꽃이 잠든 능을 지키고 있다. 여인의 젖무덤 같은 부드럽고 우아한 능은 죽음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탄생의 비밀마저 안고 있는 것 같다. 태고의 생명을 잉태한 듯 고요한 능은 전생과 후세마저도 제도하는 것은 아닌지, 바람이 능의 귓불을 스치고 지나간다. 바람 따라 흘러 다니는 홀씨도 잠든 왕의 전령이 되어 이 능에서 저 능으로 날아다닌다.

능은 금방이라도 세월의 묵은 때를 털고 과거의 터널 속에서 걸어 나올 것같이 낯설지 않다. 새털 같은 많은 이야기들은 시간 속에서 회귀하는 억겁인 것을, 문패 없는 능은 깊은 산 속의 운무 같은 것일까. 고요히 삭아 내리는 강물 속의 물풀처럼 내 작은 삶도 결국은 거대한 세월 속의 한 순간이리라.

삶의 터는 오래 묵을수록 새로운 역사가 된다. 고수집상에서 산 항아리 하나, 세월의 테를 두른 거무튀튀한 토기는 어떤 이의 무덤에서 나온 것인지도 모른다. 금이 가고 검버섯이 덮인 그 항아리는 주검의 빛깔이 드리워져 있다. 항아리는 알 것이다. 왕이 죽어서 머무는 세상을, 그래서 후세인에게 저승의 메시지를 전하는 듯하다. 항아리의 검은 빛은 어둡고 긴 삶의 등짐을 지고 저승으로 가는 빛이지 않았을까.

천마총에서는 무너진 절터의 탑이 보이고, 갈기를 휘날리며 말을 달리는 사람이 보인다. 왕의 찰랑이는 금제 허리띠에는 황금을 녹이는 장인의 혼불이 살아서 흔들리고 있었다. 떨리는 손끝으로 흘러내린 결 고운 입자는 도드라진 이슬방울을 닮은 듯하다. 명주실로 가냘프게 꼬아 허리로 꺾어 내린 듯한 선은 금을 녹인 광물질이 아닌, 생명과 기를 쏟아붓는 소신공양이었다. 장인이 낳은 부장품은 인간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 유전을 깨우쳐주는 것이었다. 능에서 잠든 사람이나 부장품은 한 수레바퀴를 타고 돌아가는 물레와 같은 인생이지 않았을까.

유물을 바라보는 일은 아름다움을 보는 현시가 아닌 정신세계였다. 금의 의미는 예나 지금이나 같은가 보다. 예물로 주고받는 반지나 목걸이는 둥근 모양에서 결속과 화해를 의미하고, 반짝이는 금은 그 단단함으로 변하지 않는 해로를 뜻하였을 성싶다. 그리고 내세까지도 그 삶을 이어가라고 기원하였을 것이다. 궁중의 법도 속에서 화려한 장신구와 의복으로 자존과 위엄을 지킨 왕의 여인들, 끊임없는 암투로부터 자식을 지키고 가문을 열고자 했던 수많은 눈물이 역사의 강을 이루었던 것은 아닌지.

태릉원을 배회하던 미추왕릉의 홀씨는 너울너울 날아 추령 고개를 넘어 대왕암에 이르렀을 것이다. 차가운 바다에 누운 문무왕의 넋을 위로하기 위한 홀씨는 만파식적(萬波息笛)의 불가사의한 피리 소리에 마음을 담았을 것 같다. 그 피리 소리는 문무왕의 염원을 이루어주려는 주술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목 부러진 탑의 영혼을 위로하는 소리같이도 들렸음이다.

한 맺힌 역사나 인생사도 한결같이 비나 바람으로 날리게 될 것이니, 세월의 나이테는 작은 균열 하나까지도 생채기를 낸다. 감은사지에 박힌 쇠못, 돌조각에서 파열음의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풍화된 돌쩌귀는 마음마저도 비운 듯 다른 한쪽에 몸을 맡기고 있다. 퇴적하여 화석이라도 된다면 죽어서도 사는 것이 되리라. 주춧돌만 남은 절터에 삭은 탑 한 조각씩 떨어져 내린다. 긴 가을밤, 귀뚜리미가 소리 내어 우는 날이면 별빛도 하얗게 부서져 쌓이지 않을까. 긴 어둠 속에서 서서히 일어서는 빛처럼 능도 깨어나리라. 그래서 밝아오는 미명에 우리네 삶도 시간이라는 무한의 법칙을 깨우치는 일이라 여겨진다.

능에서 말발굽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달려오는 군사들의 외침 소리와 칼날 부딪치는 소리에 풍악 소리가 섞여든다. 잠시 넋을 놓고 능을 바라보니 무슨 소리가 들린다.

신라는 잠자는 것이 아니라 꿈꾸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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