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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 읽기

악마 의자 / 정둘시

부흐고비 2021. 4. 1. 08:48

욕심이 결국 화를 부르고 말았다. 되돌릴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는 이것을 영원히 보듬고 살아야 한다는 사실에 기가 막힌다.

지난여름이었던가. 친한 선배 집 거실에서 잠깐 사용해 보았던 안마의자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지친 내 몸을 알기라도 하는 듯,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주물러주고 두드려주는 그 편안함에 스르르 잠까지 들어버렸던 기분을 쉬이 잊지 못했다. 하루의 노곤함이 사라지도록 어루만져주는 이 의자야말로 무뚝뚝한 남편, 멀리 있는 자식보다 훨씬 낫다는 선배의 부추김도 한 몫 거들었을 것이다.

남편에게 안마의자를 사자고 조르기 시작했다. 묵묵부답인 그에게 ‘나를 위해서 무엇 하나 제대로 사준 것이 있기나 했느냐’고 툴툴거렸다. 나이가 들어가니 아프지 않은 곳이 없는데 당신이 매일 안마를 해줄 것도 아니지 않느냐며 갖은 핑계를 갖다 붙였다. 말로도 모자라 고속도로 휴게소나 전자제품판매장에라도 들르는 날이면, 체험용 안마의자에 누워 평소에는 보기 드문 평온한 표정을 지어 보이며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만만치 않은 금액이니 마음대로 사 버릴 수도 없고 말 없는 그 속을 몰라 눈치만 보고 있었다. 며칠이 지나도 포기할 기세가 보이지 않았던지

“그 큰 걸 어디에 놓을지 생각이나 해 보았어. 머리에 이고 있을 자신이라도 있는 모양인데, 그렇다면 내 사 주지.”

크지도 않은 집이라 둘 자리가 마땅치 않은 것을 염려하고 있었다. 평소에는 괜찮지만 제사라도 모시는 날이면 어떻게 할 건지 따지듯 되물었다.

“걱정일랑 마세요. 의자 밑에 바퀴가 달려 있어 안방으로 옮길 수도 있대요.”

끈질긴 나의 성화에 남편은 결국 승낙을 하고 말았다. 드디어 도착한 안마의자는 기세도 당당하게 실내 자전거를 밀어내고 떡하니 자리를 잡았다. 거실 삼 분의 일 정도를 차지하고 앉은 걸 보니 나의 예상보다 더 컸고 더 무거웠기에 내심 찔끔했다. 그것도 잠시, 이어폰을 끼고 안마까지 받고 있노라니 내 삶도 제법 그럴듯해진 기분이었다. 퇴근 후에는 하루도 빠짐없이 그 위에 드러누워 나만의 윤택한(?) 시간을 가지곤 했다. 구입할 때부터 뜸을 들이던 남편은 안마의자를 시큰둥하게 바라만 볼 뿐 제대로 사용해 볼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안마의자를 산 지 석 달이 지나가고 있었다. 귀가가 늦어지거나 다른 일에 정신을 쏟다 보니 안마의자를 잊어버리는 횟수가 점점 잦아졌다. 더욱 이상한 것은 예전에 느꼈던 시원함이나 안락함에 내 몸의 세포들은 점점 무디어져 갔고, 그럴듯하던 기분이 더는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아버님의 기일, 남편이 우려하던 그 날이 다가왔다. 안마의자가 앉았던 자리에 병풍과 제상을 놓아야 하니 그것부터 안방으로 옮기는 것이 급선무였다. 이백 킬로그램 가까이 되는 기계를 조그만 바퀴에 맡기고 끙끙대며 밀어보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남편의 이마에서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히고 있었다. 슬슬 눈치가 보이기 시작한 나도 힘을 보탰다. 겨우 발걸음을 뗀 안마의자는 안방 문 입구에서 멈추어 섰다. 손톱만큼의 틈도 없는 문틀을 겨우 통과시키느라 우리는 진땀을 있는 대로 흘려야 했다.

기운을 소진한 남편이 베란다에서 등을 보인 채 서 있었다. 날이 날이니만큼 끓어오르는 화를 참고 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무어라 말할 처지가 아닌 터라 숨을 죽인 채 식탁 의자에 앉아 쉬고 있을 때였다. ‘아뿔싸 저걸 어쩌나’ 화들짝 나의 시선을 빼앗은 것은 움푹 파이고 찢긴 거실 바닥이었다. 무게에 짓눌려 바퀴가 지나간 곳마다 길이 생겼고, 안방으로 무리하게 돌아들었던 자리의 장판은 흉하게 뜯기어 있었다.

모든 일이 그이가 걱정하던 대로 벌어지고 말았다. 애초부터 일시적인 기분으로 마련하기에는 부담스러운 물건이라고 충고했었다. 넓지도 않은 집에 살림 늘리는 문제를 몇 번이나 말했지만, 나는 마누라가 그토록 원하는 것을 사주기 싫어하는 치졸한 남편으로 몰아붙이기까지 했다. 이제 어쩌면 좋단 말인가. 반품하기에는 기간이 지나버렸고, 계속 쓰자니 오늘 같은 악몽이 반복될 것이다. 심지어 안마의자를 치워버린 거실이 이렇게 넓어 보일 줄이야. 덩치 큰 그 물건을 좁은 안방으로 겨우 쫓았더니 이번에는 옷장을 가로막아 문을 열 수도 없게 심술을 부렸다. 진퇴양난, 사면초가라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것이 아니겠는가.

‘욕심이 생기면 물질을 따르게 되고 물질이 중하게 되면 어두움이 끝없다’더니 꼭 지금의 나를 두고 이르는 말이리라. 지천명의 중반을 넘어서는데도 잠재우지 못한 탐욕의 대가가 안마의자의 무게만큼 무겁게 다가왔으니.

열린 방문 사이로 힐끔 바라본 안마의자는 더 이상 안마의자가 아니라 악마의자가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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